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대원 ‘6수생’ 집착일까? 소명일까?
어느 신대원 ‘6수생’ 집착일까? 소명일까?
  • 이범진
  • 승인 2016.08.25 01:23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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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어떤 형은 순복음계열 신학대학원(신대원) 면접에서 떨어진 후, 흔들리는 눈동자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절망스럽다” 털어놓았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다른 신대원으로 가면 되잖아요?” 했더니 “순복음의 목사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 번 면접에서 떨어지면 다음에 응시해도 붙을 가능성이 없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왜 꼭 순복음의 목사가 되어야 했을까?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묻지 못했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그의 초점 잃은 눈빛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까칠해지는 그의 성격 탓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안타까웠다. 왜 굳이 순복음교회로 가지 않고 장로교회에 머물러 있을까. 역시 묻지 못했다. 집착이었지 싶다. 종종 ‘집착’은 ‘소명’ ‘애정’ 따위의 옷을 입고 교회를 배회하며 여린 영혼들을 탈탈 털어간다. 

‘6수생’ 권준광(33)씨. 신대원에 입학하기 위해 다섯 번 도전, 다섯 번 실패. 올해 여섯 번째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재수, 삼수는 들어봤어도 6수는 처음  본다. ‘소명’도 좋지만, 이쯤 되면 ‘집착’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으니까, ‘나름’ 이유가 있겠지 호기심을 품은 게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그 ‘나름’이 다른 이들도 설득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 형 생각도 나고.

어머니의 서원기도

“왜 6수까지 하면서 목사가 되려고 해요?”
“제가 태어나자마자 장 절제수술을 받았거든요. 어머니께서 그때 서원기도를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세뇌를 당한 거죠….”

느낌이 좋지 않다. 서원기도 레퍼토리.

“그래도 본인 의지가 반영된 거겠죠?”
“내가 왜 목사를 해야 하나 고민한 적은 별로 없어요. 나는 이런 목사가 되어야지, 꿈꾸며 산 것 같아요. 술 드시고 하수구에 빠진 아버지를 보면서 ‘술 먹고 나자빠지는 목사는 되지 말아야지’ 했고, 가족들에게 구박당하는 아버지를 보며 ‘그래도 아빠 같은 사람 편드는 목사가 되어야지’ 했어요. 집이 싫어 가출한 누나를 보면서는, 방황하는 청소년을 케어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 다짐하고, 뭐 이런 식의 결심을 하며 산 것 같아요.”
“아버지가 술을 참 좋아하셨나 봐요. 하수구에 빠질 정도면….”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기 전 밖에서 꼭 가래침을 뱉으셨는데, 새벽에 자다가도 그 소리만 들으면 벌떡 깼어요. 술 드시고 오시면 자주 때리셨거든요.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기도 여러 번이었고, 그 집 4층에서 뛰어내릴까 여러 번 고민했어요.” 

인터뷰를 결심하고 나온 이의 이야기는 과감하다. 가끔 감당이 안 될 때도 있으나, 묻는 사람/대답하는 사람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은 소통에 있어 큰 장점이다.


“중3 때 집이 쫄딱 망하면서 가족들이 다 흩어져 살았어요. 저와 누나는 외할머니 댁으로 가고, 부모님은 이혼 절차를 밟으셨어요.” 

자칫 우울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었으나 준광 씨의 유쾌한 성격 덕에 바닥으로 가라앉지는 않는다.

“정말 그때부터는 거지처럼 살았어요. 아, 거지‘처럼’이 아니라 그냥 거지였어요. 교회 동생은 제가 늘 같은 바지만 입고 다니는 게 안타까워, 몰래 바지를 줄 정도였어요. 누군가 입던 바지였는데도, 그때는 자존심 같은 것도 생각 안 했고 그저 고마웠죠.”

그 시절을 버텨내는 데는 교회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주일학교 선생님, 목사님이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다. 그는 늘 ‘신세를 갚아야 한다’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자신이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이 ‘보답을 바라고 호의를 베푼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 덕에 내가 이만큼 자랐어요. 그런 교회를 꿈꾸고 있어요.”    

전도사 어머니와 술꾼 아버지

준광 씨의 ‘거지생활’이 끝나게 된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군 복무를 산업체에서 하게 된 것. 월급 90만 원을 받으며 일했다. 거금이었다(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상을 벌어 본 적 없다). 생활이 좀 피나 했는데, 신학을 공부하던 어머니께서 교회를 개척하겠다며 “헌금하라” 하셨다.

“이렇게 가난한 처지에 교회 한다고 돈을 달라고 하니 좀 그랬죠. 그래도 어떡해요. 어머니이기 때문에 ‘알겠습니다’ 했죠.”

