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을 중단시킨 축구 선수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을 중단시킨 축구 선수
  • 이명구
  • 승인 2010.06.28 2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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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드로그바, "전쟁 멈춘 이순간이 가장 영광스런 트로피"

축구는 발로 공을 차서 상대편 골대 안에 집어넣는 스포츠다. 이 단순한 경기에는 놀라운 면이 있다. 남남이었던 이들이 함께 축구를 하거나 같은 팀을 응원하면 금세 친해진다. 일단 한 팀이 되면 하나가 된다. 가끔은 원수와 화해하게 하기도 한다. 한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갈등을 겪던 양측이 축구 때문에 전쟁을 멈췄다. 축구가 무엇이기에 전쟁까지도 멈추는가.

대서양 연안의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작은 나라, 코트디부아르(Côte d'Ivoire)에서는 축구 선수 드로그바가 국민적인 영웅이다. 그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FC에서 주전 공격수로 뛰고 있다. 아프리카 선수로는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그것도 두 번이나.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 선수로 두 차례 선정됐다. 조국 코트디부아르를 월드컵 본선에 연속 진출시켰다. 게다가 드로그바는 내전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 드로그바의 호소로 내전은 7일 동안 거짓말같이 중단됐다. (SBS 동영상 갈무리)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은 2002년 9월부터 시작됐다. 코트디부아르 원주민과 주변국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 사이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코트디부아르는 전체 인구 2,000만 명 중 26%가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같은 주변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다.

2000년, 남서부 출신인 그바그보 대통령 후보는 "부모 양쪽이 이부아르인이어야 대선 후보자가 될 수 있다"며 국민들을 자극했고, '이부아르인'(코트디부아르 사람 - 편집자 주)의 정체성 논란을 일으켰다. 북쪽 지역을 대표하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 우타라 전 총리는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출생하지 않은 외국 이주민이라는 이유였다.

인종 차별은 종교 갈등의 성격도 띠었다. 가난을 피해 이주한 이들은 코트디부아르 북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이에 반해 코트디부아르 원주민인 남부 기득권층은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를 믿었다.

이슬람권이 주축이 된 북쪽 반군은 기독교가 중심이 된 남쪽 정부군이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수출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는 핑계로 쿠테타를 일으켰다. 고조된 갈등은 내전으로 폭발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절반으로 나눠졌다.

내전 직후 프랑스군의 개입으로 잠시 동안의 정전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 치안 병력 사이에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유엔은 평화유지군을 투입했다. 유엔 안보리가 나서서 평화 회의도 마련했다. 그러나 70여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해가 넘어가도 갈등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전은 장기화됐다.

3년이 지났다. 크고 작은 유혈 충돌은 여전했다. 그렇게 전쟁이 계속 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코트디부아르 국가 대표 축구팀이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쥔 날이었다. 코트디부아르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그 소식은 긴 내전으로 지친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에게 단 하나의 희망으로 다가왔다. 2005년 10월,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던 드로그바는 라커룸 안에서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 무릎을 끓었다. "여러분, 우리 적어도 1주일 동안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마이크를 붙잡고 드로그바는 코트디부아르 국민에게 호소했다.

거짓말 같은 휴전이 이뤄졌다. 드로그바의 호소로 1주일간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 국민들은 서로를 겨두던 총부리를 거두고 기쁨을 만끽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축구가 인종 차별과 종교 갈등, 빈부 격차를 극복하게 한 것이다.

1주일 뒤 싸움은 재개됐다. 간헐적인 충돌로 곳곳에서 피가 튀었다. 2007년 3월이 되어서야 그바그보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인 기욤 소로가 평화 합의문에 서명했다. 4월, 소로를 총리로 하는 과도 정부가 출범했고, 7월, 내전은 완전히 종료됐다.

7일 간의 평화는 그저 꿈같았다. 드로그바는 그 시간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그동안 수많은 트로피를 받았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다준 그 순간이 가장 영광스러운 트로피다." 

이명구 /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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