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 …그 삶의 달라진 모습
늙은이 …그 삶의 달라진 모습
  • 김무영
  • 승인 2017.01.25 0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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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급행열차를 타고 빠르게 달리지만.....

'완만한 행동' 

걸음걸이가 예전 같지 않다.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디는 행보가 습관이 되어간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하지만 실수는 없는 편이다. 실수가 없으니 결과는 그리 늦은 것 같지 않아 좋다.

늙은이 운동 삼아 시작한 골프는 어느새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앞 뒤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열심히 걸으려고 노력하지만 여전이 걸음은 완만하다. 골프장을 걷다 보면 나처럼 걷는 늙은이를 쉽게 만난다. 일본계 미국인인 Tom은 93세이다. 작은 키의 Tom은 가방을 메고 18홀 코스를 걸으며 골프를 친다. 평지가 아닌 산정에 있는 골프장이라 언덕이 많은데 개의치 않고 걷는다. 그도 역시 걸음걸이가 빠르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주간에 3일 정도는 그렇게 걸으면서 운동을 한단다. 그래서인가? 그 나이에 무거운 골프백을 메고 걸어도 피곤한 기색이 없다.

집에서 유아원(Child Care Home)을 경영하는 관계로 하루 일과를 마치면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두고 간 장난감으로 집 안은 어수선하다. 방 안 가득히 널려 있는 장난감을 하나씩 천천히 치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던진 장난감인데 부서진 것이 여기 저기 보인다. 부서져 쓸 수 없는 것이나 모서리가 날카로워 위험한 것은 쓰레기 통에 버린다. 고칠만한 것은 고쳐본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힘 들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빠르지 않은 느린 행동으로 어지러진 방을 치우고 둘러 본다. 정돈된 방은 시원스럽고 아름답다. 빙그레 미소 지어본다.

'고착하는 버릇'

고속 도로(California에서는 Freeway라고 함)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레인 체인지(Lane Change)를 하려고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렸다. 옆 레인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쾅하고 부딛히는 소리에 앞을 보았다. 앞서 가던 차를 내차가 충돌했다. 옆 레인을 책크하느라 고개를 돌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나 보다. 빨리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면 충돌 사고를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살핀다고 시간을 끈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앞차 운전자도 그리고 나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경찰차가 오고 사고 조서가 작성 되었다. 보험회사에 연락했다. 집중하는 버릇이 순발력보다 좋지 않은 것인가?

나이가 들어 늙으니 한번 먹은 마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전화회사나 보험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해 줄테니 이번 기회에 자기네 회사로 바꾸어 보라고 종종 연락이 온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젊은이들이 보면 늙은이의 고집이라고 할지 모른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이 싫다. 한번 정한 것은 그대로 지키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단순해진 판단력'

금요일 저녁이면 오클랜드(Oakland, CA)에 있는 우리 집에 몇 사람이 모여 클라리넷 연습을 한다. 선생님은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온다. 버스와 전철(BART: Bay Area Rapid Transit)을 갈아 타면서 우리 집까지 오려면 적어도 40분은 걸리는 거리이다. 전화가 왔다. 전철을 타고 와서 내렸는데 픽업(Pick Up)하기로 한 분이 몸이 아파서 오늘은 못 온단다. 그래서 오늘은 연습을 쉬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단순히 OK라고 응답했다.

아내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 이 소식을 듣고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습은 못하더라도 와서 저녁 식사나 같이 하자고 …. 그런데 선생님은 그 동안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것을 알게 된 나는 미안했다. 내가 연락을 받았을 때 어째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말하지 못했던가? 단순한 반응(Simple reaction)의 생활태도가 어느새 버릇처럼 되어 버린 내가 아닌가 돌아 보게 된다.

'새롭게 만들어 가는 삶의 즐거움'

아침 식사는 직접 만들어 먹는다. 물에 넣어 끓인 오트밀(Oatmeal)에 시장에서 사온 단무지와 간장이 반찬으로 등장한다. 오트밀에 다른 것을 섞어서 끓이면 신선한 맛이 없어진다. 맑은 물에 끓인 오트밀과 간장과 단무지가 입 안에서 조합을 이루면 고소한 맛이 난다. 반찬이 간장 하나일 때는 힘들여 씹지 않아도 된다.

얼마 전부터 아침 반찬이 업그레이드(Upgrade) 되었다. 식초와 간장에 담아 숙성시킨 마늘, 마늘 장아찌, 단무지, 콘 비프(Corn Beef) 조각 데침, 복은 짜장에 찍어 먹는 양파, 반찬 가게에서 사온 취나물 …. 이것들 중에 두 세가지가 아침 식사 상 위에 오른다. 식사 후 그릇은 싱크대에 쌓아두지 않고 바로 씻어서 정돈한다. 새로워진 아침 식사의 영향인가? 아프던 무릎과 발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진대사도 원활하다.

집의 욕실 목욕타월이 20여개가 넘는다. 주말이면 한 주간 가족들이 사용한 타월을 모아서 아래층 세탁기로 가져 간다. 세탁하고 건조하는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군대생활에서 배운 관물정돈의 경험이 활용된다. 타월을 가즈런히 개어서 욕실에 비치한다. 깨끗하게 세탁된 목욕 수건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 좋을까?

목회생활에서 은퇴한 후 주일이면 베이스(Bass) 크라리넷을 들고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 교인 수가 적어 악기를 연주하여 소리를 보탠다. 종종 다른 이의 악기를 고쳐 주기도 한다. 악보를 Bb으로 이조(Transpose)해서 만든다. 클라리넷 팀을 위해 악보를 프린트하여 나누어 준다. 이 과정에서 찬송가 한곡 한곡이 정말 은혜스럽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경험한다. 감격해 한다.

나이는 급행열차를 타고 빠르게 달리지만 단순하고 조촐한 생각에 점령된 늙은이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다. 삶은 꽃내음을 맡으며 사는 것 같은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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