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이야기] '출로' 혹은 레슬링 선수
[쿠바이야기] '출로' 혹은 레슬링 선수
  • 최명숙
  • 승인 2008.12.23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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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슬픈 쿠바의 현실

내가 요즘 가장 알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아바나 시내버스 노선이다. 하지만 쿠바에서 가장 오래 지낸 한국 분에게 물어봐도 정보를 얻을 수 없다. 그분은 물론,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승용차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일단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장 먼저 얻기 마련이다. 자신의 필요와 관심사를 중심으로 인지 범위를 넓혀나간다. 나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나는 쿠바에 사는 한국 사람 중에서 시내버스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첫 번째 사람일 뿐이다.

내가 시내버스 노선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어디든 구석구석 다녀보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관심사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면 종교, 예술이면 예술, 음식이면 음식, 이렇게 특성화된 관심이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 글쟁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내 발길을 잡아끌고 내 눈을 붙들지 알 수 없다. 사람, 건물, 개, 가게, 공원, 꽃이나 나무, 전봇대, 자동차, 구름, 혹은 굴러다니는 쓰레기, 그 어떤 것이라도 내가 알고 싶은, 또 알만한 가치가 될 수 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부지런히 다니면서 겪어봐야지, 하고 문득 문득 결심하게 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결심한 어느 날의 이야기다. 딸애의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 몇 번인가 그냥 지나쳤던 가게를 그날은 들어가 보고, 여기는 무슨 가게라고 이름 붙일 수 없이 되는 대로 중고품을 갖다 파는 가게구나 하는 것을 알기도 했다. 동네 서점은 좀 다를까 싶은 기대로 들어가 입센의 희곡집 하나와 주인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추천 받은 책 중 추리소설 하나 (물론 쿠바 작가의 작품은 아니다), 딸애 것으로 얇은 이야기책 한 권을 모두 합해 30페소쿠바노, 2천원이 좀 못 되는 돈으로 샀다. 우체국에선 무슨 서비스를 하나 들어가도 보고, 고기 파는 가게, 정체불명의 직접 제조한 와인을 파는 집 등도 한 번씩 기웃거리며 그렇게 계속 길을 걸었다.

사실 정처 없이 걸은 것은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카사델라 무지카'(음악의 집)를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가면서 길을 세 번 물었다. 처음엔 초소 안에 있던 경찰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 쪽으로 가면 길 번호가 점점 커지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어디를 찾느냐고 되묻고는 한번 설명해주고 나서 알아들었냐고 다시 확인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초소에서 나와 나를 붙들고 방향을 가리키며 다시 한 번 설명해주었다. 두 번째는 얼굴에 주름이 군데군데 커튼처럼 늘어진 어떤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정확 명료하게 가르쳐줄 만한 인상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그 할아버지에게 말을 시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어설픈 예상과 달리 할아버지는 눈빛도 말투도 선명했다. 할아버지 역시 나를 길가로 잡아끌어 멀리 길 끝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했다. 내가 주소를 잘못 외우고 있었다는 것도 그 할아버지 아니었으면 몰랐을 것이다. 세 번째는 바로 목적지 앞에서 어떤 흑인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서 위쪽을 보았다면 안 물어봐도 되었을 텐데…. 자, 이 흑인 청년. 이 청년이 이번 이야기의 중심 소재다.

조금만 고개를 위로 올렸다면…

나는 길을 물어봤을 뿐인데, 이 청년은 '카사델라 무지카' 안까지 같이 들어와서 공연 일정을 같이 봐주며 이것저것 설명을 했다. 이런 행동은 쿠바에선 별로 특별한 게 아니다. 하나를 물어보면 적어도 두 개, 많으면 열 개까지 가르쳐주는 게 쿠바인들의 친절한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카사델라 무지카'는 쿠바의 가수들이 살사, 레게똥, 재즈 등을 공연하는 곳인데 외국인들에게는 가격이 꽤 비싸다. 나는 쿠바 대중음악도 한 번 직접 들어보고 싶고 공연장 분위기도 보고 싶었지만 공연시간도 늦고 입장료도 만만치 않아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 흑인 청년이 자기가 현지인 입장료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고 함께 공연을 보고 집까지 무사히 바래다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내가 그곳에 알아보러 간 것은 낮이었기 때문에 다시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만일 여기까지, 그 흑인 청년의 호의에 대해 누가 봐도 호의 이상의 흑심이 뻔히 보인다고 한다면, 내가 멍청하다고 밖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쿠바 사람들이 소위 '오버'라고 할 만큼 친절하기 때문에 나는 별 의심 없이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물론 내가 사람들의 흑심 혹은 뒤에 숨겨진 의도를 눈치 채는 데 소질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그 청년은 학생이라고 했다. 레슬링을 훈련하고 있으며, 올해 베이징 올림픽 때는 무릎 부상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 나았고 다음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자기의 것'이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별로 의심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학생증을 꺼내 보여주기까지 했다.

