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수와의 유쾌한 만남, "다음에 꼭 오세요"
살인수와의 유쾌한 만남, "다음에 꼭 오세요"
  • 박지호
  • 승인 2008.05.31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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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 씨가 들려준 교도소의 평범한 일상

이처럼 막막한 인터뷰가 또 있을까. 이호영(가명) 씨와의 만남은 여느 인터뷰와는 조금 달랐다. 생면부지 초면에 무슨 공유할 거리가 있겠으며, 더구나 옥중 생활이라는 것이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아닌가. 바깥에서 돌아가는 세상사를 나누자니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이것저것 캐묻자니 불편해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씨와의 첫 만남은 예상 외로 편안했다.  

이 씨가 수감되어 있는 그린헤븐교도소를 이 전도사와 함께 찾았다. 거대한 교도소 담장이 눈앞에 펼쳐지자 벽만큼이나 높을 이 씨의 답답함이 가슴을 채웠다. 이 씨의 죄수 번호를 교도관에게 불러주고 신분 확인을 거쳤다. 이 씨가 좋아하는 꽁치 통조림과 김치 통조림을 교도관에게 건네고 몸수색을 마쳤다.

여러 개의 두꺼운 철문과 쇠창살을 통과해 면회실에 들어섰다. 학교 식당 같은 넓은 홀에 여러 개의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고, 재소자와 면회객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 오랜만에 만난 자녀들을 껴안고 볼을 비비는 사람, 여자친구와 진한 애정 표현을 나누는 사람 들…. 적어도 그 시간, 그 공간에서만큼은 더 없이 행복하고 자유로워보였다.  

면회실 한 귀퉁이에 비치된 자동판매기에서 냉동 햄버거며 닭고기, 팝콘 등을 사들고 이 씨를 기다렸다.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짧은 머리에 체구가 왜소한, 동양인 청년이 쑥스럽게 걸어 나왔다. 살인범 치고는 얼굴이 해맑고 밝았다.

이 씨와 인사를 나누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 씨가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들었던 탓에 먼저 말을 해야겠다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이 씨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험한 곳엔 왜 오셨어요? 뭐, 아는 분 중에 이런 곳에 계신 분이 있나요?”"

하긴 이상하기도 할 게다. 보아하니 연배도 비슷해 보이는 젊은이가 한창 일할 시간에 교도소에 들어와 살인수를 만나겠다고 앉아 있으니 말이다.

"그게, 저…." 난감했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니 부담스러워할 것 같고, 적당히 둘러대자니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신문사에 일한다"고 솔직히 말했다.

혹시 기자냐고 이 씨가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취재 목적이라기보다 한 번 뵙고 싶었다며 부담 갖지 말라고 안심시키는데, "괜찮아요. 제 이름만 빼곤 다 써도 괜찮아요. 잘한 것도 없는데, 이름까지 나가면 그렇잖아요" 하며 웃었다.

들었던 것보다 이 씨는 말도 잘했고, 상대방을 세심히 배려했다. 어색할까봐 이 씨가 먼저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타고난 성격 때문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을 접하면서 축적된 자연스러움인 듯싶었다. 아내와 처음 만나서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부터, 한국이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이야기, 변화된 한국의 모습, 스포츠 이야기 등등 2시간 동안 온갖 주제를 넘나들었다. 

이 씨는 교도소 내의 일상도 들려줬다. "처음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운동에 매달리기도 했죠. 운동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운동장으로 나가 녹초가 될 때까지 운동했어요. 한동안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빠져 무리하게 근육을 키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했고요." 이 씨가 옆에 앉은 흑인 재소자를 가리키면서 "우린 아무리 운동해도 몸이 저렇게 안 되요" 하며 싱긋 웃었다.

기자가 영어 때문에 미국 생활이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자, 이 씨는 "처음엔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서 드라마 대사를 모조리 외웠다"며, "감방에서 혼자서 영어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니까 옆 방 동료가 '누구랑 대화하냐', '미쳤냐'고 묻더라"고 말했다.   

한 때는 만사가 귀찮아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는데 요즘은 밖에 나와서 산책도 하고 맨손체조도 한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영화를 시청하는 시간이 있는데, 간혹 한국 영화도 보여준다며 얼마 전에 <괴물(The host)>을 봤다고 말했다. 한국말로 들어야 제 맛인데, 영어로 더빙을 해서 재미가 없었다며 아쉬워했지만 영화를 통해서 한국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영화에 내가 살았던 용산구가 나오더라고요. 무척 반가웠어요. 그래서 동료들에게 저기가 바로 내가 살던 곳이라고 얘기해줬죠."

월드컵 때는 "교도소 내에서도 열기가 대단했다"며, "경기는 한 번밖에 못 봤지만,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갔다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음식 때문에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닭고기는 질린다"며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돼지고기가 귀하다"고 말했다.

면회 오면서 사다준 김치 통조림이나 꽁치 통조림은 어떻게 먹는지 궁금했다. 이 씨는 군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김치 통조림과 꽁치 통조림을 섞어서 봉지에 넣은 뒤에 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데워 먹죠. 얼마나 맛있는데요."

동료 흑인 재소자 한 명도 김치에 중독되어서 아까운 김치를 나눠 먹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던 이 씨는 갑자기 생각난 듯 요리 솜씨 못잖게 뛰어난 중국인 재소자들의 잔머리를 칭찬했다.

"중국 사람들 음식 솜씨가 대단해요. 원래 조리를 못하게 되어 있는데, 깡통과 전기포트를 절묘하게 조립해서 조리 기구를 만들었어요. 거기다 튀김도 하고, 볶음밥도 해먹는데, 맛이 기가 막히죠. 그 머리를 좋은 일 하는데 썼으면 세상이 더 좋아졌을텐데, 하하"

대화를 나누다 화장실에 다녀온 이 씨가 자리에 앉으며 "요즘 손을 자주 씻는데, 주변에선 강박증 아니냐고 잔소리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과민하게 해석하는 주변의 반응이 싫었던 모양이다. 기자는 "너무 안 씻어서 잔소리를 듣는다. 손을 자주 씻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 대꾸하자 "그렇죠?"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면회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다른 무기수를 만나고 있던 이 전도사가 '헤어질 준비를 하라'며 눈치를 줬다. 한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2시간을 훌쩍 지났다. 이 씨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기약 없는 두 번째 만남을 약속했다. 이 전도사와 대화를 나누던 김길수(가명) 씨도 "다음에 꼭 오라"며 힘주어 손을 잡았다. 이 씨와 김 씨는 간수를 따라 교도소의 평범한 일상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들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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