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영성', 이렇게 회복하라
'공적 영성', 이렇게 회복하라
  • 이학준
  • 승인 2011.07.14 13:1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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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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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theology 2011-07-19 08:43:57
김학준 교수님이 계신 미국 동부 뉴저지의 PCUSA 신학의 본산(어딘지 아시죠? PTS)에서 십여년전부터 공적 신학(piblic theology)의 담론을 생산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공적 영성은 공적 신학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네요. 공적 신학이든 공적 영성이든 한국에는 이미 그와 비슷한 그러나 타락한 사이비 공적 기독교가 있습니다. 그 몇가지 행태는 1) 지역의 대형교회들(주로 장로교회가 많지요)이 연합체를 구성해서 그 지역의 지자체장(시장, 군수등)과 비공식적인 회합을 정기적으로 갖습니다. 제가 아는 서울 근교의 한 신도시는 시장이 무속인(점장이)에게 상담하는 사람입니다. 장로교 목사들을 중심으로 한달에 한번 정도 조찬모임 내지는 식사 회동을 갖는답니다. 목사들이 무얼 주는지는 잘 몰라도 거기서 이런걸 받아낸대지요. 지역개발 정보를 미리 알아서 신도시나 재개발지역에 종교부지를 선점하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지요. 2) 성시화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고 여겨지는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서울시 봉헌 세레머니 3) 80년대 대학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유포된 고지론 (먼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높은 포지션에 올라가라, 그 후엔 네가 가진 지위, 권력, 돈, 인맥을 이용하여 기독교적 영향력을 전파하라 --> 이거 원조가 누군지 아시죠? 세상이 요즘 기독교의 큰집으로 알고 있는 로마 천주교, 그 중에서도 예수회가 전문가고, 오푸스 데이가 활동가들이지요 * 한 때 국립대 안에 신학과를 설치하자는 운동을 벌이던 이들도 있었지요. 그 논리 중 하나는 서양, 특히 유럽, 독일 등지에 가보면 일반국립대 안에 신학과가 있다는 궁색한 사대주의적 서구 추수적논리에 식민지저 마인드 이지요. 요즘 안티-기독교 정서 때문인지 수구러 든 것 같지만 ..... 암츤 횡설수설 이만 각설 하겠습니다.

public theology? 2011-07-19 08:31:51
수년전부터 이학준 교수님이 계신 그곳 PCUSA 신학의 본산(어딘지 아시죠 PTS)을 중심으로 기독교 윤리 분야에서 공적 신학(public theology)의 담론이 생산된다고 들었습니다. 공적 영성은 공적 신학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네요. 공적 영성이든 공적 신학이든 한국에서 아주 퇴행적이고 타락한 형태로 진행되는 공적 기독교도 있지요. 지역 대교회 (주로 장로교회가 많지요) 목회자들이 지역 지자체장(그가 교인이든 아니든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과 대부분 비공식적인 형태의 조찬모임 내지 회동을 갖습니다. 서로 줄 걸 주고 받을 걸 받지요. 선거에 대한 음양의 지원을 댓가로 평소에 돈독한 유대를 댓가로 지역개발 정보를 먼저 선점하여 종교부지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합니다,. 둘째 70년대부터 시작된 성시화 운동, (장충체육관에서 시장님 모시고 서울시를 봉헌하는 세레머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지네요) 한 때 국립대 안에 신학과를 설치하자는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었지요. 작금의 반기독교정서 때문인지 요즘은 쑥 들어간 것 같네요. 넷째 모선교회를 중심으로 80년대부터 부상한 젊은이들을 위한 고지론(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포지션에 올라가서 그 지위와 권력과 돈과 인맥으로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전파하라 --> 원조가 누군기 아세요. 세상이 기독교의 큰집으로 알고들 있는 로마 천주교죠, 그 전문가는 예수님과 별로 상관 없을 것 같은데 그 이름 쓰는 예수회고요) 이만 횡설 수설이었음다. 그나 저나 미주 뉴조는 록인 안해도 댓글 달 수 있으니 편하기도 하네요^^

atom 2011-07-19 07:07:27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의 소명의 현장은 공히 하나님과의 친밀한 만남의 현장이자 사회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공적 응답의 현장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소명 속에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은 깊은 만남이 있었던 동시에 또한 개인의 영달과 안락을 뛰어넘는 공동체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이 교수님의 글을 읽으니 자꾸 문익환 목사님이 자꾸 떠오릅니다. 공적영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몸으로 살아가신 분으로 여기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어디에 있나요? 사랑은 바로 '현장'에 있지요. 사랑의 처소는 우리의 속좁은 마음이 아니라, 저 높은 하늘이 아니라, 바로 삶의 현장에 있습니다'

짜장라면 2011-07-16 05:24:55
음... 종교개혁 당시의 개혁주의적 영성과 여의도 신학(?)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글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분명히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보편적, 공적영성을 갖추는 일일 것 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흔드는 신학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즉, 보수다운 보수가 드믈다는 것 입니다. 꼴통만 많고 보수가 드문 요즈음입니다.

아톰 2011-07-15 11:14:38
이교수님의 '공적영성'에 대한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뭐 분석의 편의상 개인영성과 공적영성을 나눌 수 있을지라도... 진정한 영성이란 바로 이교수님이 말씀하신 '공적영성'이 아닌가 합니다. 좀 급진적으로 말하면, 공적영성이 빠진 보수복음주의신앙이란 깊게 깊게 숨겨져 있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 맞닿아 있고, 이를 정당화해주는 '소아신앙'에 불과한 것이 아닐지... 공적영성이 빠져버린 보수복음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구원이나 있기나 한 것인지... 너무 나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