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가 제대로 입 맞추려면
정치와 종교가 제대로 입 맞추려면
  • 박지호
  • 승인 2010.09.03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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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짐 월리스와 [소저너스] 그리고 2008년 미국 대선

'낙태'와 '동성애'라는 말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미국의 기독교 보수 우파는 공화당의 든든한 '봉'이다. 레이건 이래 공화당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덕을 톡톡히 봤다. 상대적으로 투표 참여율이 높고 선거 패턴이 단순한 보수 기독교 유권자 층은 두 번씩이나 조지 부시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공화당은 2004년 대선 때에도 ‘도덕적 승리’(moral victory)라는 모토를 들고 나와 낙태와 동성애라는 이슈로 크리스천들을 자극하며 민주당 텃밭에서까지 표를 긁어갔다. 크리스 헤지스는 <American Fascists>라는 책에서 '복음주의 크리스천' 중 77%가 부시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물론 노골적인 정치 활동을 펼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다수의 온건한 진보 세력이 있긴 하지만, 막강한 네트워크와 미디어를 가진 보수 우파 기독교 지도자들의 목소리에 미칠 바 아니다. 아니 어쩌면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보수냐 진보냐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던 미국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차라리 침묵을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 <소저너스>와 짐 월리스는 대선 전에 뛰어든 민주당 후보들의 신앙과 정책을 검증하는 기회도 가졌다. 왼쪽부터 존 에드워드, 힐러리 클린턴, 짐 월리스 대표, 오바마.
“하나님은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니다”

하지만 짐 월리스(<소저너스> 편집인이자 대표)의 예언자적인 목소리가 침묵하고 있던 복음주의자들에게 제3의 길을 제시해주었다. “하나님은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니다”라는 말을 던지며, 양극화된 미국 교회의 정치적 패러다임을 흔들어놓았다. 진정한 도덕적 이슈는 성경에서 수천 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가난’이며,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이라크 전쟁이야말로 중대한 신학적 쟁점이라는 것을 천명했다.

낙태와 동성애 같은 자극적인 특정 이슈만 내세우는 공화당 측을 향해선 빈곤과 전쟁 같은 문제들도 도덕적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한편 종교를 개인적인 영역으로 간주하며 정치에 개입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민주당에겐 가난과 전쟁에 대한 문제를 정치적 과제로 삼도록 압박했다. 도덕적인 주제를 회피하지 말고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진정한 도덕적 이슈를 선점해 제대로 치고 나가라는 것이다.

공화당에게 이용당하는 보수 기독교인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했던 민주당도 기독교계 내에서 들려오는 신선한 목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침묵을 강요당하던 수많은 크리스천들도 신앙과 정치의 통합에 대한 대안적인 입장에 생기를 띠었다. 이는 미국인들이 밥상머리에서 금기시하던 ‘정치’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그것도 한꺼번에 두 가지 모두를 다룬 <하나님의 정치>라는 짐 월리스의 책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장기간 등극하는 이변을 몰고 온 이유를 잘 말해준다.

짐 월리스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한 원인을 도덕적 이슈 설정의 실패와 직결시켰다. 정교분리라는 원론적인 논리로 공화당과 기독인들을 비판하기만 했지 진정 성경이 말하는 도덕적 가치를 들고 나와 정치적 의제로 부각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도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머쥐려면 대중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도덕적인 이슈를 가지고 물고 늘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으로서는 포기할 수도 없는, 그렇다고 함께 갈수도 없었던 기독 유권자들과 연대의 실마리를 마련한 셈이다.

‘펜트코스트 2007’, ‘가난’을 대선의 도덕적 이슈로 제기

바로 이 시점에 <소저너스>를 비롯한 진보적인 복음주의자들이 던진 화두가 바로 ‘가난’이다. 대선을 1년 앞두고 워싱턴에서 열렸던 ‘펜트코스트 2007’도 이런 흐름에서 이해해야 한다. <소저너스>가 주관하고 3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후원했던 펜트코스트 2007은 개인과 교회가  ‘가난’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하고, 내년 대선 때 모든 정치인(공화당과 민주당)들이 ‘가난’이라는 주제를 진정한 도덕적 이슈로 삼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짐 월리스 역시 “어떤 대통령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며, “나의 관심은 성경이 일관되게 주목하고 있는 ‘가난한 자’에게 정치인들이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며 초점을 분명히 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Vote Out Poverty'(투표로 가난을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국회 의사당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그리곤 자신의 지역구 상·하원의원들을 만나 빈곤에 대한 문제를 놓고 토론했다. 또 <소저너스>는 부시 행정부의 서열 3위인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의장까지 불러 내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입장을 전해 듣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저너스>가 CNN과 함께 세 명의 민주당 대선 후보를 TV 앞에 불러 세운 것이 절정을 이뤘다. 짐 월리스를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질문을 던지며 압박했고, 에드워드와 바락 오바마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은 생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국민들 앞에서 설명해야 했다.

이는 짐 월리스와 <소저너스>가 대선 주자들과 정부 핵심 인물들을 불러내 토론장에 세울 정도의 무시하지 못할 정치적인 위치에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줄서지 않고서도, ‘가난’이라는 자신의 의제에 정치인들이 따라오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짐 월리스는 명망 있는 정치인이나 대권 주자들에게 줄서지 않고, 오히려 정치인들이 사회적 약자에게 줄서게 만들었다.

▲ 짐 월리스의 주된 관심사는 미국 대선에서 최우선 과제인‘ 가난’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설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가치에 정치인들이 줄서게 만들어야

그렇다고 짐 월리스와 <소저너스>가 민주당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 때부터 민주당 인사들이 짐 월리스를 영입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켰다. 정책은 지지할 수 있지만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은 지지하지 않겠다는 원칙에서다. <소저너스>와 짐 월리스의 중립적인 자리매김이 오히려 정치적인 영향력을 극대화했다는 것이 내외부의 평가다.

짐 월리스는 정치와 종교, 신앙과 삶의 통합을 이룬 모델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꼽았다. 마틴 루터 킹은 어떤 정치가도 지지한 적이 없었지만, 모든 정치가들이 그의 생각을 지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종 차별이라는 사회적 모순에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맞섰던 그는 도덕적 우월성과 정치적 중립성 모두를 확보했고, 결국 백인 교회마저 인종 차별 철폐 운동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그 시대에 구현해야 할 하나님나라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시대와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마틴 루터 킹에게는 '인종 문제’였고, 짐 월리스는 ‘가난’으로 규정했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더 이상 적합한 논쟁이 아니다. 교회는 정치 지도자나 정당에 줄서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나라의 가치에 정치인들이 줄서게 만들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부터 부자와 전쟁을 지지하고, 미국인들만 편들었냐”고 따져 묻는 짐 월리스가 정치판에 노골적으로 뛰어든 한국 교회를 보고 뭐라고 물을 지 궁금하다.

* <복음과상황> 205호(2007년 10월)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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