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4.04.16 0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노숙자 선생님들이나 구걸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쓰면 그것을 잘난 척 하는 것으로 듣는다. 어떤 사람은 그까짓 노숙자에게 오만 원 준 것이 무슨 대수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내용들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글이란 다른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알리고 궁극적으로는 설득하는 것이다. 특히 내 일을 소재로 삼는 것은 내가 쓰는 글이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불행은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닌가.

나도 안다.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싫다. 또 어떤 사람들처럼 전문적으로 그런 일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려면 어쨌든 다른 이들의 주머니를 바라보아야 하고 그것을 털어야 한다.

내 이야기가 나를 변호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내 말을 자랑으로 들어도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 것이고, 그런 내용들을 글로 쓸 것이다. 주님은 내 중심을 보신다. 내가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요한 사도의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일 수도 있고 악마의 자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서도 악마의 자녀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요한 사도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는 의를 행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요한 사도의 이 기준이 정확하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두 말씀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고, 이 가르치심이야말로 예수의 제자들이 따라야 할 가장 중요한 것으로써 신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요한 사도는 그것을 정확하게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버전으로 자매와 형제들에게 다시 이야기한 것이다.

내가 노숙자 선생님들과 구걸하는 분들에 대한 내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요한 사도가 말하는 의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숙자 선생님들과 구걸하시는 분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몰락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누구도 노숙자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며 구걸을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분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진 분들이며, 그런 분들을 높이거나 그런 분들의 존엄을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요한 사도가 말하는 의를 행하는 것이다.

나는 요한 사도의 이 말을 정말 좋아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셨는데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그것을 행하라고 말한다. 물론 구하는 것은 행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구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을 분명하게 행하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요한 사도가 나는 고맙고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을 좋아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말씀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나는 어떤 사람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나에게 성서의 말씀을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서공부는 생각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우회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많이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 사람들을 머리만 커진 사람들이라고 하면서도 그런 지적을 하는 이들 역시 머리만 크기는 마찬가지인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내가 쓰는 글의 중심에는 늘 공동체가 있다. 하지만 공동체는 내가 목표로 하는 교회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보다 분명하게 ‘소유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로 강조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소유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요한 사도가 말하는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내가 ‘형제자매들로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라고 하지 않고, ‘소유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소유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시금석이기 때문이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반대는 악마나 사탄이 아니라 돈이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돈의 세상이 되었다.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돈은 단순히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세상을 나누고 가진 자가 높은 사람이 되고 가지지 못한 자가 낮은 사람이라는 계급을 정의와 질서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라는 것의 의미 역시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소유를 나눈다는 것은 이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는 초석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소유를 나누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말씀하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고 말할 수 없고, 요한 사도가 말하는 의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요한 사도는 분명하게 악마의 자녀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이제 그런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악마의 자녀인지를 요한 사도가 말한 두 가지 기준에 맞추어 솔직하게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다면 더 열심을 내고, 악마의 자녀라면 돌아서 하나님의 자녀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