그때 이후로 12년째 ‘어머니 교회’는 이어지고 있다. 재래시장 내 수십 년 된 건물의 지하가 예배당이다. 1층은 생선집이다. 15평의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준광 씨가 예배를 드린다. 몇몇 오가는 분들이 있었으나, 정착한 사람은 없다. 몇 번 예배를 드리다가 동정심에서인지 미안함에서인지 십자가를 선물하고 떠난 이도 있다.

“처음엔 교회에 들어가는 돈만 생각했어요. 너무 아깝다! 그래도 내가 번 돈으로 교회가 돌아가니까 뿌듯했어요. 12년이 지난 지금은 또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가진 돈으로 교회가 돌아가는 게 아니구나. 내가 아니어도 하나님은 필요한 교회는 지키시는구나, 어머니 사역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준광 씨가 바라보는 어머니의 사역은 단순하다. 매일 새벽기도-점심-말씀공부-저녁-기도 패턴이 반복된다. 무한 반복되는 노래처럼, 늘 똑같다. 설교를 유창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폐휴지 줍는 할머니들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분이다.

“꼭 엄마가 아니었더라도, 이 교회에 계속 다닐 것 같아요. 아들로서가 아니라 동역자로서 어머니의 목회를 존중해요. 본받고 싶고요. 다만,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가지 않고 영적으로 약해져서 그런 거라고 해석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는 분들과 김장하던 날 (사진: 권준광 제공)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버지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아버지요? 그저께도 술 엄청 드시고 오셨어요. 1시 50분 병원 예약시간인데, 1시 30분에 일어나셔서는 병원 가야 하는데 돈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버스 운전을 하셔서 평소에는 마시지 못하니까 휴일에 몰아서 마시더라고요. 월급을 다 어디에 쓰시는지 모르겠어요. 딴 살림 있으신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하하하.”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어 그저 따라 웃었다.

준광 씨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교회를 개척한 것에 대해 불만이 컸다. 돈을 벌어와야지 뭐하는 짓이냐며 성경책을 갈기갈기 찢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준광 씨가 목사가 되려는 것은 자랑스러워했다. 얼마 전 아버지는 뇌졸중 증세가 있어 수술을 했다. 신대원에 가려고 모아두었던 돈을 고스란히 수술비로 썼다. 월 50만 원 정도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그가, 어렵게 모은 돈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신대원은 떨어졌으니까요, 뭐….”   
 

주류에 편승하고픈 마음?

현재 준광 씨의 꿈은 선교사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목사가 꼭 되고 싶다. 신학교(학부) 시절 외국으로 1년 정도 선교사 생활을 했던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집안일 신경 쓰기 피곤해, 사역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케냐에 있는 한인교회였다. 선배 선교사들로부터 배운 것을 몸소 실천하고자 애썼다. 대중교통을 타자. 선크림 바르지 말자. 현지 서민들이 가는 식당에 가자.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어요. 선교사님들 자녀들이 방치되는 현실도 보고, 그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돌봐줄 수 있었고요. 게스트하우스 관리하는 일도 했는데, 1년 정도 지내다가 쫓겨났어요.”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저는 교인들이 제 편들어준다고 생각했어요. 힘내라고, 다 알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하셨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를 생각할 게 아니라 ‘교회’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아쉽죠. 저의 미숙함과 교회 내부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요즘도 케냐 소식을 종종 들어요. 현지인들과 한인들이 크게 싸웠다고 하더라고요. 그 장면이 생생해서 가슴이 더 아파요. 현지인들과 한인들이 싸웠을까요? 아니요. 케냐 내 한인들은 현지 경비업체를 고용하고 있으니, ‘현지인’과 ‘고용업체 현지인’이 싸웠겠지요. 이런 현실에서 무엇이 진정한 선교일까요.”
 

문득, 이 사람은 지금 당장 선교사로 나서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의 질문을 조금 바꾸어 다시 해보았다.


“선교사를 하는 데 꼭 신대원에 갈 필요가 있나요? 6수까지 하면서….”
“안정적으로 선교가 하고 싶어요. 제가 실제로 겪기도 했고, 선교사로 파송된 선배들이 토로하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신대원에 가면 견습선교사제도가 있잖아요! 그게 참 매력적이던데….”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신대원을 나오지 않으면, 후원금 모금이나 현지 협조에 있어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다. 기초는 다져야, 뭐라도 시작할 수 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구태여 꺼내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면 주류에 편승하고픈 마음일지도 몰라요.”
 

이것을 타협이라고 해야 하나, 준비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하려는 선교의 정체다. 선교를 통해 그가 세우려는 교회의 모습이다.

