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양자'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양자'
  • 이승규
  • 승인 2008.06.03 17: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처녀 때 흑인 아이 4명 입양한 크리스틴 이야기

▲ 크리스틴의 가족. 왼쪽부터 알리야·켄드라·크리스틴·메다·다이아몬드·안젤리카·피터.
'크리스틴'(28)은 지난해 결혼했는데, 아이가 벌써 5명이다. 첫째 딸 '알리야'는 11살, 둘째 딸 '메다'는 10살, 셋째 딸 '다이아몬드'는 9살, 넷째 딸 '켄드라'는 6살이다. 막내 딸 '안젤리카'는 2살이다. 안젤리카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크리스틴이 지난 2003년(켄드라)과 2004년(알리야·메다·다이아몬드)에 입양한 아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자매다. 낳아준 부모가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어 따로 살다가, 4년 전 크리스틴의 집에서 다시 모였다.

보스턴 외곽에 사는 크리스틴의 집을 5월 30일 찾았다. 손님이 오자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마당으로 뛰어 나왔다. 기자와의 만남은 그 날이 처음이었음에도 아이들에게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이것저것 캐물었다. 4명이 동시에(두 살배기 안젤리카는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그것도 영어로 떠들어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둘째 딸 메다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알려줬다. 이제 10살이 됐단다. 넷째 딸 켄드라는 기자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대답해줬더니 '승규'는 못 알아듣고 '이'만 알아듣는다. 아이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 하고 겨우겨우 집 안으로 들어서니 셋째 다이아몬드가 점퍼를 벗어달란다. 메다와 켄드라는 시원한 물과 포도를 갖다 줬다. 막내 안젤리카는 자신도 이 행렬에 동참하고 싶다며, 언니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지만 마음만 앞섰다. 큰언니 알리야만 쑥스러운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동양인이 못 미더운지 기자의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난 뒤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방긋 웃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기자가 갖고 간 노트북에 관심을 보이고, 사진을 찍으면 그걸 보여 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제일 신기해한 건 한글이었다. 한글을 알 리 없는 이들에게 자판을 두드리면 튀어 나오는 글자가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 메다(왼쪽)와 켄드라는 김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사진 찍자고 했더니, 저렇게 바로 포즈를 잡는다.
딸이 5명이나 있는 집안이라. '정말 정신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동시에 집안 분위기가 항상 활기차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이었는데, 크리스틴이 생각을 깼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저렇게 활발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처음 집에 왔을 당시에는 매우 어두웠다고 했다. 크리스틴은 지금 저렇게 쾌활하게 뛰어노는 것은 아이들이 입양 오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크리스틴은 아이들이 집에 처음 왔을 당시에는 기가 무척 죽어 있었다고 전했다. 부모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배신감과 태어나자마자 폭력에 시달리고 가난에 울었던 기억이 이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크리스틴은 무엇보다 이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 대로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했고, 공원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러자 조금씩 아이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뭐 하나 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지만, 이들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아이들의 친아빠가 입양을 반대하고 나섰다. 뚜렷한 직업도 없고 항상 아내와 아이들에 폭력을 휘둘렀던 아빠였다. 크리스틴은 지금도 왜 친아빠가 입양을 반대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법정에서 3년을 싸웠다. 크리스틴은 이 기간 동안 있었던 일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아이들 입장에서 입양이 미뤄지면 혹시라도 자신들이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은 아이들에게 같은 상처를 두 번 주기 싫었다. 

처녀가 입양을 하겠다고?

▲ 입양한 아이들을 그린 그림이 집 한쪽에 걸려 있다.
크리스틴은 입양을 하면서 주변 사람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처음 크리스틴이 입양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주변 반응이 가지각색이었다. 입양을 제일 반대한 건 크리스틴의 엄마였다. 그녀의 엄마는 한국 사람이다. 입양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난 뒤 엄마의 반응이 어땠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대다수 한국 엄마는 자식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우리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딸이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도 잘 벌고 있는데,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젊은 나이에 입양으로 인해 많은 걸 포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는 조금씩 크리스틴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딸이 입양을 결정한 것은 뭔가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크리스틴 가족의 가장 든든하고 강력한 후원자다.

크리스틴이 입양을 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건 교회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입양한 자녀들이라며, 크리스틴의 결정을 지지했다. 입양에 필요한 실제적인 정보를 찾아 크리스틴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또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나서서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도 크리스틴에게는 큰 힘이 된다. 크리스틴이 사는 동네는 주로 백인이 많이 산다. 아직 인종차별이 남아 있는 미국에서 이런 동네에 흑인 아이들과 함께 산다는 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이 자신의 가정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이들 역시 동네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저녁마다 성경 공부

▲ 크리스틴의 남편 피터는 저녁 시간에 아이들에게 성경을 재밌게 이야기 해준다.
크리스틴의 남편 피터도 어려운 결심을 한 셈이다. 결혼하자마자 졸지에 아이 4명의 아빠가 됐기 때문이다. 둘은 '고든콘웰신학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만났다. 남편 피터에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냐고 물었다. 피터의 대답이다.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아내와 가족을 함께 달라고. 크리스틴은 이 조건에 딱 맞는 여자였다(웃음). 또 나는 형이 한 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외로웠다. 식구가 많은 집에서 시끄럽게 살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지금이 나는 무척 행복하다."

피터는 저녁마다 식탁 앞에 있는 벽에 흰색 종이를 붙여놓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성경 이야기를 해준다. 피터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의 이야기꾼이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재밌게 성경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예수를 알게 됐다. 아이들은 입양 오기 전에는 교회에 대해 알지 못했다.

크리스틴은 입양을 하면서 신앙이 더욱 성숙해졌다고 했다. 물론 아이들을 통해서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속에 분노가 있었다고 했다. 크리스틴은 이 부분에서 아이들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사했듯이, 너희도 부모의 죄를 용서해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크리스틴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친부모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많이 없어졌다.

크리스틴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어떻게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일까. 크리스틴은 아이들이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의 집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 같아선 대학에 꼭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녀는 아이들이 친부모에게 간다고 하면, 보내줄 생각이 있다고 했다. 단, 그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확인 된다면 말이다. 아이들을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입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크리스틴과 피터는 자신들이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입양을 하자고 했다. 친엄마의 얼굴을 기억하는 아이는 큰딸 알리야뿐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 편지를 두 번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알리야는 가끔 엄마 걱정을 한다.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또 예전처럼 폭력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양자라는 사실을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