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 내려와 계산대 앞에선 목사들
강단 내려와 계산대 앞에선 목사들
  • 박지호
  • 승인 2008.08.17 23:1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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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영락교회, 올해로 4회째 맞는 '더불어 세상 속으로'

LA에 있는 나성영락교회(림형천 목사) 목회자들이 교회 강대상이 아닌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 섰다. 성직자 가운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성경 대신 비닐봉투를 들었다. 계산대에는 청중도, 마이크도 없건만 이들의 이마엔 연신 땀방울이 맺혔다. 봉지에 물건 담으랴, 손님 눈치 보랴, 선배 종업원의 호령에 물건 집어 오랴 정신없다. 그렇게 한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나성영락교회는 4년째 ‘더불어 세상 속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교역자들이 일주일 동안 교우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몸으로 교우들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교우들의 일터인 봉제 공장, 청소 회사, 꽃 가게, 식당, 호텔, 유치원, 무역 회사 등에서 일하고 받은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왔다.

   
 
  ▲ 물건을 담는 림형천 목사의 손놀림이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 행사 첫날 의욕 충천하던 마음과는 달리 손발이 따라주질 않아 림형천 목사는 결국 패킹 보조로 밀려나고 말았다. (사진 제공 : 나성영락교회)  
 
올해는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갤러리아마켓을 찾았다. 나성영락교회 전임 사역자 16명이 8월 4일~8일, 11일~15일에 걸쳐 일하고, 그 수익금으로 폐과 위기에 처한 UCLA 한국음악학과를 돕기로 했다. 갤러리아마켓도 3배의 임금을 지급하고, 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한 영수증을 모금함에 기부할 경우, 그 금액의 5%를 적립해주는 것으로 이번 행사에 동참했다. 그렇게 총 5만 불을 모금해서 지원했다. 개별 단체로서는 가장 큰 액수라고 한국음악학과 측은 전했다.

행사 마지막 날인 8월 15일, 나성영락교회 목회자들은 분홍색 티셔츠에 감색 앞치마를 두르고 마켓을 누볐다. 계산대에서 있는 목회자들은 손님의 물건을 봉지에 담는 ‘패킹’(packing) 작업에 한창이었다. 제법 손놀림이 빠르고 능숙하다. 짧은 순간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구별해야 하고,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나눠서 담아야 한다. 부서지기 쉬운 과자류는 마지막에 담아야 한다. 가면서 먹을 음식은 따로 담아주는 센스도 발휘해야 한다. “여기 경기미 20kg요." 고참 직원 한마디에 고객이 찾는 물건을 척척 잘도 찾아왔다.

반찬부에서는 새로 끓인 잣죽을 열심히 그릇에 나눠 담고 있었다. 이문영 목사의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첫날부터 전복죽, 버섯죽만 수십 통을 담았던 터라 국자로 담는 것보다 통으로 담는 게 쉽다는 걸 일찌감치 터득하고 동료 목사에게 열심히 전수하고 있었다. 반찬부 고참 직원도 이제는 이들이 미더운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고 멀찍이서 반찬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 

   
 
  ▲ 잽싸게 과일을 진열하는 김도환 목사. (사진 제공 : 나성영락교회)  
 
   
 
  ▲ 김귀안 목사는 주변의 반찬을 둘러보며 "이게 굉장히 간단한 거 같아도 막상 해보면 정성이 필요하고 어렵다"며 반찬부 직원들을 칭찬했다.  
 
그게 뭐죠?…'아, 담배구나'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손은 느린데 손님들은 밀려오고, 도움은 못될망정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은 다급해진다. 행사 첫날 의욕 충천하던 마음과는 달리 손발이 따라주질 않아 림형천 목사는 결국 패킹 보조로 밀려나기도 했다. 림형천 목사는 직원이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켰지만, 멍하니 직원 얼굴만 쳐다봐야 했다. 도무지 들어보지 못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담배 이름이었다.

김종길 전도사도 밀려드는 손님에 정신없이 물건을 봉지에 담다가 할머니 손님에게 살짝 얻어맞기도 했다. 할머니 물건과 다른 사람 물건을 섞었던 모양이다. 김귀안 목사는 “첫날엔 다리가 아프더니, 다음날에는 패킹하다가 팔목을 다치고, 나중에는 불에 데기도 했다”며 웃었다.

   
 
  ▲ 안 하던 일 하려니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나성영락교회 한 목회자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염치 불구하고 드러누워 토막잠을 즐기고 있다.  
 