“어디든 가고 싶어요. 급하게 뭘 할 수는 없을 거라고 봐요. 저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죠. 쉽지 않을 거예요. 현장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길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아요. 아픔을 아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구체적으로 뭘 묻지 못해요. 방향이 맞는다면 6수 이상 더 오래 걸리더라도 가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집착인가, 아니면 소명인가? 준광 씨 ‘나름’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소명 쪽으로 기운다. (물론 계속 신대원에 떨어진다면, ‘집착’ 쪽으로 기울어버리겠지만.) ‘나름’이라는 말은, 핑계의 시작이 되기도 하지만 추상화된 것들이 무시한 고유한 맥락을 찾는 데 매우 주효하다. 추상화(抽象化, abstraction)란 구체적인 여러 개체를 공통된 특성의 이름으로 집합(class)시켜 파악하는 행위다. 그동안 고유하고 복잡한 것들을 단선적으로 버무리다 놓친 이야기는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민중은 결코 개·돼지로 추상화되어선 안 된다. ‘교인’ ‘목사’ ‘선교사’도 마찬가지다. 버무려지면 안 된다. 우리 각각은 개별적이며 유일한 인생에 관해 끊임없이 말하며 추상화를 거부해야 한다. ‘교회’라는 단어는 어떤가. 나쁜 놈들로 인해 추상화되었으나, 고유한 사람들의 고유한 이야기가 적지 않다. 그러니 ‘그 교회’는 ‘나름’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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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오 2016-08-31 07:03:50
아래 영분별님은 전도나 나가서 교인 수나 늘려 보시죠.. 한 자리 교인 수를 째까 늘려 보도록 하세요. 헛소리 말고요. 순복음 신학 출신자 가운데는 훌류한 목사님도 많습니다. 뉴욕 순복음 출신 김남수 목사님을 본 받으세요. 교인수만 3000 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전도하면 남 주나요?? 전도로 교인수 늘리고 목사다운 목사가 되도록 하세요.

영분별 2016-08-30 23:40:08
순복음신앙에 대한 견해를 밝혔을 뿐인데
횡설수설하는 희한한 사람이 누군가요?

아니! "사람이 되라는 둥 별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사람은 대체 누구지?
내가 누군지 알고 지껄이는 것인지...
누구인지 확인도 안하고 저주를 해대는 사람은 대체 누구요?
이런 사람이 죽치고 있으니 ㅉㅉ
사람을 확인하려면 운영자에게 누군지 확인이라도 해보고 해야지
아무한테 사람이되라는 둥 엉뚱 쌩뚱맞은 소리를 하나?
사이코들이 따로 없네
사이코가 안될려면 ip를 확인해보고 사과하기바란다

어부 2016-08-29 11:17:07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주어졌으나 심판 때까지 유보되었다”는 김세윤 교수의 주장이 진리 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는 의미는 다른 말로 죄인은 죄인이로되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여전히 죄인이로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임시로 덧입히시고 마지막 심판 때까지 죄를 가리우시고 “깍꿍” 너는 깨끗하다. 하시는 것 입니다. 속은 여전이 더러운데 말 입니다.

완전한 구원은 마지막 심판에서 알곡과 가라지로 분류 될 때까지 유보되었음이 성경 전체의 사상 입니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머무르며 한번구원 영원구원을 주장하는 정이철류와 그 무리들에게는 감당하기에 벅찬 하나님의 말씀일 것입니다.
저들은 정해 진 제 길로 가겠지요?

지나가려다가 2016-08-28 07:07:51
목사다운 행실, 이웃과의 관계, 인격도 진리입니다.
요한복음에 주님은 나를 따르라 했기 때문이고, 십계명에도 이웃과의 관계. 이웃사랑 등을 강조했기에 진리이죠.
그래서 김세윤 교수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주어졌으나 심판때까지 유보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목사의 인격 행실도 중요합니다. 아래 영분별님 제대로 아시길....

영분별 2016-08-27 20:52:16
목사다운 인격과 행실과 행동이 진리입니까?
제가 순복음신앙이 인격과 행실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나요?
목사도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기에 인격을 가지고 판단하면 안됩니다.
목사도 인격이 안좋은 목사들도 많이 있을 것이지만
진리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순복음신앙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비판한 것입니다.
순복음이 큰목사 때문에 엄청나게 커졌지만 이제는 밝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순복음은 기복주의 무속적 신비주의 율법주의,인본주의가 망라된 이단입니다.
그래서 비판하는 것이지 인격을 나무라는 것은 아직도 초등학문에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사라면 본을 보이는 것이 옳겠지만 죄성이 있는 똑같은 죄인임을 간과하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