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보다 수십 배나 큰 아무개 목사의 면류관'
'바울보다 수십 배나 큰 아무개 목사의 면류관'
  • 정기호
  • 승인 2010.04.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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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천국은 계급장이 없는 공평한 곳

서울의 대형 교회에 젊은 목사가 설교자로 초정을 받아 설교하게 되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수천 명이 운집한 저녁 집회의 강단에 서게 된 목사는 설교 도중 “제가 천국에 가서 환상을 보았는데 여러분의 목사이신 ○○○ 목사님이 쓰신 면류관이 사도 바울이 쓴 면류관보다 수십 배나 크고 많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신자들은 ‘할렐루야’, ‘아멘’을 연발하면서 어떤 광신도는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단다.

신자들이 천국에 가면 목사와 장로와 평신도들의 면류관의 숫자와 크기가 차별화되어 주어지는 것인가. 소위 부흥사들이 목사의 권위에 도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공갈과 협박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것을 ‘개털모자’론으로 익히 알 수 있다. 무소부위의 신권을 가진 자칭 하나님들께서 축복과 저주론을 대동하고 불쌍한 신자들을 괴롭히며 목회자의 말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아 면류관은커녕 ‘개털모자’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신자들은 이와 같은 불호령 앞에 벌벌 떨고 있다. 설교자나 교인들의 지적 수준과 신앙 수준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천국에 가면 면류관을 얼마나 크고 화려하고 몇 개나 받을까 성경을 들여다보자. 복음서에 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시면류관’을 쓰셨다.(마2:29, 막 15:17, 요19:2,5) 개털모자론을 들먹이는 목사님께서는 주님이 쓰셨던 ‘가시면류관’을 써보기는 하였는지 의문이다. 

바울은 “썩을 면류관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고전 9:25), “기쁨의 면류관”(빌 4:1),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살전2:19), “의의 면류관”(딤후4:8)을 언급했다.

베드로전서에는 “영광의 면류관”(벧전5:4)이, 야고보서에는 “생명의 면류관”(약 1:12)이,  계시록에는 “생명의 면류관”이 언급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4장에는 24장로들이 쓴 금 면류관(계 4:4)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24장로들이 쓴 금 면류관을 주의 보좌 앞에 드리면서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계4:10)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해를 옷 입은 여인”이 12별의 관을 머리에 썼더라”고 하였다. 해를 옷 입은 여인은 음녀 교회로부터 쫒기는 입장이다. 진리의 교회를 상징한다. 14장에는 인자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다고 하였다.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신약 성서에서 말하는 면류관의 모습을 간략히 살펴보자. 신자의 유일한 소망은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이다. 신자가 얻을 영생의 상징으로 “면류관”을 말한 것이다. 올림픽과 같은 세상의 운동 경기에서 얻어진 메달을 받은 사람을 영웅 대접하는 이 땅에서 신자들이 신앙의 경주를 마치고 받을 면류관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더욱 더 귀하지 않을까.

문제는 변질된 면류관에 관한 사람의 상상과 허상이다. 수천 명 내지 수십만 명의 신자를 끌어내고,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이룩하여, 모세보다 능력이 많으신 목사는 하늘나라에서도 그 면류관의 크기와 숫자가 사도 바울보다 더 크고 많다는 상상과 허상을 신자들에게 주입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더 많은 권력을 누리고 재물을 다다익선으로 끌어 모으기 위한 혹세무민에 지나지 않는다. 천국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녀 낳고 살다 죽는 이 세상의 삶이 결단코 아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나라다.

만일 천국이 불공평하다면 전 재산을 다팔아 교회에 바친 평신도가 독단과 아집으로 교회를 이끌고 있는 당회장 목사에게 반기를 든 당자사는 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  당장 끼니가 없어 국수나 라면을 살 수 없고 병들어 누워 있는 가난한 신자는 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까. 시장 통에서 나물을 팔아 십일조를 드려도 대기업의 임원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의 십일조에 비하여 도토리 키 재기밖에 되지 않는 가난한 신자는 천국에 가기는 갈 것인가. 아니 개털모자라도 하나 얻으려나.

