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안과 밖
시스템의 안과 밖
  • 지성수
  • 승인 2015.05.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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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과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 후인 응옥 번(HUYNH NGOC VAN) 관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당시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월남전 종전 40주년을 맞아 호주 공영방송 SBS 한국어 방송 프로그램에 인터뷰를 했다. 방송에서 나는 주류 월남참전군인들의 행태를 비판 했다.

세상에서 진실이 무시 당하는 것을 넘어서 부정당하는 것보다 억울한 일은없다.최근에 새 군복을 입은 헌 영감들이 베트남에서 있었던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증언하러 온 베트남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베트남 사람들의 증언 자체를 막으려 들고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둥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 말대로 ‘자유 수호’를 위해서건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위해서건 그들은 나라에서 가라고 하니 갔고 누구인지 모를 적과 싸웠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 들어난 사실을 부인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 일본스럽지 아니한가?

32만 파월 장병 중의 극히 일부지만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행한 민간인 학살은 이미 객관적인 증거와 증언으로 입증돼 있는데 죽어간 사람들이 민간인이 아니라 베트콩이었다고 우기는 건, 일제강점기 시절 주민들을 교회로 몰아넣고 불 질러 죽여 놓고도 “명령을 오해했을 뿐이므로 무죄”라고 우겼던 일본군을 무엇이 다른 것인가?

전 세계가 월남은 ‘패망’한 게 아니라 통일된 것이라고 하는데,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베트남이 엄존하는데도 여전히 자신들은 월남 ‘패망’을 막기 위한 자유의 십자군이었다고 우기는 건 자신들이 한국을 침략한 게 아니라 ‘진출’했을 뿐이며 일본 식민 통치가 한국에 도움을 주었다고 뻗대는 일본 극우파와 뭐가 다른가? 

한 가지 다행한 일이라면 사회 전반에 뿌리가 깊은 일본의 극우파 우익과 달라서 한국에서는 정보에 어두운 다수의 참전군인들끼리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대부분이 70 전후반인 이들이 죽으면 그런 경향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는 것일까?

방송을 마치고 한국인 PD와 이야기를 하면서 또 다시 큰 벽을 느꼈다. 그는 호주의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호주 땅에 살고는 있지만 그 시스템 밖에서 존재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해외의 동포들 사이에는 시민권자, 영주권자, 임시체류자, 관광객, 유학생등으로 법적인 신분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 번은 감기가 걸려서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가 진료하는 단골 동네 병원에 갔었다. 어떤 여자가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흐르는 노동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한국사람(?)이 조선족(?)을 써서 안전장치도 없이 공사를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 보지 않았어도 비디오였다. 

사고를 당한 조선족이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응당 응급실로 가야 할 환자가 한국인 일반의가 운영하는 일반의원에 온 것이다. 법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신분이기 때문에 안전하지 못한 조건 속에서 일하다 안전사고를 당한 것이다. 

일제 시대 때 농사지을 땅을 다 빼앗기고 만주로 떠난 선조들을 보고 ‘이민’이라고 하지 않고 ‘유민’이라고 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살 곳을 떠나는 것을 유민이라고 한다. 한국이 IMF를 만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해외로 일거리를 찾아서 떠나서' IMF 유민‘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도 사실상 정상적인 ‘이민’이 아닌 비정상적으로 삶의 터를 옮겨야 하는 ‘유민’들이 많은 것이 호주 이민 사회의 현실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생존을 위해 혹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가고 있는 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유민은 난민과는 달리 들어올 때는 합법적으로 들어오지만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비합법적으로 들어온 이들은 합법적으로 난민은 되지만 유민은 불법적인 신분으로 남는 것이다. 즉 공식적으로는 서류미비자라고 불리우는 불법체류자들은 법 밖에 존재하는 이들이다. 

돌아오면서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진시황은 편리를 위해서 중화를 통일하는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었지만 그 시스템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다. 세월호에서 본 것처럼 시스템은 항상 허점이 있어서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방어적이기 때문에 어차피 시스템 밖에 있는 사람들이 시스템의 수정을 요구를 해야 한다.때로는 죽음으로. 예수는 시스템을 공격해서 시스템에 의해서 죽지 않았는가?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된 존재로서 조르죠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라는 말이 생각났다. 호모 사케르란 고대 세계에서 공동체 안에서 죄를 지어 공동체에서 배제되었고 신에게 희생 제물로도 바쳐질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그를 죽인다고 해서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호모 사케르는 인간과 신들의 공동체로부터 모두버림 받은 존재이지만 또한 배제의 형식으로만 공동체에 속한다. 역설적으로 법에 의하여 법질서의 외부에 있는 방식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방송 내용은 아래 주소에서 들을 수 있다.

http://www.sbs.com.au/yourlanguage/korean/en/content/memoir-40-years-vietanm-war-korean-australian-veteran-rev-ji-sung-soo

지성수 목사 / '군종, 교목, 원목, 빈민목회, 산업목회, 개척 교회, 이민 목회등을 거쳐서 지금은 현장 목회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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