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홍 씨가 기억하는 17년 전 '4월 29일'
마이클 홍 씨가 기억하는 17년 전 '4월 29일'
  • 박지호
  • 승인 2009.05.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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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한인·흑인·라티노 교회, LA 폭동의 상처를 하나 됨의 기회로

▲ LA 폭동 첫날, 코리아타운에 있는 몇몇 대형 마트가 불에 타고 있는 모습. (출처 : 유투브 화면 캡쳐)
17년 전 4월 29일. 당시 12학년이던 마이클 홍 씨(싸우스베이장로교회)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로드니킹 사건에 잔뜩 흥분한 흑인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차를 부수며 난동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이 LA 폭동의 시작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TV를 틀자 흑인들이 코리아타운에 있는 상점을 부수고 물건을 훔쳐가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코리아타운에 있는 몇몇 건물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어, 우리 가게 건물인데…." 뉴스를 보던 홍 씨의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한국을 떠나면서 가져온 전 재산이 불에 사그라지는 순간을 TV로 지켜봐야 했다.

다음날 가게를 찾았지만, 물건은 다 없어졌고, 남은 것마저 불에 타 사라졌다. 그나마 잿더미에 깔려 있던 동전들을 건진 게 전부다. 이후 홍 씨 가족은 몇 달 간을 여기저기서 주는 구호품과 급식으로 끼니를 때웠고, 한국에서 친지와 친구들이 보내준 후원금으로 얼마간 버틸 수 있었다. 홍 씨의 아버지는 LA 폭동 이후 암으로 고생하다. 2000년에 세상을 떠났다.

▲ 마이클 홍 씨는 교인들 앞에서 17년 전 아픔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4월 29일 'LA 폭동' 17주년을 맞아 싸우스베이장로교회(하워드 김 목사)에서 열린 '다인종 간 열린 대화'의 자리에서 마이클 홍 씨는 17년 전의 아픔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이 자리에는 가디나 시에 있는 흑인 교회(Crusader Temple, COGIC), 라티노 교회(Bethesda Presbyterian Church, Iglesia Bautista La Esperanza), 한인 교회(싸우스베이장로교회, 새창조교회) 교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17년 전 아픔을 회상하며 함께 예배를 드렸고, 인종을 초월해 하나 될 것을 다짐했다. "주 예수 안에 동서나 남북이 있으랴, 온 세계 모든 민족이 다 형제 아닌가. 다 같이 손을 잡고 한 아버지 밑에, 겉모양 인종은 다르나 한 자녀 되도다." 찬송가 <주 예수 안에 동서나>를 각자의 언어로 함께 불렀다. 이날 행사의 모든 순서는 영어와 스페인어와 한국어로 진행됐다.

설교를 맡은 로버트 콜 목사(Crusader Temple, COGIC)는 "우리 모두 한 피로 연합되어 있다. 피부색, 외모, 문화로 구별되지 않는다. 당신의 성공은 우리의 성공이고, 당신의 상처는 우리의 상처고, 당신의 아픔이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라며 인종 간 화해와 연합을 강조했다.

▲ 왼쪽부터 로버트 콜 목사, 루이스 콜 씨, 필립스 마르티네즈 목사.
예배 뒤에는 영상물을 시청하며 LA 폭동의 참혹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각 교회 교인들 중 한 명씩 나와 자신이 기억하는 LA 폭동에 대한 기억을 나눴다. 그 첫 번째 순서를 마이클 홍 씨가 맡았다.

미주 한인 사회와 마이클 홍 씨 가정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는 그렇게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홍 씨는 LA 폭동을 통해 다민족 사회의 일원임을 자각할 수 있었고, 타인종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공인회계사(CPA)가 된 홍 씨는 흑인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유난히 흑인 고객들로부터 인기가 좋은 것도 LA 폭동이 가져다준 개인적인 작은 변화라고 말했다.

루이스 콜(Crusader Temple, COGIC) 씨는 "이 시대 가장 무서운 질병은 인플루엔자 A형(돼지독감)이 아니라, 서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라며, "사랑과 평화는 협박이나 무력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공동체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미소 짓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고 말했다.

필립스 마르티네즈 목사(Bethesda Presbyterian Church)는 문화적 경계를 허물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로 들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자고 말했다. 시대의 금기를 깨뜨리고 부정한 여인에게 다가가 관용의 태도를 몸소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자며,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관용할 때 진정 변화될 수 있고, 하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날 참석한 교인들은 서로 인사하며, 4.29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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