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공개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결산 공개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 김성회
  • 승인 2010.04.02 12: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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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현실과 유리된 기독교계의 도덕 관념

지난해 10월, 남가주교회협의회는 LA성시화운동본부와 함께 ‘2009 성탄절 사랑의 쌀 나눔 운동’을 시작했다. 한인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함께 행사에 동참했다. 주최 측도 예상하지 못했던 폭발적인 반응으로 총 12만 4,725불이 걷혔다. 주최 측은 이 돈으로 쌀 1만 50포와 라면 1,600 박스를 나누어 주고 5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전달했다.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냈던 사랑의쌀나눔운동

종교 단체에서 주도했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종교 지도자들과 단체들이 나서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하니 칭찬이 쏟아지고 돈도 덩달아 쏟아졌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를 통해 돈을 기부한 사람이나 쌀을 받아간 사람 모두 '은혜'를 받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됐다. 처음에는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북미주종교평화협의회의 가세로 타 종교 단체까지 운동이 확산되었고,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우울했던 세밑을 훈훈하게 덥혀주었던 행사가 됐다.

12월 성탄절 기간 중 깔끔하게 쌀을 나누어주고 끝날 것을 기대했으나, "예상 못했던 폭발적인 반응 때문에 후원금이 남아서"(LA성시화운동본부 본부장 이성우 목사) 결산은 2월 말에나 가능했다. 남은 돈을 가지고 옥신각신 말이 많았던 탓이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는 교계 행사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예•결산의 전면 공개를 해냈다. 수입과 지출을 상세 항목으로 나누어 적었으며 그 내용 역시 공개했다. 집행 단체에 대한 신뢰 없이 지속적인 선교 활동은 어렵다는 것을 그간의 활동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계의 경우 예•결산의 공개조차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공금으로 지출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듯했다.

횡령만 아니면 돼?

구매 경로를 통해 확인 했던 쌀값과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측이 공개한 결산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운영비로 잡혔어야 할 광고비며, 방송 생중계 비용 등 5,000여 불이 쌀 값 안에 숨어있던 탓이었다. 운영비를 줄이고 쌀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을 부풀려 보이게 하려는 꼼수였다.

방만한 지출도 눈에 띄었다. 사랑의쌀운동본부는 성금으로 일간지 기자들에게 595불 어치의 선물을 사서 나누어주었는가 하면, 운영진 중 한 사람이 모친상을 당했다고 300불 조의금도 성금에서 냈다. 구체적인 사용 내역에는 모니터, 프린터 구입비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랑의쌀나눔운동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들에 지출을 하고서도 그 사실을 떳떳하게 공개하며 '공개했으니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아니 교계 행사에서 결산을 한 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우린 정말 깨끗하게 한 거예요"(이성우 목사)

자기 주머니로 공금을 횡령한 것이 아니니 아무 문제없다는 것일까. 21세기에 성금을 유용해서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적발되면 실형을 살아야 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일반 단체에서 성금을 걷어서 조의금을 내고, 모니터를 샀다면 어떻게 됐을까? 세상의 기준조차 교계에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가?

세상의 기준에 대한 몰이해

그런 식으로 돈을 유용할 단체도 없지만, 있다손 치더라도 결산서에 떳떳하게 공개할 리가 없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면 그런 식의 지출은 유용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 단체들의 공금에 대한 인식은 세상의 기준과 너무나도 달랐다. 기자 선물이며, 조의금을 공금으로 쓰는 데 아무 문제의식을 못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떳떳하게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3만 불의 예산이 남자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는 회의를 열어서 장학금과 라면 나누기 운동을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어려운 이웃에게 쌀을 주라고 모금했으니 3만 불이 남았으면 쌀 3,000포대를 더 사서 나누어 주는 간단한 길을 두고 에둘러 가기로 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3만 불은 '권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의라면나누기운동은 LA성시화운동본부에서 제안했다. 지난 기간 LA 성시화 운동에 동참했던 타 민족 선교 단체들을 통해 라면을 배부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공금이 특정 단체의 결속을 다지는 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공금의 유용? 공금의 권력화!

