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회 쇠퇴'라고 소수민족 이민 교회까지?
'미국 교회 쇠퇴'라고 소수민족 이민 교회까지?
  • 박정주
  • 승인 2010.05.06 0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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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라승찬 교수의 [ The Next Evangelicalism ]로 본 미국 교회의 미래

얼마 전, 앤이 나에게 책을 한 권 보여주며 '정주, 이 책 알아? 저자가 한국인이라는데' 하며 <The Next Evangelicalism>이란 책을 건네주었다. (앤은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의 호스트다.) 라승찬? 들어보지 못한 이름인데. 대학교 때 신앙인의 삶을 시작하고도 교회 안에 머물러있는 편이 아니었던 내게, 유명한 사람인데 내가 모르는 이름일 수도 있단 생각을 하곤 책을 한 번 슬쩍 살펴보았다. 그런데 한 번 살펴보고 덮어 버리기엔 너무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당신이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백인 기독교인이라면, 그런데 당신에겐 백인이 아닌 스승을 가져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선교사가 되지 못할 것이다. 대신에 당신은 식민주의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소식을 세상으로 가져가는 대신에 미국화 된 복음을 가지고 갈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약자들이 사는 곳에 머물러 본 경험이 없다면, 그들의 삶에 백인 이외에 스승을 가져본 적이 없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예를 통해서라도, 그들은 고난의 신학을 경험하지 못한 채 축복의 신학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서구 문화, 백인 중심에 사로잡힌 교회 아래에서 불행한 반면, 그것은 다음 복음주의를 위해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다." (<The Next Evangelicalism> 중에서)

▲ 라승찬 교수는 < The Next Evangelicalism >의 "진정한 목적은 과거와 충돌하고 현재에 대한 걱정하며, 미래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미국 교회에 화해와 갱생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혼란에 빠진 미국 교회의 화해와 갱생을 위한

일상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생생한 이야기들이 현재의 역사라고 믿는 내게, 그것을 고찰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는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저자 라승찬 교수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와서 자신이 경험한 이민자 사회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 미국에서 살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펼쳐가는 이야기들을 좀 더 힘 있게 전해주고 있다.

사실 그가 다루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미국 사회를 잘 반영하고 또 미국 기독교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고 고작 8개월 살아본 내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래서 미국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앤에게 물어봤다. "앤, 이 책 어떻게 생각해?" 집에 놀러 온 앤의 친구와 나에게 앤이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저자가 하는 말이 거의 사실이야. 부끄럽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이야기이고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야기이지. 미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봤으면 좋겠어.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들도 많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정말 놀라워.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온 한국인이 이런 책을 썼다는 게."

인종주의, 미국 사회의 원죄

정말 앤의 말대로 이 책 곳곳에는 미국인, 그리고 미국 기독교인들이 성찰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미국에 잠시 거주하고 있는 나에게도 물론이거니와.

저자는 미국인들이 돌아봐야 하는 많은 영역 가운데 가장 깊이 뿌리 박혀있는 원죄(original sin)로 '인종주의'를 이야기한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부리기 위해 납치하다시피 데려온 흑인들, 그리고 선주민들(Native Americans)에 대한 학살까지 서슴지 않으며 빼앗은 땅. 이 핏빛 역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후에 건너온 아시아인들에게 서부 지역 개발을 위해 행한 노동착취. 슬프게도 미국의 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현재까지 계속 되고 있다. 중남미에서 온 이민자들과 전 세계에서 온 제3세계 가난한 노동자들에게까지 말이다.

그런데 저자가 이런 이야기를 아시아계 학생들이 있는 한 학교 강의에서 나누자 학생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나는 한 개인으로서 그런 죄를 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조상들은 그때 이 나라에 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왜 내가 그 죄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학생들의 반응에 이렇게 답한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서 누리고 있는 풍요와 온갖 혜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공짜로 얻은 땅, 그리고 자원을 얻기 위해 투입된 공짜 인력. 그렇게 쌓아온, 쌓여온 정의롭지 못한 순결하지 않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그 죄를 돌이키지 않고 계속 행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또 한 개인이 저지르지 않은 죄이지만 한 개인이 공동 행위의 결과로부터 누리는 이익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함께 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세계를, 현재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이 답변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백인 교회만 들여다보고 미국 교회를 논하지 말라

미국에서 백인이며 적당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일컬어 '주류'라고 한다고 할 때, 미국 주류에 속한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일종의 기독교 문화의 쇠퇴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고 한편으로 우려 아닌 우려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백인에 중산층에 속하는 이들만은 아니었다. 부모님 세대가 자메이카에서 건너와 지금 자메이카 교회를 다니는 내 친구 니키. 한 번은 니키의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간 적이 있다. 교회에 도착하기 전 니키는 내게 몇 번이나 강조를 한다. '정주, 예배가 정말 길고 또 사람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예배를 드릴거야. 그 모습에 놀라지 마.'

