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천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의교회' 천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 신광은
  • 승인 2010.01.04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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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사랑의교회 건축 포럼 1] 메가처치 논박과 교회 건축

▲ 신광은 목사는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가 메가처치가 빚은 현상이고, 메가처치는 개교회주의가 빚은 산물이기에 대안은 한국교회 일치라고 했다. ⓒ 뉴스앤조이
한국 교회에서 상징성과 대표성이 있는 사랑의교회가 집을 짓는다. 왜일까? 공간이 부족해서다. 정말 건물이 필요해서 건축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울트라짱 메가처치

사랑의교회는 메가처치다. 메가처치의 특징은 성장의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무한히 성장하는 교회다. 많은 이가 이런 교회를 모범으로 여기고, 작은 교회도 메가처치 현상에 사로잡혀 있다. 현대 교회는 약 5% 내외의 메가처치와, 거의 95%에 달하는 잠재적 메가처치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메가처치를 만드는 게 세계 선교에 동참하는 일이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이라고 합리화한다. 잠재적 메가처치는 메가처치를 지향하고, 메가처치는 슈퍼 메가처치를 지향하고, 슈퍼 메가처치는 킹슈퍼 울트라짱 메가처치를 지향한다.

사랑의교회 측은 공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건축한다고 말한다. 메가처치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하는 말이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4만 5,000명이나 출석하는 슈퍼 메가처치가 되었다. 그런데 공간이 부족해서 더 성장할 수 없게 되니 2,100억짜리 교회당을 지어 걸림돌을 제거하고 킹슈퍼 울트라짱 메가처치가 되려고 한다.

제자 훈련 정신 변질했는가?

사랑의교회가 언제부터 메가처치 현상에 사로잡혔나? 몇몇 분들은 후임 목사님이 옥한흠 목사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최근 옥 목사의 애매모호한 행보 때문에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옥 목사 역시 메가처치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메가처치 현상을 간과했다. 사랑의교회가 메가처치 현상에 사로잡힌 이유다. 옥 목사는 맹목적 성장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분이다. 그러나 교회 성장 자체에 비판적이지 않았다. 개교회의 양적 성장을 긍정하고 수납했다. 게다가 제자 훈련을 개교회의 성장 전략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제자 훈련이 교회의 체질을 건강하게 바꾸면 교회가 자연적,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옥 목사의 교회 성장 전략이다.

옥 목사는 건강한 개교회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유포했다. '건강한 개교회 성장'은 바로 메가처치 현상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핵심 논리다.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개교회 성장이 문제지 건강한 개교회 성장은 문제될 것 없다고 말한다. 곧 건강하지 못한 메가처치가 문제지 건강한 메가처치는 본받아야 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 목사는 개교회의 성장이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까지 제공해준 것이다. 사랑의교회는 처음부터 메가처치 현상 속에서 자란 메가처치다. 지금 사랑의교회 모습은 과거에 배태되어 있었다.

교회의 크기는 교회의 본질에 영향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옥 목사는 메가처치 현상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오류를 저질렀다. 성장만 말하고 성장의 한계를 말하지 않았다. 교회의 크기를 교회 본질과 무관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의 크기는 본질과 무관하지 않다.

크기와 양이 영성을 가지고 있다. 옥 목사는 교회의 크기가 '깨어난 평신도'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메가처치는 군중을 이루는 평신도와 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이원화하고, 담임목사는 제왕의 자리로 추켜세우고야 만다. 메가처치 내에서 평신도 운동은 말뿐인 선전 구호로 전락하고 만다.

문제의 뿌리는 빈약한 교회론

개인주의를 넘어야 한다. 교회는 개인들이 모여서 개인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배경이 아니다. 교회는 개인보다 선행하는 하나의 실체로 기독교 신앙을 표현해야 한다.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온전히 표현하는 구조, 질서, 조직, 크기가 어떤 것인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성육신적 방법론을 창안해야 한다. 메가처치는 "선교와 구제에 특심이다. 메가처치는 작은 교회에 없는 큰 사명을 지닌다"고 한다. 가증한 자기 정당화다. 선교와 구제를 교회 활동 중 하나로 보는 것이다. 교회는 자체 구조와 질서를 통해 선교, 구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교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성장 경쟁에서 승리한 10% 메가처치가 무슨 수로 자기를 비운 그리스도를 찬미할 수 있겠는가? 거대한 부를 가진 메가처치는 무슨 수로 가난한 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겠는가? 막강한 권력의 메가처치는 무슨 수로 권력의 희생자로 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겠는가? 중소 교회를 먹고 성장한 메가처치는 무슨 수로 희생의 죽음을 나타내겠는가? 교회가 뿔뿔이 흩어져 성장을 위한 각개 전투를 벌이는데, 무슨 수로 메가처치는 만물을 하나로 통일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겠는가? 2,100억 원짜리 교회당이 있는 교회가 무슨 수로 머리 둘 곳조차 없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하겠는가? 소가 웃을 일이다.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를 남의 교회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개교회주의적 태도나, 한 가지 해법만 존재한다는 기술주의적 태도나, 일사천리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독단적 태도는 옳지 못하다. 사랑의교회 측은 건축 외에 대안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되고, 재고를 요청하는 측에서도 대안 제시 없이 무조건 건축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한국 교회 전체가 지혜를 모아 해결하면 어떤가. 이번 사건을 한국 교회의 근본 오류를 풀어내는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제3의 길, 교회 일치 선언을 제안하다

메가처치 현상은 개교회주의의 산물이다. 메가처치 현상의 뿌리는 교회 밖 사회적 요인과 교회 내 신학적 요인이다. 물론 신학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 메가처치 현상을 가능케 한 것은 결국 개교회주의다. 개교회주의에 함몰된 교회가 면역력을 잃어버린 채 세속의 조류에 휩쓸린 결과가 메가처치 현상이다. 메가처치 현상은 개교회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개교회주의는 우리와 선조들이 500년간 저지른 근본 오류, 교회 일치를 이루지 못한 것의 산물이다. 교회는 하나다. 교회 분열과 개교회주의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가 아니다.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다. 분열하는 교회는 참교회일 수 없으며 하나님나라 복음을 증언할 수 없다. 개교회주의로 갈라져 다투는 한국 교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의 근원은 메가처치 현상이요, 메가처치 현상의 근원은 개교회주의요, 개교회주의의 근원은 교회의 불일치다. 해법은 교회 일치뿐이다. 더 이상 교단 및 교회의 분리, 개교회주의, 메가처치 현상을 비판 없이 수납해서는 안 된다. 교회 일치를 선언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안하고 모색하자. 한국 교회에 필요한 교회 일치는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는 일치와 연합뿐이다.

신광은 / 열음터교회 목사·<메가처치 논박> 저자

- 이 글은 12월 22일에 열린 '사랑의교회 건축, 어떻게 볼 것인가?' 포럼 발제문을 요약한 것으로, 한국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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