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행복커피에서 차 한잔 할래요
한신대 행복커피에서 차 한잔 할래요
  • 최유진
  • 승인 2012.03.31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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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껍데기 벗고 사람과 만나는 '카페 목회자' 김현일 대표

▲ 김현일 대표는 안정적인 수입과 수년간 공들여 사귄 단골손님을 뒤로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카페를 차리기 위해 과감히 짐을 쌌다. 그리고 지난 3월 수유리 한신대신학전문대학원 안에 '행복커피'라는 카페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누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움을 가지기 마련이다. '잘 할 수 있을까? 만약 실패한다면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 등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까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 본인이 있는 자리가 안정적이라면 생각은 더욱 많아진다. 이미 누리는 조건에 만족하고 머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두렵기는 해도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는 힘이 된다.

김현일 대표는 자족하기보다 도전과 유목을 택하는 편이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그는 소위 잘나가는 카페 대표였다. 안정적인 수입과 수년간 공들여 사귄 단골손님을 뒤로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카페를 차리기 위해 과감히 짐을 쌌다. 가게에 대한 어떤 권리도 행사하지 않은 채. 지난 3월 김 대표는 수유리 한신대신학전문대학원 안에 '행복커피'라는 카페를 열었다.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힘을 얻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카페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관계에 대한 갈증이 생기면서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한신대학교에서 ‘네가 하는 카페 우리 학교 안에서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한신대 신대원 02학번 출신이라는 인연이 매개가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려는 마음이 '인간 존중' 사상을 가진 한신대의 학풍과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루에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만 한 번도 대충 커피를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가능하면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서로 다른 행복이 모이는 공간

60여 평의 가게 중앙에 자리 잡은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국제아동돕기연합이 제안해 카페 한가운데 나무를 세우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세계 곳곳의 아이들 사진과 이야기를 나무에 열매로 걸어서 방문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취지에서다.

카페 곳곳에는 빈 책장을 진열했다. 여러 단체에게 분양할 예정이다. 현재는 '여성환경연대'와 티베트 탁아소 운영을 돕고 지원하는 '록빠'가 책장을 꾸미고 있다. 나중에는 분쟁 지역에서 평화활동을 벌이는 '개척자들', 공정 여행을 소개하는 '트래블러스맵', '정토회', 대안 잡지 <헤드에이크> 등이 입점한단다. 손님들이 카페를 와서 차만 마시고 가지 않고, 책장에 꾸며진 이야기를 읽으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행복커피는 손님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이용하도록 한다. 김 대표는 찻값이 일종의 회비와 같다고 했다. 돈을 냈으니 당연히 그만큼 누리라는 것이다. 그는 손님들이 내 집처럼 쉬고, 자유롭게 꾸며 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로 여러 가지 기획을 하고 있었다. 취재 날에는 하얀 페인트 칠만 되어 있던 벽이었지만 얼마 지나면 도자기 전시회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커다란 유리로 짜인 문은 따뜻해지면 활짝 열어서 공연장으로 변신을 꿈꾸고 있다. 날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풀리면 가게 앞 분수대가 켜지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 함께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는 곳으로 변할 것이다. 장소는 쓰고 싶은 사람이나 단체가 와서 마음대로 쓰면 된다.

껍데기는 가고

공간은 이미 신명나게 살고 있는 이들이 꾸며주면, 김 대표는 커피 맛을 책임진다. 그는 "커피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일종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루에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만 한 번도 대충 커피를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가능하면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신맛을 좋아하는지, 진한 것을 좋아하는지, 연하게 먹는지….

수입상을 돌며 질 좋은 커피콩을 찾아냈다. 그것도 손님 취향대로 아프리카와 남미의 다양한 지역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카페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직접 볶는다. 여기에 물 온도까지 체크하며 그가 직접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 맛을 잘 모는 사람이 마셔도 정성만큼은 쉬이 통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정성이 손님에 대한 배려라고 했다. 손님이 배려를 받는다고 느끼면 좀 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손님들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노력은 변화를 만들었다. 3개월 동안 웃지 않았던 사람이 웃게 된 이야기, 하루에도 두 세 번씩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 단순하게 가게 운영에만 급급했다면 볼 수 없었을 경험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김 씨는 "'정말 마음을 담아내고, 느낄 수 있는 카페를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목회자는 카페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예배당에 있는 커피숍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공존하는 공간 말이다. 진보와 보수, 사원과 사장, 불교신자 등등.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껍데기를 벗고 보면 이들도 결국 다 똑같은 사람이지 않을까. 신앙생활은 사람 자체를 보기 위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 대표는 카페를 통해 새로운 목회 모델을 제안하고 싶었다. 그는 목회자는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사회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커피를 만들며 내가 즐겁게 일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그 맛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 가게 중앙에 자리 잡은 나무(위)는 국제아동돕기연합의 제안으로 도움이 필요한 세계 곳곳의 아이들 사진과 이야기를 나무에 열매로 걸기로 했다. 책장(아래)은 여러 단체에게 분양할 예정이다. 현재는 '여성환경연대'와 티베트 탁아소 운영을 돕고 지원하는 '록빠'가 들어와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텀블러 환영, 간식 사들고 와서 먹어라

행복커피의 특징은 종이컵이 없다는 것. 테이크아웃을 하려면 텀블러나 개인 컵을 가지고 와야 한다. 이전 가게에서는 텀블러를 빌려 주는 형태로 운영을 했지만, 빌려 간 후 다시 가져오는 사람도 잘 없거니와 습관적으로 종이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아예 종이컵을 쓰지 말자고 했다. 개인 컵을 가져 오면 500원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점은 먹고 싶은 간식은 직접 사 와서 먹으라는 것. 앞으로 샌드위치와 주먹밥을 판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많은 간식거리까지 행복커피가 제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보통 카페에서는 외부 음식 반입을 금하지만, 이곳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을 사 와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단, 커피는 "행복커피보다 맛있는 곳이 없으므로 여기 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

김 대표는 1년 안에 행복커피가 전국적인 명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 자유롭게 손님들이 하고 싶은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말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도자기 전시회 이후 앞으로 어떤 에피소드가 벌어질 지 궁금해졌다.
▲ 김 대표는목회자는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사회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커피를 만들며 내가 즐겁게 일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그 맛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최유진 /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

* 이 글은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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