미국 흑인과 자메이칸은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 니키. 그래서 나는 나름 조금 이해는 갖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장장 4시간에 걸친 자메이칸 교회의 예배는 정말 적극적이고 굉장했다. 또 한 가지 내가 놀란 것은 400여 명이 넘는 교인들이 작은 예배당 안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에 반해 미국에 있는 화려한 외형을 한 교회 건물들은 텅텅 비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작은 옆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방문객들이 있을 때만 본당을 연다고 했다.

그런데 도심 끝자락에 있는 이민자들의 교회들은 부흥하고 또 열성적인 교인들로 인해 교회 공간이 모자랐다. 내 친구 니키 이외에도 다른 친구 아이티에서 온 페기도 아이티 교회를 다니는데 내가 경험한 한국 교회보다도 더 많은 교회 모임과 예배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에서는 이처럼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교회들이 많다.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이집트 교회까지.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이민자들 교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교회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많은 교회들이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백인 교회 이외의 교회들의 성장은 고려되지 않은 채 주류 사회의 기독교인들의 쇠락만을 사회 현상 분석에 반영한다는 것은 그 자료에 타당성을 떨어지게 하는 일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지역에만 머무르며, 더 넓은 범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또 그것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꺼려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금 미국 기독교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곳곳에서 부흥하고 있는 다민족 교회들

▲ 한인 2세인 라승찬 교수는 시카고 North Park Theological Seminary의 부교수로 있으면서 교회 성장학과 복음 전도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를 경험한 한국인들 그러니까 우리들은 그 뒤에 경험한 경제 개발 시대를 거쳐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음에도 '미제가 최고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만큼 미제가 질적으로 좋은 것일까 아님 미제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도 기득권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까?

미국에 와서 미국 교회 목회자나 사역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은 한국 교회의 눈 부시는 양적 성장의 비결을 궁금해 했었다. 그런데 그 현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미국의 대형 교회의 모습들을 닮아가려 애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교회 건물에서 예배, 홍보, 소모임까지 교회를 만들어 가는 방법에 관한 자원들을 미국 기독교 문화에서 배워 적용하려고 한다. 이 책에 언급된 사례 중 하나는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있는 신학 대학교에서 지금 미국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교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백인들을 비판할 때가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백인우월주의는 백인들이 역사를 통해 쌓아온 부끄러운 유산이지만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인들의 문화가 우리의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우리들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 이라 본다. 백인우월주의에 대해서 역사를 비난하고 역사 속에만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 가면 나를 계속해서 자극해 온 내 안의 목소리가 있었다.

'백인들의 문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제 3세계의 나라에서 자리 잡은 기독교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한국 전통을 반영한 한국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20년 뒤, 미국 교회의 모습?

3월에 워싱턴 D.C.에서 있었던 이민법 개혁을 위한 행진에 갔었다. 거리 곳곳 이민법 개혁을 소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배너와 피켓을 든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며 걸어갔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였다고 한다. 그것도 미국 전역에서. 나는 한국 이민자들의 무리에 속해 있었다. 고작 1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지만 장구와 꽹과리 그리고 징으로 어우러진 풍물패 놀이에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흥겨워했다.

그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이었다. 어디에서나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하지만 그곳에선 어떤 언어를 쓰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이민자들이란 공통의 분모를 가지고 마음을 함께 했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 Si, se puede일 듯)그것은 가능하다’란 문장을 계속 해서 외쳤다. 내 옆에 있던 70이 넘은 한국인 이민자 1세대이신 한 선생님도 작은 목소리로 따라 외쳤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은 미국을 더 이상 백인들의 나라로만 머물 수 없게 한다. 몇 년 후면 미국 인구의 25%가 히스패닉 인구로 채워진다고 한다. 게다가 문화적으로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많이 갖는 편이기 때문에 20년 뒤 미국 인구에서 인종적 비율이 어떻게 변할지 정말 모르는 일이다.

또 미국 대도시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낯선 땅으로 이주해 와서 마음을 비빌 곳은 교회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들은 기독교인이 된다. 전 세계에서 온 이민자들이 만들어가는 삶은 20년 뒤 미국의 모습에 어떤 변화를 줄까? 20년 뒤, 미국 기독교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박정주 / 한국아나벱티스트센터 인턴

박정주 씨는 한국아나벱티스트센터와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Mennonite Central Committee, MCC)가 주관하는 국제문화체험 및 섬김 프로그램 한국 참가자로 미국을 방문해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8개월째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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