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조건 없는 사랑
용서, 조건 없는 사랑
  • 이승규
  • 승인 2009.06.09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용서의 최고봉 보여준 [아미시 그레이스]

▲ <아미시 그레이스>는 분노와 복수가 만연한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2006년 10월 2일 당시 32살이던 찰스 로버츠는 9밀리 권총 한 정과 12게이지 엽총 한 정, 30-06 라이플 총, 탄약 600발을 들고 필라델피아 니켈 마인스 지역에 있는 아미시 학교로 들어갔다. 로버츠는 이 마을에 살면서 우유를 수거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낯선 이가 아니었다. 사고가 난 당일도 로버츠는 20만 캘런의 우유를 수거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가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는 한 교실로 들어갔고, 그의 얼굴을 아는 몇몇 학생들은 그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아미시 마을 사상 최악의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 5명의 여학생이 죽고, 5명의 여학생이 중상을 입었다. 로버트가 들어간 교실에는 임신 8개월째인 여자 교사도 있었고, 남학생도 있었지만 찰스는 이들 모두를 내보내고 여학생들만 교실에 남겼다. 그리고 마치 사형을 집행하듯 로버츠는 여자 아이들을 마룻바닥에 일렬로 누인 채 총을 쐈다. 이들을 죽인 로버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로버츠가 여학생들만 골라 죽인 이유는 그의 딸이 태어난 지 20여 분 만에 죽는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모든 게 신의 장난이라 생각했다. 여학생들을 죽이는 것이 신에게 복수를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합법적으로 총을 가질 수 있는 미국에서 총기 사고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난다. 1년에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총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고 있다. 원한 때문에 죽는 사람도 있지만, 자살 또는 실수로 죽는 경우도 많다. 매일 보는 총기 사고 소식이기 때문에 그럴까. 사람들은 총으로 인해 한두 명이 죽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잠깐 소개할 뿐이다. 10명 정도 죽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정도다.

아미시 마을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가 미국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던 이유는 그들의 삶 때문이었다. 아미시는 알려져 있다시피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공동체 생활을 한다. 남에게 원한을 만들 일도 없고, 더군다나 총 같은 것은 없다. 세상에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아미시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밤에 희생자 부모들이 로버츠의 가족을 찾아가 로버츠를 용서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아미시들은 로버츠의 가족도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가족이 해코지를 당하면 어떡하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로버츠의 가족 역시 이들의 용서를 받아 들였다. 사고가 난 뒤 그의 가족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지만, 친척들은 여전히 니켈 마인스 지역에 남아 아미시들과 이웃으로 살고 있다.

▲ 아미시들은 사진을 찍기 위한 자세를 잡지 않는다. 아미시 전통 복장을 한 엄마와 아이들.
당연히 마을에는 분노가 넘쳤어야 했다. 아미시들이 로버츠 가족에게 복수를 해도 그들의 행동을 탓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아미시들은 분노를 용서로 승화했다. 복수와 분노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이 사고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두 명을 잃은 할아버지는 분노가 치솟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하나님의 도움으로 로버츠를 용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의 용서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로버츠의 총에 죽음을 당한 몇몇 소녀의 부모들은 장례식 때 로버츠의 가족을 초대했다. 장례가 끝난 뒤 수주 후에도 피해자 가족과 로버츠의 가족은 수시로 만나 서로의 슬픔을 감싸고, 아픔을 치유했다. 미국 전역, 해외 각지에서 수백 만 달러의 성금이 도착했는데, 이들 중 일부를 로버츠의 가족에게 전달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아미시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용서란 단어를 꺼낼 수 있을까. 하지만 정작 아미시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단지 평범한 크리스천이고, 예수의 용서를 생각한다면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미시 그레이스>(뉴스앤조이, 1만 원)는 이들의 용서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용서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다. 주기도문에 나와 있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라는 구절을 그대로 믿는 아미시들은 이 구절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이들을 용서의 대명사로 만든 셈이다.

아미시들은 특히 마태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용서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 매우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구절이 베드로와 예수의 대화다. 베드로는 예수에게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지으면 7번 정도 용서하면 괜찮지 않느냐고 묻는다. 예수의 답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다. 사실상 무한정으로 용서하란 말이나 똑같다. 누가 나에게 490번이나 잘못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돌로 맞으며 죽어가면서까지 저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했던 스데반의 순교도 용서를 말하는 좋은 구절이다.

▲ 아미시들은 지금도 빨래를 햇볕에 말린다. 건조기를 사용하면 빠른 시간 안에 쉽게 말릴 수 있음에도, 이들에게는 사치품일 뿐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극악무도한 살인마에게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그 사람을 찾아가 용서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미시 그레이스>는 용서는 공동체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철저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아미시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과정이다.

하지만 아미시의 용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용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줄 경우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아미시들 역시 총기 사고로 인해 몇 달 동안은 성난 감정을 간직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을 슬프게 한 건 소녀들을 죽인 로버츠가 아니라, 아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복수가 만연한 사회에서 이들이 보여준 용서는 신선한 울림을 던져 준다. 책을 쓴 이는 말한다. 9·11테러 당시 사회 분위기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복수하려는 쪽보다 그들을 용서하자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죄 없는 어린이가 폭탄에 죽어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걸 힘으로 제압하려 하고, 테러 이후 복수심에 불타 있는 미국 사람들에게 아미시의 행동은 삶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200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