대형 교회 목사의 신앙관과 다르다고 신학교 교수를 이단자로 몰아 ‘출교’시킨 목사의 면류관은 얼마나 크고 많을 것인가. 십자가 군병의 총수가 되어 사탄의 괴수인 이단자를 척결한 면류관은 얼마나 큰 것인가. 졸지에 이단자로 낙인찍히고 충격으로 죽음을 맞이한 학장과 평생을 복음 전파자를 양성하던 신학교 교수는 천국에 갈까 못갈까. 

나그네로 살면서 복음을 전하던 목사와 교인들을 진정한 마음으로 돕고 섬기면서 진리의 길로 안내하며 일생을 겸손히 살았던 목사, 그러나 교인 수는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미한 목사, 감독이나 총회장 지리는 꿈도 못 꾸었던 목사는 작고 초라한 다른 면류관을 받을까. 아니면 대형 교회를 이룩하고 무소불의의 재력과 권력을 휘두르며 늙어 아들이나 사위에게 교회를 대물림하던 목사와 똑같은 면류관을 받을까.

신약에 나타난 면류관의 모습은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이 세상에서 제왕적 왕이 쓰던 면류관과 같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다. 즉 보이지 아니하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 소망과 자랑과 기쁨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생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등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면류관 일색이다.

사두개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현실에 집착하는 기복주의 신앙은 천국에서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곳으로 오해하고 있다. 미래 즉 내세에 영생을 소망으로 사는 성도는 이 땅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육은 무익하여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갈 5:21)

한국의 중대형 교회(신자의 숫자가 300명 이상 되고 자기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3억 이상 결산하는 교회)의 당회장님들은 대기업의 임원 이상의 대우와 혜택을 받는다. 그들은 지상에서 분봉왕으로 살아간다. 아니 지상의 왕 이상의 대우를 받고 교인들과 교단의 칭찬을 받는다. 위험한 일이다. “칭찬이 너희에게 있으면 화가 임하기 때문이다.”(눅 6:26)

물론 교단의 부담금 내기에 정말로 부담되는 미자립 교회의 목사님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최악의 생활비로 노숙자들의 삶과 다를 바 없이 비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녀들의 과외비나 특별 활동비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이 땅에서 왕 대접을 받아 상을 다 받은 지도자들이 천국에서도 똑 같은 역차별을 받는다면 그 곳은 천국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땅에서 다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실 상급이 없을 것이다.

천국에서도 사람을 차별한다면 불공평하신 하나님이다. 천국은 이 세상에서 칭찬 받지 못하고, 차별 대우를 받아 어깨도 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살았던, 가난하고 병들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이 영생을 누릴 곳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문 받고 목 베임을 당하고 사람으로 형언할 수 없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들이 영생을 누릴 곳이다. 회교권과 공산권에서 죽음을 개의치 않고 예수를 믿고 따른 분들이 영생을 누릴 곳이다.

천국에서도 오늘의 교회와 똑 같이 교인들끼리 좋은 말로는 선의의 경쟁으로 전도와 헌금 바치기, 집회 참석하기, 공적 쌓기 경쟁을, 시기와 질투로 마지막에는 철천지원수가 되고 마는 분쟁의 모습이 재연된다면 단언하건데 그런 천국은 차라리 가지 않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특별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다 한 성령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책은 여러 가지지만 우리는 다 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각기 여러 가지지만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 가운데서 또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분은 한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2:4-6)

고전 12장 전체는 은사론으로 돈 받고 예수 믿는 목사나 돈 내고 예수 믿는 평신도나 피차일반으로 주님의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세워진 은사일 뿐임을 강조한다.

주 앞에서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입도 크게 벌리지 못하고 단지 “주여 무익한 종이 할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는 것뿐이다. 주 앞에서 뭐라고 주절거리며 늘어놓을 입이 있겠는가.

정기호 목사 / 기독교 대한감리회 은퇴 목사, ‘희망의복음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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