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 만 악의 뿌리'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 만 악의 뿌리'
  • 이승규
  • 승인 2009.05.04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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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말씀 컨퍼런스 둘째 날, 송영재 목사, 김한요 목사 강의

열린 말씀 컨퍼런스 둘째 날에는 LA에서 온 송영재 목사(남가주늘푸른선교교회)와 김한요 목사(세리토스장로교회)가 '청빈론과 청부론, 그리고 성경적 대안', '돈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가'란 주제로 각각 강의를 했다.

송영재 목사는 "성경은 재물을 쌓아두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하기 때문에 청빈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청빈론과 청부론 모두 성경이 말하는 재물관은 아니다"고 했다. 송 목사는 "돈은 은사가 아니라 은혜다"며 "돈이 은혜라는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 남에게 나눠주라는 얘기가 된다"고 했다.

다음은 송영재 목사 강의를 요약한 것이다.

   
 
  ▲ 송영재 목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복은 복음을 뜻한다며, 우리 자신이 바로 복이 되어라고 말했다.  
 
빌립보서 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청빈론도 청부론도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족함과 넉넉함을 가지고 하나님 일을 감당했던 바울을 보면서 청빈론이나 청부론이 해답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해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돈이 적을 필요도, 그렇다고 많을 필요도 없다.

성경은 청빈론에 쏠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단지 깨끗하게 벌어서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청부론도 문제는 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쌓아두지 말고, 나누어 주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자유함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에게 복이라는 것은 복음을 말한다. 복음이 곧 복이다. 팔복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왜 그런가. 심령이 가난해지면 모든 것을 귀하게 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귀한 사람이 바로 부자다. 돈이 많은데, 너무 많아서 돈이 귀하지 않으면 부자가 아니다. 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심령이 가난해지게 되어 있다. 한국말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먼저 나오는데, 원어는 복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복음이 있으면 심령이 가난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너무 가진 게 많아서 귀한 게 없어지면 가난한 사람이다.

인간이 왜 돈을 좋아하나. 돈을 통해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돈을 통해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이미 복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복음이 바로 우리 복이다. 재물 문제는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얻으면 저절로 해결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물질 통해 가치를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복음이 바로 복 그 자체이기 때문에 청지기라는 게 필요하다. 이 세상은 재물을 가급적 많이 쌓아놓고 사치하는 것을 경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경제는 이게 아니다. 평정을 유지하면서 충만함 속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돈이 은혜냐, 은사냐. 은사는 받은 것이다. 은혜는 우리가 맡은 것이다. 받은 것은 남에게 주지 않아도 되지만, 받은 것은 나눠줘야 한다. 돈은 은혜다. 우리가 받은 게 아니다. 돈은 내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돈을 은사로 만들어 놓으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열등감에 빠진다. 돈을 흘려보내라. 돈은 손에 쥐고 있는 물과 같다. 잠시 우리 손에 있지만 결국은 빠져 나간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나라를 가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러분이 바로 복이 되어라.

두 번째로 강의한 김한요 목사는 "돈을 사랑함이 일 만 악의 뿌리라는 말이 맞다"며 "돈은 악한 죄인이 만지기 때문에 돈을 만지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돈은 거듭날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돈은 복이 될 수 있지만 그 복으로 힘을 키우고 타락하는 순간 주님은 촛대를 옮긴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김한요 목사 강의를 요약한 것이다.

   
 
  ▲ 김한요 목사는 돈은 일 만 악의 뿌리라며, 돈이 생기는 것을 축복이라고만 해석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나온다. 영어 성경은 나아만을 "very rich" 하다고 한다. 이렇게 나아만은 큰 부자였다. 하지만 나병(문둥병)에 걸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병 환자를 외면했다. 그런데 나아만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았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생활을 누렸다. 그런데 요단강에서 엘리야를 만났다. 엘리야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라고 했다. 나아만은 그냥 돈 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엘리야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의 가치는 그리스도로 인해 결정된다.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나아만은 돈이 많이 있었지만 엘리야는 거절했다. 은혜를 돈으로 갚았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나에게 신분을 준다고 생각하고, 돈이 없어 열등감을 느끼는 분들은 돈의 유혹 앞에서 힘 없이 넘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아만의 돈을 거절했던 엘리야를 보면서 이겨내야 한다.

돈은 일 만 악의 뿌리다. 돈을 만지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돈도 거듭날 수 없다. 재물이 복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복으로 힘을 키우고 타락하면 주님은 더 이상 복을 주지 않는다. 촛대를 옮긴다. 그래서 돈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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