우간다 빈민촌에서 주님의 말씀을 배우다
우간다 빈민촌에서 주님의 말씀을 배우다
  • 최용준
  • 승인 2010.02.22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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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우간다 사람들

지난 8월 중순, 한 주간 동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우간다에 단기 사역 차 다녀왔습니다. 짧은 기간 있으면서 그 나라에 대해 칼럼을 쓴다는 것은 자칫 신중하지 못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주제는 모두의 보편적인 관심사입니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엔테베 공항에서 한 교민 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자란 2세가 여름방학을 마치고 다시 공부하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와 같은 브뤼셀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입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대합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간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학생은 우간다의 좋은 날씨 등 밝은 면을 말하는 동시에 어려운 현실, 특히 질서가 잡히지 않은 여러 가지 사회 현상을 설명하면서 그럴 때마다 이곳에 사는 외국인들은 T.I.U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This is Uganda'의 약자입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곳, 예측을 불허하는 현상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자조적 결론입니다.

우간다는 일찍 영국의 수상 처칠이 '동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케냐 다음으로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고원지대라 적도에 근접한 위도 상에 위치하면서도 일 년 내내 선풍기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영어권이라 한국 선교사님들도 상당히 많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한인교회도 자체 예배당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충격 받은 것은 역시 빈부의 격차였습니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는 7개의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제가 머문 선교사님 댁도 작은 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올라갈수록 고급주택가였고 제일 꼭대기에는 큰 물탱크가 있어서 그 지역을 '탱크 힐(Tank hill)'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밑으로 내려갈수록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서서히 생활수준이 떨어지면서 나중에는 최악의 빈민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 지역은 캄팔라에서도 가장 많은 난민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쪽의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처참한 인종청소가 이루어질 때 수많은 난민들이 이곳으로 몰려왔습니다. 서쪽에서는 콩고 내전 때, 북쪽에는 이슬람 정권과 남부 기독교인들 간의 내전으로 많은 수단 사람들이 피난 온 것입니다. 이들의 생활환경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쓰레기장이 따로 없어 온 거리가 쓰레기였고 하수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 도랑은 악취로 가득 찼습니다.

집들은 모두 무허가여서 그야말로 무질서했고, 날마다 폭력과 매춘과 마약이 성행한다고 그곳에서 사역하시는 현지 목사님은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인간으로 대접을 받으며 사는 것을 이미 포기한 듯 보였고,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과일이나 생선을 놓고 판다고 하지만 파리떼들이 우글거리고 위생 수준이 너무 낮아 각종 질병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산 위에 사는 부자들은 대문마다 보안 장치를 하고 심지어 무장을 한 보초들을 세워 지키며 담 너머에는 한두 마리 개도 키웁니다. 그들은 이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도둑들로 의심합니다. 반면에 낮은 곳에 있는 가난한 난민들은 산 위에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손 큰 도둑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래저래 양 계층 간에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현지 목사님께서 그곳을 안내하시면서 몇몇 성도들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 중의 한 분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분은 행 3장에 나오는 사람처럼 일어설 수 없는 장애인으로 독신의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지 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 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은 기술과 힘으로 작은 물건들을 만들어 팔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많은 여성들이 신문지 또는 폐지를 작고 얇게 말아 단단히 뭉쳐 구슬처럼 만든 후 목걸이나 팔찌 등을 만들어 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더 충격을 받은 것은 그분에게 인사했을 때, 그 분은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얼굴에 해맑은 웃음을 저희들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분이 저희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한 순수한 웃음이 나올 수 있는지 저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가 살고 있는 유럽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기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웃음은 '더 깊은 무엇'을 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천국의 소망과 믿음이 바탕이 된 미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물질도 줄 수 없는 하늘나라의 기쁨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하고 부요한 사랑의 웃음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웃음과 인사 속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7)라는 주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T.I.U가 아니라 T.I.G(This is Gospel. 이것이 복음)입니다.

최용준 목사 / 벨기에 브뤼셀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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