   
 
  ▲ 쿠바의 길거리 공연.  
 
약속은 밤 열한 시였다. '카사델라 무지카'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집 앞에서 도무지 택시가 잡히지 않아 열한 시 반이 훨씬 넘고 말았다. 낮에야 충분히 걸어갈 수 있지만 밤에는 혼자 걷기가 곤란한 거리라 그 청년에게 전화를 해서 택시가 없어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기다리니 그가 나타났는데, '카사델라 무지카' 말고 다른 곳을 가자고 했다. 오늘 밤 공연 입장료가 20CUC나 되니 너무 비싸지 않느냐며 비슷한 공연장이지만 좀 저렴한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 청년과 나는 버스를 타고 아바나 신시가지 쪽으로 갔다. 처음으로 그런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타 본 나는, 대학생이 채 안되어 보이는 앳된 청소년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며 소리 지르고 미친 듯이 노는 모습을 보았다. 번화가로 나갈수록 밤이 아닌 듯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밤거리와 그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내가 보는 화면 속엔 나도 있었다. 침착해보이지만 몸 어딘가에는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이방인. 이 이방인은 별 탈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선뜻 따라나설 땐 언제고, 불안해 보이는 이 이방인을 걱정하며 지켜보는 난 또 뭔가?

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게 계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기가 넘쳐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 순간에 맡겨버리고 어떻게 되어가나 지켜보곤 한다. 아직 결말이 나지 않은 이야기를 작가가 쓰는 것과 동시에 읽고 있는 기분으로…. 어찌 보면 참 대책 없는 무모함이다.  

가끔 만나는 쿠바인의 거지 근성

흑인 청년은 나를 아주 천박한 술집으로 데려갔다. 입장하면서 두 사람 몫으로 10CUC를 내라고 했다. 그 순간에 나는 레슬링 선수라는 그 청년을 최초로 나쁘게 보기 시작했는데, 왜냐면 자기 입장료까지도 당연히 내가 내야 한다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길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고 내가 찾는 곳까지 함께 걸어가 준 뒤, 이렇게 친절하게 해줬는데 돈은 좀 안 주냐고 손을 내미는, 간혹 만나게 되는 거지 근성의 쿠바인들과 비슷한 태도였다.

한 눈에 봐도 그곳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나는 즐기러 간 것이 아니라 '보러' 간 것이기 때문에 일단 들어갔다. 어둡고 칙칙한 실내에 조야한 빛깔의 조명들이 켜져 있고 무대에선 여자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도 자리가 없어 잠시 서 있다가 겨우 테이블이 비어 앉았다. 음료를 시키겠냐고 해서 쿠바 맥주를 시켰더니 그 청년은 또 다시 친절하게도 나에게 3CUC라고 일러주었다. 나보고 내라는 것이다. 돈이 없다고 했다. 정말로 돈이 없었다. 쓰려고 마음먹은 돈만 주머니에 찔러가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여자 가수가 노래를 끝내더니 무희들이 나와 춤을 추었다. 그 청년은 무희들을 가리키면서 아름답지 않느냐며 흥을 돋우려 했지만, 그 정도 봤으면 다 봤다 싶었던 나는 나가겠다고 했다. 들어간 지 10분이 채 지났을까?        

자기 돈으로 산 거라 아까웠던지 굳이 맥주를 들고 그가 따라 나왔다. 왜 그러냐고, 마음에 안 드느냐고 캐물었다. 내가 원한 건 저런 공연장이 아니었다고, 시간이 늦어 피곤하니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청년과 나는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차를 기다렸다. 벤치가 놓인 정류장엔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차까지 끊겼는지 오랫동안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 청년과 나는 대화를 좀 했는데, 참 어이가 없었다.

이런 지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쓴다는 게 정말 거북하지만 요약해보자면, 그 레슬링 선수라는 청년이 나에게 일종의 사랑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하는 말의 내용을 이해했을 땐, 더 이상 나도 아주 멍청하지는 않았다. 사람을 잘 믿고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렇게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들었을 땐 판단력은 생긴다. 최대한 잘 봐줘도 그 말이 진심일 가능성은 약 5퍼센트 정도? 거의 백 퍼센트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희박한 5퍼센트의 진실에 기대어 최대한 진지하게 대응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는 지나치게 빠르지 않느냐, 나는 네가 여느 쿠바인들처럼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 생각했지 그 이상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현재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며, 너에게 고마운 마음 이상은 결코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만일 너의 호의를 받아들인 내 행동이 너에게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정말로 미안하다"라고 설명하면서.

