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중요한 건 '부동성' 아닌 '적응성'
교회에 중요한 건 '부동성' 아닌 '적응성'
  • 박철
  • 승인 2010.02.02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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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세상 속 교회,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 것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세계는 변하고 있습니다. 역사도 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 변화하는 세계 속에 있습니다. 그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겠습니까? 산속으로 들어가는 섬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 빛과 소금을 발하는 교회로서 어떻게 이 변화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변해야 하며 무엇이 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세상은 변합니다. 모든 것이 변합니다. 과학도, 윤리도, 사회도 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변화무쌍한 세월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변하는 세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색깔입니다. 다양한 컬러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속도입니다. 신속히 변해 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일이 년 아니, 자고 깨면 바뀌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합니다. 모세가 시편 90편에서 고백한 사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를 실감나게 합니다. 셋째는 변화입니다. 동일한 일이나 사건을 지속적으로 간직하지 못합니다.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 가정도 오래 간직하지 못합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집니다. 이 3가지가 변하는 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화무쌍한 세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안'입니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불안해 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심리학이 발달된다고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은 변한다는 것이고 변하는 세상 속에 있는 사람은 불안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교회의 스타일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변하는 세계 속의 교회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변하는 동안 세계 속에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도 변했고, 변하고 있고, 변해 갈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교회도 변했고, 교회에 대한 자기 이해도 변했습니다. 교회는 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기 때문에 같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 속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교회와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 밖의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는 교회 안에 있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생기를 잃고 경직화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한가운데서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그들의 변화를 어떻게 지켜볼 것인가? 그 속에서 어떻게 그들의 변화에 대응해 나갈 것인가? 그들을 변화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우리의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세 가지 특징, 즉 다양성, 신속성, 그리고 변화무쌍함 등이 마음 한구석에는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도 불안의 씨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교회는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겠습니까?

변화인가 변질인가

교회는 이 세상 한가운데 서 있는 관계로 교회는 변할 수밖에 없고 또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변한다고 할 때는 택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변질'인가, 혹은 '변화'인가의 문제입니다. 변화라 함은 그 내용은 변치 않고 모양만 바뀌는 것을 말하며, 변질이라 함은 그 내용 자체가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스타일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변할 수 없습니다. 본질이 변한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를 말할 때는 항상 본질은 항상 고수하되 그 모양이 변화되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교회가 변하는 것은 좋으나 변해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변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질과 형태와의 관계입니다. 형태는 변하되 본질은 변할 수 없습니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다만 가변적인 것들, 일시적인 것들, 현상적인 것들은 변해야 합니다. 자기 이해적인 것들도 변해야 합니다.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리는 변화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자신에 충실하려면 단순히 과거만 고수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성을 지닌 교회로서 항상 변하는 세계, 항상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사는 세계 속에서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 적용하여야 합니다.

변해야 할 것

(1) 권위주의
홀로 대제사장인 것처럼 행하는 것은 교회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만인제사장직을 무시하는 행위도 사라져야 합니다. 직분을 통한 권위 의식도 사라져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2) 전통주의 및 형식주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전통을 주장하는 것 때문에 개혁이 일어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는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들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바리새인적 전통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그들의 결례 의식, 이혼, 기도 습관, 십일조 등 모든 것이 전통에 사로잡힌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형식이 우선이 되었으며 회칠한 무덤과 같았습니다. 의와 인과 신이 없는 형식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이제 형식적인 것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3) 인습주의
사람의 행위를 따르는 것이나 혈통 중심으로 운영하는 모든 제도는 이제 교회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교회는 김일성 부자 체제도 아니며 이조 시대의 세습 체제도 아닙니다.

   
 
  ▲ 모이는 교회는 반드시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 침투하는 교회가 바로 성숙되어지는 교회입니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선교지에서 문화를 접촉하는 데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배척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받아들이자니 바른 신앙을 형성할 수 없고, 배척하자니 복음을 전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탈피하기 위한 것이 토착화라고 하는 미묘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더디 전해지더라도 교회는 양보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교회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의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되어야 하지만 교회의 근원이 되는 진리의 문제만큼은 절대로 변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라는 원초적 증언, 원초적 메시지는 변할 수 없습니다. 이미 결정된 근본적 본질은 변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

보수는 변화되는 세계 속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을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혁주의의 추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겠습니까?

1) 진리는 불변하는 교회
성령의 사역과 이해, 교회의 본질인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교회, 하나님의 나라가 올바로 실현되는 과정에 있는 교회, 현실을 무시하는 초월적인 신앙을 주장하는 이원론적 사상을 버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 스타일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회
새로운 것, 현실 감각에 맞는 것을 찾아가는 교회, 현대인의 생활에 맞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는 교회
교회의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삶과 신앙의 일치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하고 배우고 아는 일에 힘쓰는 교회, 바른 세계관과 교회관을 가지고 말보다는 실천하는 삶을 사는 교회,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기독교 문화를 산출하는 교회, 시야를 넓혀 협조, 단합, 연결을 이루는 교회, 근시안적 사고를 버리고 넉넉함을 가지고 서로 이해하는 교회로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성숙되어 가는 교회
이제는 성숙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숙한 교회는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교회입니다. 구제와 선교는 환원 중의 으뜸입니다. 자기 부흥만 꾀하면 부작용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모이는 교회는 반드시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 침투하는 교회가 바로 성숙되어지는 교회입니다.

5) 그밖에
교인 수를 늘리기에 전전긍긍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받아 구원을 이루므로 기쁨을 누리게 하는 교회, 기복적 설교를 지양하고 사도적 선포가 계속되며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이 선포되는 교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양성하는 교회, 목사의 특권층화가 해소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두 겸손히 서는 교회,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는 교회,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교회, 평신도가 살아서 움직이는 교회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중요한 건 부동성이 아닌 적응성

역사 속의 교회는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변화에 급한 나머지 유해무익하며 본질을 왜곡시키는 선택 속에 변화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개혁주의의 원리가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부동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응성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항상 새로이 새로운 날에 참예하여야 하고 항상 새로이 역사의 변화와 인간 생활의 변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런 각오와 결심으로 대망의 2010년도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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