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인동산장로교회, 장애인과 함께 하는 예배
[현장] 한인동산장로교회, 장애인과 함께 하는 예배
  • 전현진
  • 승인 2013.09.17 2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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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매월 셋째 주 일요일, 한인동산장로교회(이풍삼 목사)의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은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찬양과 말씀, 봉헌과 광고 시간이 이어지는 주일 예배. 9월 15일 뉴욕 한인동산장로교회(이풍삼 목사)가 드린 이날 예배는 평소와 다를 것 없어 보인다. 이날은 매월 셋째 주마다 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다. 휠체어에 앉은 이들과 몸이 불편해 보이는 이들이 예배당 곳곳에 눈에 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엉켜 앉아 예배를 드리는 날이지만 번드르르한 겉치레는 하지 않았다. 이날 예배는 여느 날과 같다. 담임목사는 설교 시간에 복음 중심의 삶을 강조할 뿐. 그저 함께 앉아 말씀을 들을 뿐. 그 뿐이다.

장애인을 위한 특별 순서도 없다. 설교 중 특별히 장애인을 위한 삶을 강조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향해 '긍정 심리학'을 주입하지 않는다. 그저 교인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고 찬양을 올리는 일에 집중한다. 취재를 나온 기자가 무안할 정도로 평범한 주일 예배 풍경. 카메라를 들이댈 곳은 없다. 이벤트는 없다. 예배는 있다.

이날 장애인들은 자신의 연령에 맞춰 비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평소에는 교회 한 켠에 자리한 '사랑의 교실'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물론 비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들도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 교인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 특별할 것도 없다. 하지만 한인 교회와 한국교회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다. 장애인은 동정과 봉사의 대상일 뿐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형제와 자매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맹목적 동정에 장애인은 예배를 드리는 주체가 아니라, 봉사의 객체가 된다.

한인동산장로교회의 교인들도 처음 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꼈다고 한다. 첫 만남은 늘 어색하다. 손님을 맞는 것처럼 억지 웃음이 떠오를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어색함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무너진다. 한인동산장로교회는 이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분보다 '성도'라는 한 가지 호칭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장애인들을 위한 과장된 배려는 없다. 그저 예배를 드리는 일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만 남는다. 특별히 '장애'를 염두에 뒀다기보다, '성도'의 예배를 돕자는 것이다. 장애인들도 공동의회를 열거나 하면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한다. '한 표'가 상징하는 정치적 함의처럼, 교회 안에서 그들도 한 사람의 교인으로 서 있다.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돕는 것이다. 담임 이풍삼 목사는 물론 모든 교인들이 공유하려는 태도다. 성도의 예배를 돕는 것이다. 이런 배려는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라도 해당된다. 예배를 위해 교회는 헌신한다.
▲ 장애인들이 평소 예배 드리는 '사랑의 교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사랑의교실을 맡고 있는 이문범 목사는 사회복지학에 자주 등장하는 '접근권'이라는 개념으로 장애인을 포함한 교인들을 교회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몸이 불편한 이들이 예배의 공간에 나아가기 위한 물리적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 첫 번째다. 경사로를 세우는 등이 일이다. 또 수화 통역을 하거나 점자 자료를 제공하거나, 예배를 돕는 봉사자들이 함께 하는 것 역시 예배를 향한 접근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이 목사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심리적 접근권이다. 교인들이 서로 마음으로 가까워지는 일이다. 그리스도 안의 교제가 하나님을 향해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교회 안에서 이런 접근권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평소 사랑의 교실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성도가 서로 교제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같은 장소에서 예배한다. 그렇게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맞는다.

평소 눈에 띄지 않던 물건들도 내 앞에 등장하면 그 뒤부터 자주 눈에 비친다. 갓 입대한 군인은 휴가를 나와 보면 다른 군인을 쉽게 찾는다. 아니,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새 차를 산 이들은 자신이 새로 산 차종이 자꾸만 눈에 띈다. 자신의 일이 되면 자꾸만 눈에 띈다. 그렇게 군인도 새 차도 익숙해져 간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예배실에서, 식당에서, 교회 주차장에서, 장애인과 마주친다. 장애는 티브이 속에 비치는 안쓰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교회 지체가 살아가는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장애인을 자주 만나고 익숙해져 간다.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은혜가 필요한 한 사람의 성도로 인정하게 된다. 또 다른 의미의 겸손이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예배에 한인동산장로교회의 한 단면이 비친다. 그 속에 예배를 사모하는 교회의 마음도 보인다. 오랜 세월 장애선교에 참여하며 나눈 철학도 그대로 녹아난다. 하나님 눈에 비친 그 모습은 어떨까. 아마 특별하면서도 한결 같은 예수의 모습은 아닐까.

전현진 기자 / jin23@n314.ndsof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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