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권사님의 잠꼬대와 지용덕 목사님의 욕설
어느 권사님의 잠꼬대와 지용덕 목사님의 욕설
  • 박지호
  • 승인 2010.03.29 14: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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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취재 후기] 칭찬하면 ‘당연’ …비판하면 ‘네가 뭔데’

1.
신실하기로 소문난 장로·권사님 부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밤 권사님이 꿈속에서 이름 모를 여인을 만났는데, 집 앞 장독대를 들락거리며 고추장을 퍼가더랍니다. 권사님이 뻔히 보고 있는데도 버젓이 고추장 서리를 하기에, 처음엔 좋은 말로 '그러지 마라, 왜 자꾸 남의 고추장을 퍼가느냐'고 타일렀답니다. 그런데 고추장은 점점 줄어들고, 권사님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퍼가자 "아니, 이 나쁜 X이" 하면서 뺨을 후려쳤답니다. 꿈 치고는 하도 실감나서 권사님은 잠결에 주위를 살폈지만, 옆에 누워 있던 장로님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자고 있어서 요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잠들었답니다.

다음날 아침, 권사님이 꿈 얘기를 하자, 장로님이 한마디 하시곤 껄껄 웃더랍니다. "그거 좀 그냥 주지. 권사라는 사람이 고추장 좀 퍼간다고 욕을 하고 뺨을 때리나." 실인즉, 권사님이 날린 손바닥은 고추장을 퍼가던 여인의 얼굴이 아니라, 옆에서 잠자고 있던 장로님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던 것입니다. 권사님은 꿈 이야기를 하면서, 왼뺨을 돌려대지 못할지언정 이웃의 뺨을 때렸다며 수줍게 자책했습니다.

2.
며칠 전 일입니다. 남가주 교계의 아이티 성금 사용과 관련한 취재를 위해 남가주교협 회장인 지용덕 목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아이티 성금 유용 논란에 대해서 묻자, "내 맘이다", "왜 남의 일에 간섭하냐"며 답변 대신 "미친 놈", "나쁜 XX", "더러운 XX", "싸가지 없는 XX"라는 욕설만 되풀이했습니다. 지 목사님과 인터뷰하기 전에 동일한 질문을(동일한 말투로) 다른 목사님들에게도 했었지만, 유독 지 목사님만 욕설로 반응했습니다.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는 반응에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교회 분규 현장에서부터 재판장까지 온갖 싸움판을 오갔지만, 이렇게 대놓고 욕을 해대는 목사님은 처음이었습니다. 가끔 자기 목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고, 슬쩍 다가와 “기도했는데 다리가 아프지 않더냐”고 섬뜩한 표정을 짓고 가는 경우도 있고, “멀쩡하게 생겨서 왜 저렇게 기사를 쓴데”라며 수군대는 경우는 있어도 욕설을 퍼붓는 교인은 없었습니다. 지 목사님의 욕설 내용이 궁금하시겠지만 <미주뉴스앤조이>의 품격을 고려해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나이 어린 기자가 이것저것 캐물으니 불쾌하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나름 고생하며 구호활동을 벌이고 왔는데, 나쁜 짓이나 한 것처럼 몰아붙이니 목사님도 부아가 치밀 수밖에요. 인자하기로 소문난 권사님도 꿈속에서 욕을 했다는데,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 목사님이 욕을 한 것은 집안에서, 그것도 꿈속에서 욕을 한 것과는 다릅니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교협 회장에게, 교계를 통해 공적으로 모금한 아이티 구호 성금에 대해서, 질문하는 기자에게 욕설로 반응하는 것을 정상적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자기 돈이라면 구호금으로 무슨 짓을 하던 상관할 바 아니지만, 교인들이 낸 13만 불을 어떻게 썼냐고 묻는 말에 "남의 일이니 상관하지 말라"는 지 목사님의 태도가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지 목사님은 인터뷰에서 본인은 "사회를 모르고 정치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사실인 것 같았습니다. 지난 번에 지 목사님은 교계 언론협회 창립총회 자리에서 자신의 언론관을 노골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기독교 언론은 교회가 광고를 내니까 유지가 됩니다. 교회 신도들의 헌금으로 유지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에 잘 해주십시오"

지 목사님에게 언론이란 교회의 돈으로 움직이는, 그래서 목회자의 입맛에 따라, 목회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펜을 놀려야 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언론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두 번째 인터뷰에서도 욕은 없었지만, '사실 보도'를 주문하는 대신 '미화'해달라는 부탁을 곁들였습니다. "앞으로 허술한 부분만 자꾸 들춰내지 말고, 미흡한 부분이 있어도 미화해주세요."

3.
지 목사님만의 일일까요. 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취재를 갔을 때 열의 아홉은 비슷한 반응입니다. '남의 일에 왜 참견이냐', '상관하지 마라', '이게 기사 거리나 되냐'는 반응입니다. 물론 모든 목사님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드물긴 하지만 문제가 생겨 찾아가면, '이런 꼴을 보여서 죄송하다'며 죄인처럼 몸을 낮추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실제로 피해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 교회와 목회자가 공적인 위치를 망각하고 언론에 '이중 잣대'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칭찬 받을 일을 해서 언론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에 대해선 모른 척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총회장이니, 협회 회장이니 하는 감투는 좋아하지만, 그로 인해 따라오는 공적인 책임이나 비판은 외면합니다.

참, 저도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지 목사님과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욕설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질문을 하자, 흥분한 지 목사님이 "기자 나부랭이라고 까부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도 그만 "어디서 교협 회장 나부랭이가"라고 대꾸해버렸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저의 무례함과 부덕함도 고백하며 지용덕 목사님과 독자님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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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ybear 2010-04-02 07:54:59
앞으로는 그런 충동 조차 극복하시고 더 좋은 기사를 쓰실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저도 간혹 의뢰인을 만날때 마다 비슷한 충동을 느끼네요.

바람이 분다 2010-04-02 04:20:35
- 근데 왜 이렇게 통쾌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