   
 
  ▲ 나윤일 전도사는 식품부에서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호세(왼쪽)와 헤어져야 한다는 게 아쉽다.  
 
"야, 이 자식아 너 이름 뭐야?"

나성영락교회 목회자들이 현장 체험 이후 이구동성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다. 손님들이 히스패닉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줬으면 했다. 김도환 목사는 “(손님 중에) 히스패닉 직원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할 땐 가슴이 아프다”며, “자기가 잘못해서 물건이 쏟아졌는데도, 진열을 잘못했다며 불평을 하더라”고 말했다.

하루는 어떤 히스패닉 직원이 다짜고짜 “야 이 자식아, 니 이름 뭐야?” 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 질문을 받은 교역자는 어리둥절했지만 그 히스패닉 직원이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 한국 사람에게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림형천 목사는 “우리가 가르쳐준 말을 우리가 다시 들은 것”이라며 “시사하는 것이 큰 에피소드”라고 말했다.

일하는 이들의 고충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도 많이 나왔다. “굉장히 간단해 보이는데, 굉장히 어렵더라”, “작은 것 하나에도 정성이 필요하고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알았다”,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다 보니까 성도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고 말했다.

나윤일 전도사는 서툰 한국말로 흉내까지 내가면서 “옛날에는 쇼핑 가면 진열된 과일을 이렇게 막 집었는데요. 이젠 요렇게 조심해서 꺼내요” 하며 웃었다. 김귀안 목사는 “예전에는 계산대에서 앞사람 천천히 계산하면 속으로 짜증도 내곤 했는데, 이젠 오히려 느린 사람이 고맙다”며 상대방 입장에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손님에게 우리가 평소에 느낀 대로만 해주면 제일 좋아하더라. 목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계재광 목사는 말했다.

   
 
  ▲ 바쁘다 바빠. 손은 느린데 손님들은 밀려오고, 도움은 못될망정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은 다급해진다.  
 
“교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인지…”

반찬부 직원에게 목회자들이 와서 돕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귀찮지 않더냐고 물었다. “정말 열심히 잘 하더라. 이제 안 나올 텐데, 섭섭할 거 같다”며 아쉬워했다. 6번 캐쉬어 직원은 놀랐다는 말을 연이어 했다. 목사라고 무게 잡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안 그래서 놀랐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손님들의 불평이 현저히 줄어서 놀랐다고 했다.

손님들도 칭찬 일색이다. “색다른 모습이다. 교회가 ‘돈을 너무 밝힌다’, ‘자주 싸운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목회자들이 직접 봉사하는 모습이 정말 좋다”, “강단에서 무게만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함께 땀 흘리고 고생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교회에서 목사님은 특별대우를 받으며 섬김을 받는 데 익숙한데, 이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일을 하니까 한결 가깝고 친근한 느낌이다”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또 “교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번 돈으로 헌금하는지 알 수 있을 거”라며 “이런 경험을 하면 교인들이 헌금한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고객도 있었다. “이런 행사를 통해 교인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설교가 아니라, 교인들의 삶에 필요한 말씀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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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i99.com 2011-05-07 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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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boo 2010-09-23 23:53:08
1998년과 99년 미국에 있다가 한국으로 와서 안산에서 중국인을 위한 중문 신문을 했지요.
암울한 소식뿐인 한국교회에 이런 희망적인 도전들이 있다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능성을 다시 보게 합니다. 물론 재외교회도 한국교회와 같은 어려움과 도전이 있지만 미국주류 교회들중에 모범적인 교회들이 있어 그런 생명력이 한인교회에도 흘러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graceandpeace2u 2008-09-07 20:36:19
개교회 차원에서 뿐 아니라 뉴욕, 뉴저지 교협 차원에서 한번 추진해 보시면 어떨까요?

호구아저씨 2008-08-22 00:27:29
대부분의 목사들은 성인이 된 뒤의 사회경험이 거의 없지요. 그러니 이 세상에서 성인으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을, 또 그 곳에서 "교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번 돈으로 헌금하는지 알 수" 없지요. 우리 교회에도 하나 있지만, 하나님의 이름 팔아서 자기만족 위해 헌금쓰고, 그것도 모자라 때 맞추어 여러 이름으로 헌금봉투 돌리는 인간들. 하나 둘 이라야 이야기하지 온 천지에 널려있지 않소이까? 그러니 이 기사에서의 목사분들, 비록 연례행사 이지만 너무도 달리 보이고 마음에 와 닿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