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가 미국 대선 판도 갈랐다
'금융 위기'가 미국 대선 판도 갈랐다
  • 유성진
  • 승인 2008.11.21 0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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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오바마 행정부, 산적한 어려움 어떻게 뛰어 넘을까

세계의 관심을 불러 모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 국내 정치와 경제는 물론 세계 정치와 경제의 여러 쟁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북핵 문제, 경기 침제, 국내 양극화 등 여러 쟁점에서 미국 대선은 적지 않은 변화를 초래하리라 예상됩니다. 이 변화는 국내 세력과 정파 간 역학 관계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은 미국 대선과 관련하여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정태식 교수는 미국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인 양당 대선 후보들이 기독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확인한 후, 정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기독교의 정치 참여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방지하였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유성진 박사는 미국 대선에서 여러 쟁점을 검토한 후 금융 위기가 판세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합니다. 손병권 교수는 미국 대선이 한반도 정세 특히 북핵 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합니다. 세 글이 미국 대선과 관련된 여러 쟁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편집자 주)


2008년 내내 미국뿐 아니라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오바마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승자와 패자의 구분, 그리고 정치권력의 교체라는 선거의 결과는 이전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지만, 2008년 미국 대선은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정치적 소수자였던 여성과 흑인이 주요 대권 후보로 등장하였다는 점, 본선의 경쟁 구도가 흑인과 백인 후보 간의 대결로 압축되어 인종 문제를 둘러싼 우려와 기대가 선거 막바지까지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남아 있었다는 점, 그리고 경선과 본선 캠페인의 과열로 많은 유권자들이 참여하였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1952년 대선 이래로 현직 대통령 혹은 부통령이 출마하지 않은 선거였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율이 대선 캠페인의 구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결과의 측면에서 이번 대선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특징들로 인해 선거 막바지까지 결과에 대한 예측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1년여에 걸친 2008년 미국의 대선 과정을 추적하고, 현재의 결과를 낳게 한 요인들을 추론해봤다. 2008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두드러진 특징들은 무엇이며, 대선의 판도가 오바마와 매케인의 대결로 압축되고 오바마의 승리로 이어지는 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들은 무엇인가?

이미 지적했듯이 이번 대선의 일차적인 쟁점은 지난 8년간 공화당 행정부에 대한 평가였다. 점차 지리멸렬해져가고 있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증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 국내 경제의 악화가 부시 행정부의 낮은 지지율로 이어지고 있던 상황은 집권 공화당의 발목을 잡는 한편, 민주당에게 정권 탈환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현(現) 공화당 행정부에 대한 평가가 선거의 일차적인 구도를 형성하였음은 공화당의 경선결과에 잘 반영되어 나타났다. 지난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 기독교 우파로 대변되는 보수적인 백인 계층이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자리매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경선은 허커비라는 보수 성향의 후보가 아니라 중도 우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매케인의 손쉬운 승리로 마감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의 낮은 지지율로 인한 공화당 내부의 고민과 본선에서 당선 가능성의 고려가 작용하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손쉽게 후보를 결정한 공화당에 비해 후보 간 경쟁이 유례없이 오랫동안, 그리고 극렬하게 벌어진 까닭에 후보 경선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은 민주당으로 모아졌다. 대통령 영부인과 연방 상원의원으로서의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전략은 상대적으로 일천한 정치 경험을 보유한 오바마를 압박했고, 정치적 소수자였던 여성과 흑인 후보 간의 대결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오바마는 경선에서의 대결을 구시대 정치인과 신선한 정치인, 정체(停滯)와 변화 간의 구도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흑인으로서 그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약점보다는 변화를 기치로 한 그의 유세 전략에 민주당 유권자들이 더 큰 기대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일리노이 주에 정치적 기반을 둔 오바마가 대선의 경합 지역인 중서부 지역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보다 유리할 것이라는 민주당 내부의 선거공학적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취한 유세 전략은 매케인을 상대로 한 본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오바마는 경선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선의 구도를 구시대와 새로운 정치인, 그리고 정체(停滯)와 변화 간의 대결로 규정지었고, 이러한 전략은 매케인을 캠페인 기간 내내 수세적 위치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케인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화당 내부 지지 세력의 단합,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과 부동층의 지지 확보라는 어려운 과제들을 동시에 풀어내야만 하였으며, 이러한 목표는 매케인이 무명 정치인이었던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함으로써 해결되는 듯 보였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가족가치(family value)에 대한 수호자로서 포장된 페일린(Sarah Palin)의 이미지는 보수적 공화당원들에게 선택의 돌파구를 제공해주었고, 현(現) 행정부와의 일정한 거리 두기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중도 우파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와 맞물려 중도적 유권자들과 부동층의 지지를 끌어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여 대선을 박빙의 대결로 몰아가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정당 정치의 격화는 대선의 전체 판도가 몇몇 경합 지역에서의 결과에 의해 크게 달라질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러한 대선 구도 속에서 오바마와 매케인의 승부가 어찌될지는 예측하기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최된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는 예전과는 달리 두 후보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고, 때때로 승부의 분수령이 되었던 후보 간 토론회 역시 오바마의 우세라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그것 자체로 전체적인 판세를 변화시키지는 못하였다.
 
