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아닌 영성에 기초한 신앙생활
종교가 아닌 영성에 기초한 신앙생활
  • 유장춘
  • 승인 2008.08.28 22: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빈약한 영성이 문제…진정한 그리스도의 성품 본받자

   
 
  ▲ 헌금을 잘 낸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비 기독교인에게도 잘 알려진 어느 유명한 목사가 부흥회 마지막 날 교인들에게 6가지를 당부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것은 십일조 생활 꼭 할 것, 주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 새벽기도 꼭 나올 것, 많든 적든 감사(헌금을)할 것. 성경을 매일 읽을 것, 그리고 담임목사에게 잘 할 것 등이었다는 것이다. 무슨 설명이 앞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교회 생활이 축복을 준다는 논리를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접하고 있다.

우리가 종종 혼동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이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성실하게 예배에 참석하고, 두둑하게 헌금하고, 또 꼬박꼬박 기도하면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은 종교와 영성만큼이나 다른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종교를 영성으로 착각한다는 데에 있다.

영성과 종교는 구분해야

사회과학자로서 영성을 연구한 에드워드 칸다(Edward R Canda)는 현대 사회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영성과 종교를 구분한다고 했다. 유명한 옥스퍼드의 조직신학자 엘리스터 맥그래스는 영성이라는 용어가 종교와는 분리된 것일 뿐 아니라 대조적인 접근 방식을 갖는다고 하였다.

영성(spirituality)을 사회과학적 용어로 정의하면 "자신보다 더 차원이 높은 존재와의 관계" 또는 "개인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해 궁극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을 알기 쉽게 기독교적으로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형성된 인격적 관계 그리고 그 관계를 더 심화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영성을 개념화하려했던 칸다는 영성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제시했다. 먼저 영성은 사람의 가장 깊은 속에 있는 부분이지만 개인적 성장과 환경과의 관계를 통하여 표출된다고 했다. 더 나아가 영성은 사람의 모든 부분을 통합하면서 동시에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특징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영성은 모든 존재하는 것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인간의 고통과 소외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현상은 매일의 일상적 부분들을 초월적 부분과 통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사회과학적 탐구의 결과로 발견된 것이지만 동시에 성서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가 맺어지면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지갑을 잃어버려도 이 사건을 통하여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특별히 영성은 자기 자신의 성장과 이웃에 대한 봉사로 표출된다. 영성에 관한 가장 좋은 성서적 설명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3)"는 말씀이다. 이 간단한 성구 안에서 우리는 세 가지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성장과 봉사로 표출되는 영성

   
 
  ▲ 영성은 자기 자신의 성장과 이웃에 대한 봉사로 표출된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나 자신도 성장하는 것. 영성의 삶이다.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대신(對神)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둘째로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라는 말씀은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는 고통당하는 이웃들과의 관계 즉 대(對)이웃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 즉 대자아(對自我)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의 관계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가까워지면 이웃도 사랑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토록 목숨 바쳐 사랑하시는 나와 나의 이웃을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돌보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관리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말 하는 사람이다.

성서에서 최고의 영성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죄로부터 지켜내셨을 뿐 아니라 짧은 공생애 동안 약한 자와 병든 자들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다. 늘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고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씀하셨다. 예수님 뿐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영성이 깊은 경건한 사람들의 삶에는 반드시 사회봉사적 섬김의 행동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구약의 율법적인 규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 등과 같은 규정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동시에 휴식을 누리고 얻게 하는 구조적 장치였다. 다시 말하면 사회, 문화적 제도들이 영성을 담아낸 그릇이었던 것이다. 율법은 영성적인 요소와 사회봉사적인 요소가 하나로 결합된 사회구조적 틀이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인가?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영성이 외적 행동이나 태도 또는 생활로 나타날 때 '경건(piety)'이 되고, 그것이 전통으로 세워지면서 집단화, 형식화, 문화화, 교리화, 의식화 되었을 때 그것은 종교(religious)가 된다. 미국 캔터키 루이빌 남침례교 신학대학원의 레슬러 교수는 영성은 '개인적인 현상(personal phenomenon)'인 반면 종교는 '사회적 현상(social phenomenon)'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종교는 영성을 설명하고, 나타내는 형식과 구조이지 영성 그 자체는 아니다. 종교는 세속의 그 어떤 것 보다 영성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성이 생략된 문화적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투명인간과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헝겊과 같다고 본다. 종교는 영성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영성과 종교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다음과 같이 인간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영성과 종교의 차이에 따른 네 가지 유형

첫째는 영적이면서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면적으로 영성을 소유하고 거기에 근거한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종교적 단체와 의식(儀式)에 참여하며 교리적 체계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예배라는 종교 행위에 참석하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한다. 이런 사람들은 영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종교를 포용하고, 초월할 뿐 아니라 매우 자유롭고 유연하다. 그들은 통성기도를 통해서도, 묵상기도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고백하고 말씀을 드릴 수 있다. 공동체와 함께 신앙의 양식을 받아들이지만 그 틀에 갇혀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영적이면서 비종교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면에 그리고 생활 속에 영성을 소유하고 있지만 종교적 단체나 의식에는 별로 참여하지 않고 교리적 체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언뜻 보면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교회에 소속하지도 않고, 예배나 기도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하나님과 치열한 소통이 있고, 그 삶에는 하나님을 향한 자기희생적 헌신이 있다.

셋째는 영적이지 않으면서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성은 소유하지 않고 사회적 또는 이기적 목적으로 종교적 행위에 참여한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는 맺지 못했으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으며, 지위를 얻고,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에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교인들은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이기적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막대한 헌금을 하며, 단지 습관에 따라 또는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예배에 참석할 뿐이다.

영성이 없이 종교성만 강한 사람들은 매우 권위적이어서 편협하고 고집스러우며, 양보가 없고,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차가울 뿐 아니라 아주 공격적이다. 그들은 음모와 술수에 능수능란하며 거짓말을 쉽게 할 수 있고 정치적인 헤게모니 경쟁에 매우 탁월한 수완을 보인다. 그래서 이단 재판을 벌이고 자기와 다른 신앙에 대하여 독설과 박해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장 싫어 하셨으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를 퍼부으셨다.

넷째는 비영성적이면서 비종교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영성도 소유하지도 않고 종교에도 관심이 없다. 그냥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신념대로 사는 사람들일 뿐이다.

한국 교회의 영성은 과연?

이렇게 유형화 시켜서 굳이 구분을 하려고 하는 것은 오늘의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의 양상이 어떤 것인가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왜 한국 교회는 그토록 열심을 내면서도 그렇게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왜 교인들은 그렇게 열심히 예배하고 기도하는데 교회 바깥  사람들은 존경하지 않을까.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종교적 열심히 약한 데에 있지 않다. 빈약한 영성에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으며, 진정으로 성령님의 뜻에 민감하게 순종한다면 얼마 안 되어 교회는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아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