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도소 내에 한인 재소자들의 삶
미국 교도소 내에 한인 재소자들의 삶
  • 박지호
  • 승인 2008.06.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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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차별에 시달리다

황상태(가명, 62세) / 뉴욕에 살던 강 씨는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다며 살해했다. 무기수로 수감된 이후 ‘나 같은 더러운 죄인이 살아서 뭐하냐’며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자녀들 입장에선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보고 싶을 리 만무다.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고 연락했지만 딸은 끝내 응답이 없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은 잘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만날 수가 없다. 강 씨는 이감 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작년 여름 교도소 내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김길수(45세) / 김 씨 역시 아내를 살해하고 종신형을 언도 받았다. 김 씨의 남은 재산은 아들에게 상속됐지만 갑작스레 큰돈을 만지게 된 아들의 앞날이 염려된다. 아들의 소식도 끊어진 지 오래다. 김 씨 역시 면회 올 사람이 없다. 친척이 몇 명 있긴 하지만 살인자라며 소식을 끊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큰 김 씨는 한국 소식을 들려주면 좋아한다.

‘면회 올 사람 없는 경우 많아’

한인 재소자들은 외롭다. 면회 올 사람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올 수 없는 형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 어린 재소자들 중 대부분은 결손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녀의 옥바라지를 꾸준히 할 만큼 여유 있는 가정은 드물다. 쉽게 말해 먹고살기 바쁜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면회를 오지 못하는 것이다.

재소자의 범행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는 후유증도 재소자를 더욱 외롭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황 씨와 김 씨의 사례처럼 가족을 살해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범죄자 가족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게 되는 것이다. 3년째 교도소 사역을 하고 있는 와싱톤한인교회 Prison Ministry 팀의 김창원 장로도 “죄를 지으면 사회에서는 물론 가족에게서까지 외면당하는 것이 한인 재소자들과 미국인 재소자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장로는 20년 동안 한 번도 한국말을 못했다는 한 재소자를 떠올리며, “만나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오레곤 주 교도소에 있는 김형욱(가명) 씨는 교도소 내에 한국인도 없을 뿐더러, 유학생으로 수감됐기 때문에 면회 올 가족도 없는 처지다. 그래서 LA에서 사역하는 임미은 선교사(아둘람재소자선교회)가 20시간씩 차를 몰아 1년에 한 번씩 다녀오는 게 전부다.

   
 
  ▲ 미국 교도소 내에 한인 재소자들은 외로움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강행봉(54세) / 살인 미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4년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던 강 씨는 낮잠을 자던 중 감방 동료가 내려친 둔기에 맞아 사망했다. 좁은 감방 안에서의 문화와 언어 차이로 인한 갈등이 원인일 것으로 가족들은 추측하고 있다. 강 씨는 서투른 영어 때문에 재판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복역 중에도 영어 공부를 하면서 항소를 준비하는 등 언어 소통의 문제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김형철(32세) / 김 씨는 납치 성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2005년 6월 돌연 사망했다. 평소 중증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는 김 씨가 말이 통하지 않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씨의 가족은 “김 씨가 평소 몸이 불편해 교도소 측에 노동 시간을 줄여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며 교도소 측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감옥 속의 또 다른 감옥’

한인 재소자들은 교도소 내에서도 겪는 외로움도 크지만 차별로 인한 고통도 적지 않다. 영어를 못하는 경우 그 고통은 배가 된다. 동료 수감자나 간수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신을 변호할 수 없기 때문에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감옥 속의 또 다른 감옥인 셈이다.

힘들게 의사를 표현해도 교도관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교도관이 알아듣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한인 재소자를 통해서라도 의사소통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 현재 미국의 교도소 내에서는 폭행이나 살인 등의 범죄가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데, 문화적․언어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숨은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교도소 사역자들은 설명했다. 교도소에서 7년간 복역한 뒤 목사가 된 샘 신 목사의 말을 들어보자.

“좁은 감방 안에서의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과 언어 소통의 문제도 큰 어려움이다. 모든 것들이 2평 남짓한 작은 방안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코고는 것부터 음식 먹는 것,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까지 모든 게 충돌의 대상이다. 생각해보라. 그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MBC, ‘World-Wide-Weekly’ 중에서)

   
 
  ▲ 외로움에 신음하는 한인 재소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면회를 가서 말동무가 되어 줄 수도 있고, 2세들은 한글은 읽지 못하는 젊은 재소자들과 영어로 펜팔을 할 수도 있다.  
 
한인 재소자, 무엇을 어떻게 도울까

이국땅에서 외로움과 차별에 신음하는 한인 재소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소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제도적인 개선안을 마련하는 일에 동참할 수도 있다. LA에 있는 아둘람재소자선교회는 작년에 ‘재소자의 권리 보호안’ 등이 상정될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이며 주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이 주민발의안이 통과될 경우 재소자 가족 면회 시간 연장, 월 4시간의 전화 통화, 월 25시간의 운동, 친구 및 친척의 개인 물품 전달 등이 허용되고, 중범죄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재소자들의 항소권을 허용하고 형량의 75%를 복역하면 가석방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된다.

뉴욕에서는 Youth and Family Focus라는 단체의 사역을 도울 수도 있다. 뉴욕 주에 있는 70여 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250명 이상의 한인 재소자들을 섬기고 있는 Youth and Family Focus는 매주 재소자들과 상담 사역을 하고 있다. 이민 1세대의 경우 정기적으로 면회를 가서 영어가 불편한 나이 많은 재소자들의 말동무가 되어 줄 수도 있고, 영어가 편한 2세들은 한글은 읽지 못하는 젊은 재소자들과 영어로 펜팔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청소년이 재소자와 펜팔을 할 때는 학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 재소자 사역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환상도 금물이다. 몇 번의 대화로 재소자가 극적으로 회심한다거나 변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꾸준히 사귀면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되 말하기보다 듣고 공감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재소자가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면회를 꾸준히 가지 못한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재소자 사역 관련 문의
LA - 아둘람재소자선교회 임미은 선교사 (213-381-2007)
뉴욕 - Youth and Family Focus 이상숙 전도사 (http://www.youthandfamilyfocu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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