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많은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의 가장 탁월한 교재로 사랑 받고 있는 <성경 해석학 총론>(Introduct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W. Klein, C. Blomberg, R. Hubbard) 앞부분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 교수가 성경 해석의 원리들에 관한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는데 한 학생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는 당황해서 강의를 중단하고 그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흐느끼면서 "제가 우는 이유는 교수님이 너무 안쓰러워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교수가 "왜 내가 안쓰러워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대답하기를 "왜냐하면 교수님께는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냥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그 뜻을 보여주시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 해석학 총론> 저자들은 단호하게 이 학생이 보여주는 성경 해석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기 때문에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은 성령의 조명과 성경의 자명성에 대한 단순화된, 그리고 위험천만한 태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이해하는데 성령의 역할은 필수적이지만 "성령의 도우심이 언어 소통의 원리에 따라 성경 본문을 해석해야 할 필요를 대치하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합니다.
비슷한 얘기를 지구나 우주의 창조연대 논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근래 미국 복음주의 과학자 단체인 <미국과학자협회>(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에서 출간하는 계간 학술지 <PSCF>(p.35, March 2008)에는 미국 창조과학연구소(ICR)에서 진행하는 RATE(Radioisotopes and the Age of the Earth) 프로젝트의 대표인 바디만(Larry Vardiman)의 글이 실렸습니다.
6천년/대홍수론자들로 이루어진 RATE 팀은 우주나 지구의 오랜 연대를 보여주는 방사능 연대측정법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6천년 우주 역사를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구팀입니다. 바디만은 글에서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 "기존의 과학과 성경이 선언하는(declare) 6천년 연대 사이의 충돌이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 RATE 팀은 우주나 지구의 오랜 연대를 보여주는 방사능 연대측정법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6천년 우주 역사를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구팀입니다. 바디만은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 "기존의 과학과 성경이 선언하는(declare) 6천년 연대 사이의 충돌이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 블로그 갈무리) | ||
과연 성경은 우주와 지구가 6천년 되었다고 '선언'할까요? 바디만이나 RATE 팀이 어떤 번역의 성경을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한 성경은 어디에서도 우주와 지구가 6천년 되었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주가 137억년, 지구가 46억년이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성경은 어디에서도 우주와 지구의 연대를 6천년이라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그렇게 선언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는 것이 성경의 모든 구절을 문자적으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는 극단적인 성경해석의 하나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닌, 과학적, 역사적 연구가 필요한 것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고전적인 예는 1633년에 일어난 갈릴레오 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정치적, 사회적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갈릴레오의 지동설 재판은 적어도 겉으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사건입니다.
당시 천동설을 지지한 사람들은 성경 어디에도 지구가 움직인다는 말이 없는데 어떻게 지동설을 주장하느냐며 갈릴레오를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성경 곳곳에 '해가 뜬다', 혹은 '해가 진다'는 표현이 있는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천동설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또한 천동설을 지지하는 가장 유명한 성경구절로 이스라엘 민족이 아모리 족속과 전쟁할 때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수 10:12).”라고 한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성경이 이렇게 분명하게, 그리고 여러 차례 해가 움직인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는가?'라는 말을 들으면 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성경이 이렇게 분명하게, 그리고 여러 차례 엿새 만에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우주의 연대를 6천년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겸손과 절제는 사라지고 과도한 확신만이 남게 되면 지금도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천동설을 신봉하면서 책도 출간하고,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대뽀'를 담대함으로, 무식을 순수로, 무례를 용기로 착각하게 되면 재난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난 수많은 폭력들이 바로 이런 착각으로 인해 일어났음을 보았습니다. 근래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번역, 출간한 <성경과 폭력>(The Sins of Scripture)(2007)은 바로 기독교의 독선과 폭력성의 중요 원천인 성경 문자주의와 우상화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자신의 해석에 대한 반성의 여지가 사라지고 오로지 종교적 확신만으로 충만한 곳에는 곧 폭력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은 성경의 '선언'이기 때문에 그것과 맞지 않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나아가 이 땅 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성 억압과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학살, 십자군 전쟁과 마녀 사냥, 수많은 종교 전쟁과 흑인 노예제도, 유색인종에 대한 정복과 착취는 모두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적 폭력이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며, 21세기 개명천지(開明天地)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와 그의 전쟁 정책을 지지했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 역시 비슷한 오류를 범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폭력과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명분들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그래도 그들은 지금까지 종교적 확신을 꺾지 않습니다. 그래도 전도의 문은 열렸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읽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약 좋다고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는 제약회사 표어처럼 "성경 좋다고 남용 말고, 성경 모르고 오용말자"는 캠페인이라도 벌려야 할 판입니다.
양승훈 /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도 그리고 출애굽 이야기도 또 노아의 홍수나 예수의 기적 이야기도 모두 어떻게 읽어야 하지요? 문자적이 아니라면 어떤 기준을 제시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