어쩌면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너희들 쿠바인들은 외국인을 봉으로 안다면서? 내가 돈 잘 벌게 생긴 외국인이니까 어떻게든 잘 사귀어서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 또 잘하면 같이 외국으로 나갈 수도 있으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접근하는 거 아니야? 라고 비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물론 힘도 세 보이는 레슬링 선수의 심사를 건드리는 게 그다지 안전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계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때가 사람들이 많은 대낮의 공원이었어도 아마 나는 그를 비난하기 보다는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성실하게 반응해줬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팔팔한 청년이 정말로 그런 거지 근성의 건달이 아니길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그 초스피드의 인스턴트 사랑 고백을 사실로 믿고 싶어서가 아니다. 너무도 유치해서 휘말린 것조차 기분 더러운 그런 천박한 고백일지라도 적어도 그게 사람을 이용해먹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선수가 그것도 쿠바에서 자랑하는 종목 중 하나인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라는 건장한 젊은이가 자기보다 십년 이상 나이 많은 외국인 여자를 보고 '저 여자를 꼬여서 좀 우려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정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사람이 그렇게까지 저열해진다는 걸 나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내가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제비족이니 꽃뱀이니 세상에 그런 일들이 많고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왜 이곳 쿠바에서 새삼스레 그런 일들에 치떨게 되는 것일까?

두어 달 전 한국 남자 분들이 쿠바에선 마음만 먹으면 두세 명의 여자도 동시에 데리고 살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그 이야기가 아주 딱 싫었다.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이 쿠바인들에겐 팔자를 고치는 가장 이상적인 길이라고, 공짜로 집 생기고 밥걱정 안 하고 좋은 레스토랑과 좋은 곳으로 놀러 다니고 잘 하면 외국도 나갈 수 있는데, 그것처럼 좋은 게 어디 있겠냐고 했다. 그러니 외국인이 쿠바 여자를 데리고 살기는 누워서 떡먹기라고, 그런 여자 소개시켜 주는 남자나 또 외국인 여자를 꼬여서 같이 사는 남자를 '출로'(Chulo), 우리말로 하자면 '기둥서방' 정도의 뜻으로 부른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 자체에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럼 어디 여자 한번 데리고 와 보세요. 아무리 살기가 어려워도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따라나서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라고 따지고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남자 분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기는 싫다.      

왜일까? 아마 나는 아직까지도 내 마음속에 만들어놓은 쿠바의 순수한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면서, 적어도 이것만은, 최소한 이 부분에서만은 하고 기대를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쿠바만큼은 가난해도 꼿꼿한 자존심을 지켜주기를, 그것 하나만큼은 잃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청년을 만나고 난 뒤로는 길에서 인사하는 쿠바 남자들에게 선뜻 웃으며 답해주기가 꺼려진다. 예를 들어, 오늘 집에서 회사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약 20분 동안 나에게 말을 건 남자는 세 명, 지난 주 집 근처 시장에 다녀오는 길엔 다섯 명 정도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일 것이다.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 여자에게 던지는 추파, 순수한 호의…. 그러나 그 중엔 나를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 될 거리'로 보는 이가 있다는 것이 서글픈 일이다.

며칠 전, 신혼여행으로 2년 10개월 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한국인 부부와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어느 나라 어느 곳이 제일 좋더냐고 물었다. 그 부부는 서슴지 않고 중동 지역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선 여행자를 '돈벌이'로 보지 않고 대접해줘야 할 '나그네'로 대해준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 말이 맞다 싶었다. 세상의 어떤 빼어난 풍경, 어떤 찬란한 유적이 소박하고 따뜻한 인심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이제는 누군가 쿠바에서 사는데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부족한 물자도, 음식도, 문화도, 불편한 교통도 웬만큼 다 견딜 수 있지만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 많은 외국인'으로 보는 몇몇의 쿠바인들이야말로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말할 것 같다.

쿠바에 꽤 머문 분에게 그날 만났던 레슬링 선수 얘기를 했더니, 두 말 없이 '출로'란다.  내가 낸 술집 입장료 10CUC 중에 그가 반은 먹었을 거라고 했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다시 돌려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두말없이 돌려주고 깨끗이 돌아간 걸 보면, 아주 추접스러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 청년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2012년 올림픽 때 레슬링 선수로 나오는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싶다. 최소한 그것은 거짓이 아니길 바란다.

최명숙 / 희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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