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사라진 예배
아이들이 사라진 예배
  • 김성한
  • 승인 2010.05.16 2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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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예배와 하나님나라⑤ 예배에서 소자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한국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때가 되면 목사들은 가정에 관한 설교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한다. 하지만 평상시 예배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함께 예배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교회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며 예수를 큰 형님 혹은 오빠로 여기고, 모든 성도를 식구(롬 8:29)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와 예배에서 정작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는 왜 어려운 것일까. 가족이라면 거기에는 어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다 알고 있듯이 대부분의 교회는 어른들만 참여하는 예배와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주일학교 혹은 학생회 예배로 나누고 있다. 유년부나 영아부에 아직 들어가지 못하는 더 어린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교회 본당 뒤편이나 2층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대부분 커다란 통유리로 구분되어 있다)에 조용히 있거나 격리되어 모니터를 통해 보고 듣는 예배에 참여한다. 우리 예배에서 소자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공부를 마치고 어릴 때 출석하던 모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 넷을 데리고 가족이 되어 나타났다. 주일 아침이면 유년부와 유아부에 아이들을 각각 데려다 주고 갓난아기인 막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본당 2층 뒤편의 모자실에서 11시 예배를 드렸다.

모자실의 위치와 구조상 전면에 큰 창문이 있지만 벽면에 달려 있는 작은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한 신발을 벗고 들어와 방석을 깔고 앉아야 하는 모자실은 언제나 아이들과 주렁주렁 딸린 기저귀 가방으로 복잡했다. 솔직히 거기 그렇게 앉아서 1시간 넘게 버텼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경험은 모자실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알 길이 없다.

많은 교회를 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타지의 교회를 방문해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처음 방문한 교회에서도 안내하시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우리를 자모실로 안내해주셨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아이와 함께한 부모인 나는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나갔던 부모들이 제자들로부터 받았던 냉대에 비한다면 따로 마련된 자모실은 감사할 일이겠지만 여전히 아이와 나는 예배의 집중을 방해하는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이다. 자모실은 내게 배려가 아닌 격리로 다가왔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

물론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예배해야 한다고 명시한 성경 본문은 없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 필요한 ‘거룩한 상상력’을 아주 조금만 발동해 보자. 에베소서 6장 1절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라는 권면은 자녀들이 집에서 부모로부터 전해들은 것이 아니다. 이는 공적인 예배에서 부모와 함께 들었을 것이다. 그래야 이어지는 4절의 부모들에 대한 권면도, 5절에서 9절까지 이어지는 종과 주인의 관계에 대한 권면도 온전히 이해된다.

에베소교회는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종과 주인 모두가 함께하는 형태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또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환영하셨다는 이야기와 이런 예수의 이야기를 마태·마가·누가가 모두 기록하고 있다는 것(마 19:13~15, 막 10:13~16, 눅 18:15~17)을 생각해 보면 지금 교회가 아이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의 찡찡거리는 소리가 불편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거룩한 예배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아이들을 자모실에 따로 두거나 일 년에 몇 번만 엄마 아빠와 함께 예배할 수 있는, 아이들이 실종된 예배. 혹시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예배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참여가 거부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장하는 자녀들과 예배하며 신앙의 여정을 함께하기보다는 교회 학교, 주일학교 시스템에 아이들을 집어넣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 예수께서 우리의 예배에 함께하신다면 어른들만 가득 앉아 있는 예배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실까.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시며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해 주시던 그분께서는 사라진 아이들을 찾지 않으실까.

더 나아가, 혹시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마 9:36~37)라고 다시 말씀하시지는 않을까. 우리 예배에서 소자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김성한 / 한국 IVF MEDIA 총무

* <복음과상황>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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