"지용덕 목사는 대책 회의에서 총영사의 이름을 넣은 장학 증서를 만들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는 제안을 했다. 총영사가 반색하며 이를 지지했다. 지용덕 목사는 나중에 자기 이름도 넣어줄 것을 요구했고 결국 김재수 총영사, 지용덕 목사, 박희민 목사 세 사람의 이름을 넣는 것으로 합의했다"(이성우 목사)

장학금은 단체 대표들의 이름을 빛내는 행사로 변질되고 있었다. 총영사관은 어려운 학생을 돕자는 취지를 전달하지도 않은 채 올해 초에 창립총회를 한 IKEN(세계한인교육자총연합회)이라는 단체에 32명의 장학생 선발을 맡겼다. 9,600불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자의적 선발, 검증 절차 전무 "더 이상 물으면 미쳐버린다."

IKEN이라는 단체가 장학생 추천 대상으로 적합한지 실사를 갔던 남가주교협과 LA성시화운동본부 측은 "이미 김재수 총영사에게 통보 받고 선발 중"이라는 대답을 듣고 돌아서야 했다. 남가주교협의 총무인 박세헌 목사는 “IKEN에서 추천했다 할지라도 선정은 대표 기관에서 결정해야 했었다. 하지만 IKEN의 사무국장은 총영사로부터 선정을 의뢰받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는 IKEN이 제출한 32명의 선정자 명단을 두고 논란을 벌였으나 이미 당사자들에게 통보했다는 IKEN의 말을 듣고 이를 수용했다.

원래 40명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IKEN이 32명을 먼저 추천하자 교협이 반발하고 나섰다. 남가주교협도 20명은 추천을 해야겠다고 주장했고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지용덕 목사는 "사람을 뽑을 시간이 없었다"며 "사람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 교회 부목사도 넣었고 교인도 넣었다"고 했다. 그는 "누가 욕해도 괜찮다. 사람이 없어서 불가피했다"고 항변했다.

1년에 만 5,000불이 넘는 학비를 내는 사립 초등학교 학생도 두 명 있었고, 모 기독 언론사 기자의 조카도 있었다. 회계사의 자녀, 남가주교협의 회계를 맡고 있는 나형길 목사의 조카도 있었다. 계속되는 질문에 지용덕 목사는 “그것까지 알 수 없다. 추천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물으면 미쳐버린다”고 대답했다.

누워서 침 뱉기

12월에 공언한 외부 감사는 깜깜 무소식이 되었고, 벌써 참여 단체들은 올 해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가로 신경전에 들어갔다. 주최 측인 남가주교협 총무 박세헌 목사는 "정말 어려운 이웃에게 쌀이 나누어 졌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며 LA성시화운동본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자폭에 가까운 코멘트였다. 이어서 박 목사는 "올해부터는 함께 일하기 어렵지 않겠나"라며 독자적으로 행사를 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남가주교협은 행사의 독자 진행을 위해 LA성시화운동본부에 행사 관련 자료 일체를 디지털화하여 건네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상태이다. 이성우 목사는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와서 보면 된다. 꽃집 전화번호까지 죄다 모아서 제출하라는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는 "상근자도 없는 (남가주)교협이 이런 대규모 운동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올해도 우리가 주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기독교가 주도하고 타 종교 단체들 뿐 아니라 한인 언론사와 한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교회다운' 행사를 치러냈던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는 세간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재정 관리와 고질적인 단체 간 알력으로 가지고 있었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브랜드로 진화한 "사랑의쌀"

매년 성탄절은 한 번씩 온다. 사랑의쌀나눔운동은 이제 운동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브랜드의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이제 시작될 예정이다. 그 브랜드 싸움은 필연적으로 종교계에 대한 불신의 벽을 높이는 데 일조할 것이고, 그 브랜드는 빛을 잃어 버릴 것이다.

상명하달, 주님의 뜻, 목사님의 권위, 당회의 힘. 이런 것들에 오랜 기간 적응해버린 교회 권력은 세상의 도덕 기준에 자신을 맞출 능력을 잃어버린 듯하다. "결산을 공개한 게 어디냐"는 답변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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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ybear 2010-04-06 09:35:30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아서 였을까요? 일단 공개를 했다는데 저는 후한 점수를 줍니다. 이러면서 교회도 경험을 하고 배워나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