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절망 딛고 '보츠와나'를 품다
장애와 절망 딛고 '보츠와나'를 품다
  • 방지은
  • 승인 2009.12.26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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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직업학교 전 교장 김해영 선교사를 만나다

   
 
  ▲ 보츠와나에서 14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한 김해영 선교사  
 

"보츠와나보다 더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척추장애라는 불편함을 딛고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14년 동안 선교사로 봉사하다가,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해영 선교사(전 보츠나와직업학교 교장)의 첫마디다. 그의 커다란 포부는 자그마한 키를 가리고도 넘쳤다.

5남매 중 맏이로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주벽으로 척추에 손상을 입어 장애인이 된 김 선교사의 어린 시절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 5남매의 가장 역할까지 해야 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자살과 정신 질환을 앓던 어머니의 학대로 결국 집에서 나와 가정부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에게 편물 기술을 배울 기회가 찾아왔다. 한남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6개월간의 편물 훈련 과정을 마친 후 부단한 노력 끝에 83년 유엔이 장애인의 날을 기념에 여는 대회에서 기계편물직종 분야 금메달을, 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와 85년 국가대표 세계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모두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대한민국 철탑산업훈장도 받았다.

 기술적인 전문성을 갖게 해준 직업전문학교가 김 선교사에게 준 가장 큰 수확은 부모·형제보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면부지인 저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일관하는 선생님이 정말로 고마워,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원하는 곳이 아닌, 너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었다는 그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 6개월의 보츠와나 단기 선교에 나서게 된다. 이것이 그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 입시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그는 하나님 음성을 듣게 된다. "네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너를 원하는 곳을 가면 어떠하냐."

문득 그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절망과 가난, 장애를 딛고 일어섰는데,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성공에 집착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김 선교사는 그동안의 표면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반성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프리카 보츠와나 행을 택하게 됐다. 김 선교사는 "불편한 몸으로 아프리카 행을 결심한 건 적어도 하나님을 만나면 '주님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보츠와나 어린이들 속에서 어린 시절 자신을 보다

6개월 단기 선교로 보츠와나로 갈 당시만 해도 10년이 넘는 기간을 보츠와나에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런 그가 현지 장애인들을 위한 직업학교에서 처음 4년간은 평교사로 10년은 교장으로 생활을 했다. 교육이나 선교에 관한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이 보츠와나 학교 시스템에 잘 부합하는 성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교육과 학생에 관한 고정관념이 없는 그였기에 더욱 쉽게 학생들과 융합될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 스스로도 자신들보다 약해 보이고 작은 김 선교사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에 그를 밀쳐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건강한 선교사보다는 김 선교사가 전하는 교육과 선교의 효과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들을 보면 어린 날의 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저를 가난과 고통,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강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그들과도 만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김 선교사는 장애인이란 편견 없이 자신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순수함에 감동했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그는 14년 동안 보츠와나를 떠나지 못했다.

   
 
  ▲ 보츠와나 직업학교 목공과 학생들의 실기 시간 <사진 제공 김해영 선교사>  
 
준비된 선교사, 다시 보츠와나로 향하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사업(Social Work) 석사과정에 있는 그는 내년 5월 학업이 끝나면 보츠와나로 다시 돌아간다. 보츠와나를 떠나 미국으로 오게 된 이유를 묻자 김 선교사는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은 제가 추구해온 교육 방식의 적절성에 대한 확인 작업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학생을 대하는 일, 많은 성찰과 지혜가 필요했던 이 일들을 제대로 진행해 왔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제 밑그림과 학업 내용이 부합돼, 저의 교육 방식에 대한 확신도 들고, 자신감도 커졌습니다"고 밝혔다.

처음 보츠와나에 갔을 땐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김 선교사.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올 확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체험하고 14년 후에야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한다. 그는 보츠와나에서 숱하게 보아온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의 정신이 무엇인지, 왜 하나님이 필요한지. 이제 내년 5월이면 그는 소원하듯 보츠와나로 돌아가 선교 사역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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