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x, 취업에 관한 위험한 보고서'
'The Ax, 취업에 관한 위험한 보고서'
  • 소로몬
  • 승인 2008.10.2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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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영화 세미나] 신자유주의 시대, 정글의 법칙

▲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의 포스터.
지난 10월 15일 열린 ‘신앙과 영화 세미나’(살림교회 주관)에서 <The Ax, Le Couperet>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라는 영화를 보고 ‘신자유주의 사회 = 정글의 법칙’이라는 주제로 토론했다.
 
영화의 제목에서 말하는 ‘Ax’란, 도끼를 의미하는 것으로, ‘목이 잘리다’ 즉 실직되는 것을 뜻한다. 영화 액스는 충격적인 장면이 많은 영화다. 유럽 영화였기에 가능한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헐리우드식의 권선징악적인 주제는 전혀 없고, 오히려 도덕이 사라진 모습에 대해서도 관객이 오히려 공감할 수 있게끔 하는 장치들이 다수 등장한다. 
 
주인공 다베르는 아침에 자신의 경쟁자들의 집을 찾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죽인다. 그의 모습 속에는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뇌는 보이지만, 양심의 가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우연한 상황들이 퍼즐 맞추듯이 들어맞아 그의 살인 사건들이 전부 감춰져 버린다. 이 영화는 이러한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상황을 신기하게도 가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온 가족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마중 나가는 모습을 통해 한 가장이 실직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실존적인 문제인지를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끔 함으로서 스토리 전체적으로 흐르는 비윤리성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못하게끔 한다. 결국 다베르는 경쟁자들을 전부 없애고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올라간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참 인상 깊다. 자신과 똑같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악한 자는 벌 받고 선한 자는 행복을 얻는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결국 악한 자는 또 다른 악한 자에 의해 제거되는 오늘날 이 사회의 악순환적 구조를 보여주는 듯하다.
 
발제를 맡은 천진석 목사(살림교회)는 먼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윤리성을 통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정까지 지배하는 모습의 한 단면을 비판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경제 질서가 ‘정글의 법칙’임을 주장하면서 오늘날 이러한 혼란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 실존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천 목사는 또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직업관의 변화에 대해 나누었다. 직업이라는 개념이 점점 비인간화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손쉽게 해고하는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평생 고용 정책'과 같은 것들은 이미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렸음을 지적했다.

또 이런 사회적인 문제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산층들에게 더 큰 문제가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 가운데 적응하지 못할 경우 개개인은 사회를 위해 실컷 이용당하고, 불필요해졌을 때 쉽게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천 목사는 "실직이라는 것이 더 이상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라는 것을 이 영화가 고발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다음은 발제 이후 나눈 자유 토론이다.

- 일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 존재의 의미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존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감사가 요즘에는 너무 부족한 것 같다.

- 이러한 사회 체제 하에서 어떻게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참 안타깝다. 하나님의 섭리 법칙대로라면 우리에게 안식도 있어야 하지만 오늘날 이 사회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 이후에 올 신세대는 어떻게 이런 사회의 모습들을 극복해 나갈지 참 궁금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해결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 나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한 경쟁자에 대한 태도를 보고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실직 이후 옷가게에서 모든 것을 거의 포기하고 좌절된 상태로 있었던 경쟁자는 끝내 주인공이 죽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렇게 삶에 대해 좌절한 사람은 비록 살아 있어도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민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연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회 가운데에서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이런 식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이 영화에서는 공동체적으로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이 마치 전쟁 중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들이 오늘날 많다. 성실했던 자신의 아빠, 남편을 한순간에 해고시키는 이 사회를 악, 적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들의 작은 비윤리적 태도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변하는 도덕적 가치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 이 영화에서 나오듯이 일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은 비단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중산층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엄청난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자신의 생활 패턴이 정착되면 모두 다 자신의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힘들게 사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Simple Life’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최소한 내가 이 정도는 살아야지’ 에 대한 기대감을 깨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실직된 자들을 교회 공동체 또는 사회 공동체가 위로해줄 수 있다면 그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진정한 의미에서의 직업 소명론이란 무엇일까? 주인공은 제지업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직업 소명론이라는 미명하에 이러한 강박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이러한 소명을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꼭 무슨 특정한 일만을 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직업 소명론이 아닌 것 같다. 진정한 소명론이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님이 특정한 일을 주셨을 때 그것을 향한 가슴 뛰는 열정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주체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나 자신’ 이 아니라 특정 일 또는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맞춰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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