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에 불복종한 히브리 산파
공권력에 불복종한 히브리 산파
  • 김범수
  • 승인 2010.05.1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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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성경인물 100인 100색 (6)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히브리 산파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출1:15-17)

히브리인이 대접을 받던 때가 언제 있었나 싶다. 400년이 지나면서 요셉 총리가 세상을 기근에서 구원한 일은 잊힌 지 오래고, 이민족 히브리인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이집트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집트의 새 왕조는 히브리 백성을 잠재적인 반란 세력으로 여기고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혹독한 노역을 부과했다.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것은 사실은 건물과 도시 공사가 꼭 이집트 경제에 반드시 필요해서라기보다도 히브리인의 세력 확장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기억되지도 않을 이런 무의미한 일을 위해 중노동을 해야 했던 히브리인의 심리적 고충은 그래서 더욱 심했다.

세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히브리 민족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구속사적인 계획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었다. 젊은 부부들은 금슬이 좋아 자녀를 많이 두었고, 큰 어려움 없이 순산한 아기들은 전에 없이 건강했으니 히브리 인구의 증가 속도는 타민족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가난한 히브리인의 동네는 늘 아이들로 바글거렸다. 이 축복이 이집트 정부의 핍박을 초래하게 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집트 국가안전부의 공작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렇게 히브리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 시점이었다. 국가안전부의 계획서를 받은 왕은 이 작전 계획을 즉각 실행에 옮겼다. 히브리 산파협회장 십브라와 부아는 비밀리에 체포되어 갖은 위협을 당한 끝에 왕과 대면했다. ‘히브리 여인이 해산을 돕다가 아들을 낳으면 몰래 아기를 죽여라’ 파라오의 명령은 아예 끔찍한 비밀 지령이었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협박과 무시무시한 요청을 받고 풀려난 십브라와 부아는 큰 고민에 빠졌다. 추상같은 파라오의 명령은 곧 태양신의 말이었고 불복종은 죽음을 뜻했다. 히브리 백성의 지도부도 결성되지 않은 지금은 어디에 말할 곳도 없었다. 공권력의 무거운 횡포가 거꾸로 선 피라미드처럼 이 두 간호사의 어깨로 집중되었다.

우리가 살자고 아이를 죽여? 아니다. 백의를 입고 간호사가 될 때 서약했던 그 생명 존중 서약을 어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도 히브리인이 아닌가?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이의 목숨을 앗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매우 지혜로워야 했다. 대놓고 거부해서 두 명이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이 지령은 다른 산파에게 하달되어 결국 파라오는 영아 살해 계획을 그 뜻대로 진행하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죽더라도 막을 수 있는 데까지는 막아보자. 이것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결심만큼 중대한 결단이었다. 히브리 임산부의 해산 호출이 올 때는 담당 산파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사무실에 붙잡아두고 출산한 다음에야 보내는 일로 보이지 않는 저항을 시작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추궁할 때는 거짓말로 둘러대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왕의 명령을 어겼다. 국가 공권력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불복종하는 길을 택했다. 게다가 파라오의 취조에 ‘히브리 여인은 힘이 좋아서 우리가 가기도 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라고 거짓으로 보고하였다.

연약한 이 두 여인은 자신의 생명이 위협 당하는 상황에서도 잘못된 명령을 불복종하고 거짓으로 증언하여 하나님께 거역하고 생명을 죽이는 잔인한 왕에게 저항했던 것이다. 이들의 절박한 선택으로 살아난 남자 아이들은 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나중에 이 사내아이들이 자라서는 모세를 도와 애굽을 떠날 때 이스라엘을 이끄는 중간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으니 이들의 결단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십브라와 부아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임했다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 산파들이 파라오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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