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병 기도자들의 폭거와 예수가 말하는 영광
치병 기도자들의 폭거와 예수가 말하는 영광
  • 정기호
  • 승인 2010.06.29 0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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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초대교회 용어 따라잡기, '영광'(榮光)

우리말 사전에는 영광이라는 말의 뜻이 “모든 사람의 칭찬이나 존경을 받아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되어있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오늘의 기독교에서는 후자의 뜻으로 영광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의 뜻으로 오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교회에서는 집회마다 치병을 위하여 기도하고 목사가 기도한 후 병이 나은 사람이 나와 간단한 간증을 하도록 시간을 준다. 간증의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개 목사가 뜨겁게 기도해 주심으로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을 주었던 질병이 말끔히 나았다고 하는 내용이다. 기도해 준 목사는 이럴 때 늘 하는 말이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치자고 이끌어 내면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듣게 되는 바, 이때의 영광은 하나님께 영광은커녕 능력이 많으시고 크신 종 아무개 목사가 독차지하게 된다.

근래에 기독교계 방송을 보면 사회자가 설교자나 유명인사가 신앙 간증 시간이 도래 하면 출연자를 향한 열렬한 박수를 치도록 신자들을 유도하는 데 말은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을 향한 칭찬과 존경의 모습을 보게 된다.

개신교회의 교회 간판들 중 '영광교회', '주님의영광교회', '글로리아교회' 등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초대 교회에서 사용하던 영광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쓰는 것이다. 용어의 정의가 안 된 상태이다.

요한복음 5장 44절에서 “너희가 서로 영광을 주고받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했다. 이미 서두에서 밝힌 대로 사람들의 칭찬 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영광을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주고받는 영광”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영광은 인간의 명예욕, 과시욕, 성취욕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오늘의 교회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셨을 때 수혜자에게 함구령을 내리셨고 사람들이 많은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 추종하고 '사람들끼리 서로가 주고받는 영광의 쇼'를 벌리고자 시도할 때 슬쩍 몸을 피하시고 단 한 번도 사례를 받으시거나 영광을 받으신 일이 없으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도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든 모시고가서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아신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피하여 혼자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요한 6: 15)고 전하고 있다.

한국의 소위 치병 기도자들의 폭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치병의 능력은 주님으로부터 나오건만 이들은 감사헌금 명목으로 수억 원에서 수천 만 혹은 수십만 원짜리 봉투를 반 강제적으로 내도록 유도한다. “재주는 곰이 피우고 돈은 왕서방이 차지한다”는 속담이 있다. 주님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을 뿐이다. 돈 바친 환자와 가족이 나으면 다행이지만 아까운 돈만 허비 하고 사기 당하고 실망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와 바울이 말하는 영광은 어떤 것인가?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독생자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이 영광(요한 1:14)이다. 예수님은 복음서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영광이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영적으로 죽었던 생명이 부활함을 영광 (요한 11:4) 이라고 하셨고, 밀알 설교(요한 12:24)를 통하여 예수 자신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많은 생명이 살아남을 영광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려고 마지막 만찬자리에서 나갈 때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요한 13:31)고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애 중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영광’에 대하여 영광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할 즈음에야 비로소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였다.

바울은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영광”에 대하여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 오랜 전통의 베냐민 가문, 난 지 8일 만의 할례, 흠잡을 데 없는 진짜 유대인, 바리새파 회원" 등등을 내세우며 자랑스러워하였고 이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를 만난 후 그리스도를 위하여 "여러 번 감옥에 갇히고, 수 없이 채찍으로 맞았다. 여러 번의 죽음을 눈앞에 두었었고, 서른아홉 대를 맞는 태형을 다섯 번, 몽둥이로 세 번 맞았고, 돌로 맞은 것이 한 번, 파선 당한 것이 세 번, 밤과 낮 하루를 바다에서 표류, 강의 범람, 강도 만난 일, 유대인과 이방인의 박해 등으로 수 없는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이 모든 일이 바울 자신에게는 주님의 은혜요 영광스러운 것이었다"고 고백하였다.(고전 11:19-33)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의 삶을 바울 스스로가 살아냄으로서 바울은 진짜 영광이 무엇 인지 깨달았다. 주여! 입술로나 손뼉으로 만의 영광이 아니라,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 앉음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사셨던 삶을 우리 스스로가 재연함으로 주님께 영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소서.

정기호 목사 / 기독교 대한감리회 은퇴 목사, ‘희망의복음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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