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내상외감(內傷外感)
한국 교회의 내상외감(內傷外感)
  • 최종운
  • 승인 2009.01.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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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자폐증에 걸린 한국 기독교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병의 원인에는 내상외감(內傷外感)으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내상(內傷)은 몸 안의 주인인 마음의 상함, 즉 상심(傷心)으로 인해서 생긴 병으로 소프트웨어적인 병입니다. 인간의 미세한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칠정(七情)의 병적인 흐름을 질병의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상화된 단어인 스트레스가 내상의 주요 인자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병의 80%정도가 내상으로 인해 생긴 병으로 생각됩니다.

한국 교회 역시 내부적 요인으로 인해 복음이 실종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모든 행위가 성경에서 멀어진 인간의 정치 공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의 명예, 목회 성공, 믿음의 탐욕에서 비롯됨에 따라 복음이 불완전연소되어 사회 속으로 매연이 너무도 많이 나와 사회는 교회를 보고 정화하라고 자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복음이 불완전연소된다면 엔진을 보링하거나 교체하여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교단을 좌지우지하는 브랜드 목사들의 불완전한 엔진은 교체하거나 폐기하여야 합니다. 이들이 뿜어내는 매연은 너무도 지독합니다. 교회 공기를 흐리게 하고 사회도 머리를 흔듭니다. 자동차 차체와 디자인은 너무도 화려하지만 엔진은 썩어 불완전연소로 매연가스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차안에서 타고 있는 사람은 잘 모르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게 하고 있습니다.

20% 정도를 차지하는 외감(外感)은 바이러스 침입으로 인해 생긴 감기나 전염병뿐 아니라 외부에서 상한 음식을 먹어 탈이 생긴 것도, 각종 안전사고도 외감(外感)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외감에 속하는 전염병은 많이 없어졌지요. 외감으로 인한 병은 현대 의학이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해결하였지만 두 개, 세 개의 문제는 미해결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교통사고입니다. 교통사고는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생활 속의 암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을 듯싶습니다. 암도 만만치 않지만요. 2차 대전 때 죽어간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 년 동안에 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암이란 한 생각의 응어리와 암 유발 물질이 뭉친 것으로서 오는 병입니다. 이때 한 생각의 응어리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스트레스를 말하겠지요. 현대 문명의 속성이 다 그렇지요. 탐욕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자라고 열매를 맺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상외감(內傷外感)의 형태가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시 그 비율은 한국 교회 안에서 80% 정도가 내상의 형태로 문제를 나타내고 있고 20% 정도의 외부적 요인의 문제가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내상의 형태로는 목사 개인의 목회 탐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복음의 사적 유용 내지는 오용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복음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의 목회 성공 야망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복음을 매개로 성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회 야망의 극대화를 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목사는 '삯군 목사'로 병들어가고 있으며, 그런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 역시 세상의 교회로 타락하고 있고 저질의 교회로 전락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교회 신뢰도의 추락에는 바로 내상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필자는 이번 연초 감기 몸살을 앓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몸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과 특히 먹는 것에 대한 탐욕을 절제하여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 것입니다. 허지만 주위에서 많은 유혹이 뒤 따릅니다. 물론 커피, 음료수, 박카스 등 선의의 대접이겠지만 필자에게는 독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난감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필자와 같이 디스크, 관절염, 감기몸살의 생리적, 병리적 원인을 알아 자가 치료를 하면 다행이겠지만 한국 교회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도 활용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영적자폐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 비 복음적인 요소가 분명이 있는데도 애써 외면을 하고 덩치만 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교회 안의 병리적 현상을 지적하고 있어도 수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암 유발 인자가 포진하고 있는데도,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이게 한국 교회를 불치케 하고 있습니다. 암전문의가 암을 앓고 있는 사실을 굳이 외면하고 있듯이 목회 기능사, 신학 기능사가 불치의 영적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자본주의 기능적 사회에 편입된 목회 기능사의 탐욕적 목회 암 덩어리가 확산되어 숙주인 한국 교회를 죽여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성도들 역시 알게 모르게 가마솥의 개구리처럼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한 것처럼 한국 교회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를 살리는 길은 종교가 담당해야 합니다. 종교가 한국 사회의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입니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가 좋아야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떠들썩하게 국민들에게 다가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것도 기분 좋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눈살 찌푸리게 다가와서 국민들로부터 호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차제에 교회는 복음을 바로 이해하여 국민들에게 비전을 주는 소프트웨어를 제시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불교와 천주교는 조용하게 품위 있게 국민들 마음속에 다가오교 있습니다. 통계의 의하면 개신교회는 감소하고 불교와 천주교는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정치는 패거리 정치이듯이 국민의 마음을 감동하지 못하는 종교는 양아치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개신교회의 저질스런 양아치의 요란한 구걸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새로운 문명의 가치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때 교회도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불교와 천주교와 개신교의 옷을 다시 디자인하자는 것이지요. 영양소는 동일한데 부르는 명칭이 다를 뿐 그 명칭을 다르게 사용함으로 인해 이질감과 저항감, 배타적으로 작용하고 종교 정치적 이해관계가 상충됨에 따라 서로 적대시, 원수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각 종교의 좋은 점을 합쳐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통합적인 종교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물론 종교 세력의 부패한 기득권이 포진하고 있음에 따라 불가능하리라 생각하지만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종교 간 이해와 화해와 교류, 협력을 위한 노력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호배타적으로 적대시하지는 말자는 것이지요.

한국 경제의 위기도 따지고 보면 내상외감형입니다. 80%의 원인이 내부적으로 있고 20% 정도의 원인이 외부적으로 주어져 지금 우리는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한 세대 이전의 생활로 되돌아갈 각오를 우리 국민 모두가 한다면 지금의 경제 위기는 충분히 극복하리라 생각합니다. 허리끈을 졸라매고 자동차 사용을 자제하고, 낭비, 사치, 화려한 고급 식생활을 개선하고 모든 생활 속에서 검소하게 생활한다면 충분히 현재의 경제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힘들 것 같습니다. 너무도 빨리 자본주의 문명사회 생활에 익숙하다 못해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금단증세도 있어 이전의 궁핍한 생활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정치 지도자는 존경을 받기가 아주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독립운동을 한 분이나 해방 이후 몇 분의 정치 지도자를 제외하고는 희소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들 중에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듯이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목사들 중에 존경을 받을 인물이 얼마나 있을지요. 아마도 평가 기준에 따라 존경의 대상이 있겠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사회를 살리느냐 죽이느냐는 종교 지도자들의 처세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한 종교 지도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선지자, 종들은 숨어 있기를 좋아합니다. 가라지가 공중에 날아다니기를 좋아하듯이 한국 교회 지도자라고 자차하는 인물들이 대개는 가라지처럼 명예의 하늘에 떠다니기를 좋아합니다. 대표적인 교단으로 감리교단이 그러합니다. 감독이 무슨 대단한 영광인 것처럼 목숨을 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한낱 들풀의 영광보다도 못한데 말입니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국민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정치 지도자들도 국민들과 한 몸이 되어 우리나라의 위기는 극복이 되리라 믿습니다. 성도들과 국민들과 따로 노는 따로 국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은 썩어지는 밀알 같은 지도자가 없음을 우리는 안타까워하는 현실입니다. 지도자들은 모두가 립서비스를 잘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법(성경)대로 하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식의 공염불의 전세 구호가 사라져야 진정한 국가의 정치 행위, 교회 정치 행위를 담당하는 온전한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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