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역할 분담 놀이'로 전락한 주일예배
'가상 역할 분담 놀이'로 전락한 주일예배
  • 김성한
  • 승인 2010.04.12 02: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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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하나님나라 ③ 주일예배와 나머지 6일의 상관관계

온라인 게임에 빠져서 백일도 안 된 아픈 딸을 굶겨죽였다는 부부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참 어렵게 했다. 짐작하건대 이 부부에게 육아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RPG(Role Playing Game: 역할 분담 놀이)의 캐릭터를 열심히 돌보는 것으로 고단한 현실을 도피했다. 모두 아는 것처럼 때론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은 이렇게 무겁고, 대책 없이 무섭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의 예배는 가상현실은 아닐까. 고단한 세상살이에 지쳐서 거대한 RPG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우리의 일상과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부터 해보아야 할 것 같다.

   
 
  ▲ '주일은 거룩한 날이고 나머지 6일은 속된 날이라는 이원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직 예배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주일예배와 나머지 6일, 어떻게 보내나

30대 부부들의 모임에 초대받아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서 각자의 교회 생활과 예배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나누는 자리였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들이 내놓은 대답들은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제와 관련해서 흥미롭다.

모임에 참석한 8명 중 5명이 주저함 없이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목회자의 설교라고 대답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따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2명은 예배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회복을 이야기 했으며 유일하게 1명이 일주일 동안의 삶이라고 대답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일주일 동안의 삶이 주일예배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더라는 것이다. 잘 준비한 질문도 아니고 충분한 표본을 가진 설문도 아니었으며 권위 있는 기관을 통해 조사한 것도 아니니 오차확률은 아마 ±50%가 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8명의 대답의 분포는 지금 예배가 6일간의 일상과 분리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한 작은 증거라고 하면 억지스러운 주장일까.

기독교 세계관 강의에서 이원론을 극복하자는 이야기를 할 때면 단골로 자주 등장하는 예문이 있었다. ‘주일은 거룩한 날이고 나머지 6일은 속된 날이라는 이원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 머리로는 동의하면서도 아직 예배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내 경우를 생각해 봐도 교회 참 오래 다녔지만 예배에서 ‘나머지 6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를 별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지난 6일 동안 죄악된 세상에서 죄와 뒹굴며 지내다가 거룩한 성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드리러 모였습니다’와 같은 이야기뿐이다. 그나마 조금 부드럽거나 중립적인 것을 고르자면 ‘…말씀을 통해 한 주간 살아갈 영의 양식을 주십시오’ 정도라고 할까. 분명한 것은 거룩한 주일과 ‘나머지 6일’을 분리하거나, 고단한 세상살이에서 빠져 나와서 단지 치유와 회복의 경험을 기대하는 예배의 패러다임을 가지고는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6일의 삶에 대해 그리 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일예배와 나머지 6일의 삶은 어떤 관계일까.
 
예배와 삶은 하나다

예배는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로 모일 때 우리는 빈손으로 만나지 않는다. 예배로 모일 때 우리는 ‘삶의 전선(frontline)으로부터의 보고’를 가지고 모인다. 그 보고들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겪고 있는 치열한 영적 분투의 이야기들, ‘나머지 6일’ 동안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모든 희로애락의 이야기들, 일상생활이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 차 있음에 대한 경이로움의 이야기들이다. 주일 아침 예배당에 들어설 때 발판에 신발 털면서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들도 털어 버리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보냄 받은 자리에서 일어난 아픔과 은혜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예배에서 물이 바다를 덮는 것과 같은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기도 하고, 내 이름을 아시는 주님과 친밀하게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경험이든지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예배 가운데 체험하는 것이 예배의 마지막 결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예배는 거름종이의 역할을 하며 잊힌 기억들을 새롭게 한다. 예배는 예배하는 이들의 비전을 깨끗하게 하며 새 힘을 준다. 여기저기 분산되었던 관심을 다시 집중시키고 이런저런 상처들로 작아졌던 마음을 커지도록 돕는다.

시내산에 오른 모세는 금송아지 잔치가 벌어진 산 밑으로 급히 내려와야 했으며 황홀경에 빠져 초막 셋을 짓자던 제자들도 십자가가 기다리는 산 밑으로 주님과 함께 하산해야 했다. 그렇다. 예배는 예배자들을 선교적인 삶을 살도록 준비시킨다.

하나님과의 대면은 우리의 비전을 새롭게 한다. 그것은 부활의 소망을 다시 새롭게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범해 보이고 무력해 보이는 고단한 일상을 새롭게 마주할 용기가 생기며 다시 세상 속으로 소망과 비전과 영적 에너지로 구비된 채 돌아갈 수 있다. 주일예배와 ‘나머지 6일’의 삶은 단절되어 있지 않다. 예배는 영적 도피처가 아니다. 막막한 현실을 용감하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영적 실재(spiritual reality)인 하나님나라를 기억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예배를 기대하자.

내가 아는 한 교회의 주일예배 순서에는 예배에 참여한 사람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 교회에서는 이 시간을 ‘지난 한 주간 동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드린 예배를 나누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어떤 주일에는 이 시간이 길지 않은 침묵과 함께 바로 다음 순서로 이어진다. 하지만 또 어떤 주일에는 여러 사람들의 풍성한 나눔으로 채워진다. 작은 시도지만 주일예배를 성도들의 삶의 예배와 구체적으로 연결 지으려는 구체적인 예가 될 것이다.

김성한 / 한국 IVF MEDIA 총무, 서울장신대 예배찬양사역대학원 강사

* <복음과상황>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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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지오 2010-04-16 23:55:02
예배의 중심은 설교입니다. 그런데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선포되지 않으면.. 영적싸움 할 수 있습니까?

김철수 2010-04-15 02:34:54
참 좋은글이다. 나는 미국에 오래 살면서 한인 이민 교회도 오래 다녔고 미국교회도 다녀봤는데 여러가지 차이점을 느끼지만 그중에 하나는...한인교회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교회안에서하고 미국교인들은 예배를 교회에서 같이 드리지만 신앙생활은 세상에서 하는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