대선의 향방이 점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됨에 따라 유세의 양상은 후보의 약점을 들추어내거나 비방을 일삼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점철되어 오바마와 테러 집단 간의 연계설, 오바마의 암살 가능성, 매케인의 건강 문제 등 정책과는 상관없는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의 가능성은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오바마의 지지율이 자칫 허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면서 대선의 구조를 박빙으로 지속시켰다.

예측하기 어려웠던 대선 구도를 민주당 쪽으로 급격하게 돌려놓은 결정적인 사건은 ‘금융 위기’였다. 9월 중순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 신청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미국의 금융 위기는 전세계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그 책임 소재의 핵심에는 부시 행정부가 있었다.

부시 행정부의 방만한 경제 정책과 전쟁으로 인한 국고 낭비는 국민 비난의 표적이 되었고, 오바마의 캐치프레이즈인 ‘변화’의 필요성을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매케인은 캠페인의 동력을 상실한 채 미국 경제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데 집중하여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선거 직후 행해진 출구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경제 문제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 중 90% 가까운 응답자가 미국의 경제 상황에 부정적인 인식을 표현하였고, 60%가량이 경제 문제를 후보자 선택에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고 대답하였다.

본선 경쟁이 시작되기 이전에 주요 쟁점으로 예측되었던 테러리즘과 이라크 전쟁은 ‘금융 위기’의 발발에 묻혀 버렸고 많은 유권자들이 경제 위기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그 해답을 오바마와 그의 ‘변화’에서 찾았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 2008년 미국의 대선은 부시 행정부의 실정으로 민주당에게 유리한 분위기로 시작되었으나 흑인 대통령 후보에 대한 우려 속에서 팽팽한 국면으로 전개되었고, ‘금융 위기’와 함께 전면에 부상한 경제 문제가 판세를 가름하여 결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오바마가 흑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압승을 거두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금융 위기’로 인한 경제 문제의 부각과 이에 따른 공화당 행정부의 참패는 오래된 선거 경구인 “throwing the rascals out”이 여전히 유효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종적인 결과에 비추어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오바마 승리의 일등 공신은 부시 현(現) 대통령'임은 틀림없으나 ‘금융 위기’가 없었다면 대선의 결과가 600만 표 이상의 격차라는 공화당에게는 실로 참혹한 패배로 이어졌으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아마도 오바마의 근소한 우세 속에 민주·공화 양 당의 격렬한 다툼 속에서 막판까지 예측 불허의 승부를 계속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선의 결과는 최대 경합 지역이었던 오하이오와 플로리다를 비롯하여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이 차지했던 버지니아·콜로라도·뉴멕시코·오아이오와 등 여러 주들에서도 민주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특이한 사실은 민주당의 바람대로 중서부 지역에서 민주당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공화당의 아성이었던 버지니아와 로키산맥 주변의 몇몇 주들이 오바마를 선택하였다는 점이며, 이러한 결과는 미국 대선의 지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지지자들의 측면에서도 민주당은 흑인은 물론 백인들에게도 과반수가 넘는 지지를 받았고, 앞으로 지속적인 지지 계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젊은 유권자들과 중남미계 이민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공화당과의 경합에서 장기적인 우위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게다가 동시에 치러진 상원과 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이전의 우위를 더욱 확고하게 굳힘으로써 새로운 단점 정부의 탄생과 함께 일련의 개혁 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렇지만 차기 민주당 행정부가 산적한 어려움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헤쳐 갈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의 ‘금융 위기’가 단시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임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라크 전쟁의 종식 역시 많은 국내적 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

또한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 유권자들의 기대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실망만큼 높다는 점 역시 차기 행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민주당 단점 정부가 산적한 국내외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유성진 /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BK21 아메리카 지역 연구 사업팀 연구원 

* 이 기사는 한반도평화연구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홈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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