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작은 목회라도 소중하다'
'아무리 작은 목회라도 소중하다'
  • 박지호
  • 승인 2009.05.28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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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은퇴 뒤 작은 시골 교회서 여생 보내는 서정일 목사

은퇴 뒤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 제2의 목회를 시작한 서정일 목사(72, 프레스캇한인교회). 개척 2년 만에 교인 수는 4배로 늘었고, 지역 한인의 절반 이상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 소위 지역 복음화율이 50%를 웃도는 셈이다.

비결이 뭘까. 아무개 교회 성장 시스템을 도입했나, 교인들에게 전도폭발훈련을 시켰나. 서 목사를 교회 성장의 숨은 대가쯤으로 여겼다면, 쫑긋 세운 귀부터 접어야 한다. 서 목사가 사역하는 애리조나 주 프레스캇 지역은 한인을 모두 합쳐야 고작 30여 명이다. 역산을 하면 교인 숫자가 대충 나온다. 프레스캇한인교회의 고정 출석 인원은 15명 안팎이다.

▲ 애리조나 주 프레스캇 지역에서 제2의 목회 인생을 보내고 있는 서정일 목사(왼쪽)와 서영희 사모(오른쪽).
서정일 목사가 프레스캇으로 간 까닭?

서 목사는 2007년에 프레스캇한인교회를 개척해 사례비도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2년째 섬기고 있다. 많진 않지만 은퇴 후 받은 퇴직금으로 원로목사로 대접받으며 여생을 편하게 보내면 될 일인데, 왜 일흔이 넘은 나이에 연고도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아간 것일까.

서 목사는 은퇴를 앞두고 꾸준히 준비해온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은퇴를 4년 앞둔 2003년부터 은퇴 이후 사역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은퇴한 교회로부터 2~3시간 이상 떨어진 지역일 것, 한인이 살고 있지만 한인 교회가 없는 지역일 것, 교회가 필요하지만 자립할 수 없는 곳일 것, 사례비를 줄 수 없는 곳일 것 등이다.

서 목사는 틈만 나면 지도를 펴들고 마땅한 사역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던 목회자 한 명이 프레스캇 지역을 소개했다. 한인 평신도 네댓 명이 7년째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모임을 가져오고 있다고 했다. 서 목사는 은퇴 예배를 하고 일주일 뒤 프레스캇 지역으로 건너가 4명의 교인과 교회를 시작했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프레스캇에 정착한 김영인 집사는 "행복하다"고 표현했다. 한인 크리스천 몇몇과 공동체를 이뤘으니까 언젠가 목회자가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내심 있었지만, 차마 사역자를 청빙할 여건은 안 되니 속으로만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기도 응답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박선옥 집사는 한국말로 말씀을 듣고 한국말로 찬양을 드리는 것도 기쁨이라고 했다. 28년 전 미국인 남편을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됐다는 박 집사는 줄곧 미국 교회에 다녔지만, 영어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게 쉽진 않았다고 했다. "서 목사님이 오셔서 한국말로 설교해주시고, 말씀도 가르쳐주시니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프레스캇 지역에서의 제2의 목회가 즐겁긴 서 목사도 마찬가지다. 교회 성장이나, 주변 교회를 의식해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아도 되고, 몇 안 되는 교인들이지만 함께 가족처럼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과 함께 집으로 몰려가 식사하고,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즐거운 일상이라고 전했다.

▲ 서정일 목사 부부와 프레스캇한인교회 교인들. (사진 제공 : 프레스캇한인교회)
그저 시원찮은 늦깎이 목사일 뿐 …

서 목사는 한국에서 약사를 하다 미국으로 건너와, 건축회사에서 일했다. 목회에 대한 관심보다는 독학으로 채우기 어려웠던 배움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쉰이 넘은 나이에 신학교 문을 두드렸다. 신학교 졸업 이후 은퇴하기까지 17년 동안 목회했다.

서 목사는 그저 시원찮은 늦깎이 목사가 사역 기간을 좀더 연장한 것일 뿐 대단할 것도, 훌륭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그 흔한 분쟁 한 번 겪지 않고 목회를 마무리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냐고 칭찬을 하지만, 서 목사는 "별 볼일 없이 목회했기에 은퇴 이후에도 섬기는 것"이라며 거듭 자신을 낮췄다.

서 목사가 개척한 LA 호산나교회 후임으로 부임한 라세염 목사는 서 목사를 "부드럽고 조용하게 목회하면서 교인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챙기는 분이었지만, 은퇴 이후에는 원로목사로 있으면서도 교회 일에 일체 관여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 목사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온 한 목회자는 "목회자 과잉 공급 시대라고 하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는 마땅한 목회자를 찾기 힘든 현실 속에서 ‘아무리 작은 목회라도 소중하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목회자"라고 서 목사를 평가했다.

프레스캇한인교회 (928-499-9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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