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일러 룸], '성공이냐 정직이냐'
영화 [보일러 룸], '성공이냐 정직이냐'
  • 박지호
  • 승인 2008.09.12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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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열리는 '신앙과 영화 세미나'…크리스천의 신앙과 삶 고민

'세스 데이비스'는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주식 중개업 회사에 입사한다. 업계의 실력자로 부상하며 돈을 끌어모으던 어느 날, 자신이 몸담은 주식회사가 불법 주가 조작을 일삼는 보일러 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성공을 위해 고객들에게 유령회사 주식을 팔아치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심리적인 갈등을 겪다가 회사를 떠난다.

   
 
  ▲ 영화 <보일러 룸>은 인간의 의식이 자본 논리에 지배당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영화 <보일러 룸>의 줄거리다. 한국에서 BBK 사건이 터졌을 때 김경준 씨가 이 영화를 모방해서 주식 사기를 벌였다고 소문이 나서 뒤늦게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9월 10일 LA 남가주밀알선교단에서는 <보일러 룸>이란 영화를 보고 '비즈니스 윤리와 경제관'에 대해서 토론하는 '신앙과 영화 세미나'가 열렸다.

'문화 코드를 통해 사회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자'는 취지로 기독교세계관네트워크(Christian Worldview Network)와 살림교회(천진석 목사)가 주최한 행사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을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성찰하자는 것이다. 영화라는 대중적인 도구를 사용하니 무겁고 부담스러운 주제도 참석자들이 한결 수월하게 받아들였다.

세미나는 영화의 주요 장면을 본 후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토론했다. 발제는 UC, Irvine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상준 씨가 맡았다. 김 씨는 특히 인간의 의식이 자본 논리에 지배당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주인공이 억만장자를 꿈꾸며 입사를 결심하는 첫 장면을 통해 부와 명예를 곧 성공으로 정의하는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 언급했고, "여기서 근무하는 유일한 이유는 지독한 부자가 되는 거지. 우린 인권단체가 아니야"라는 대사를 통해서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어떤 도덕적 희생이라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또 주인공이 회사의 비리를 보고 마음이 흔들리자 회사 동료가 “비리를 보고 금방 흔들리네. …돈을 벌고 싶다며"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비윤리적인 기업의 구성원이라는 수치감보다 돈에 대한 욕구가 앞서기 때문에 조직의 그릇된 행태도 수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크리스천으로서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부터, 세상에 나타난 그릇된 성공관, 비윤리적인 집단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 참석자들은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부터 크리스천으로서 비윤리적인 집단 속에서 느끼는 갈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들까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 나는 옷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 소위 장사아치다. '아치'라는 말이 따라붙는 단어는 양아치와 장사아치밖에 없더라. 두 '아치'의 공통점이 뭘까. 전혀 손해를 안 본다는 점이다. 장사아치는 안 남는다고 하면서 절대 손해를 안 본다. 결국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문제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예수쟁이와 장사아치 사이에 존재하는 이율배반적인 긴장이다. 

= 사업을 하다보면 가짜를 만들자는 제의가 심심찮게 들어온다. 한창 유행하는 상표를 복사해서 내다 팔면 수입이 짭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날 손님까지 찾아와서 그 물건을 찾기 시작하면 정말 유혹을 이기기 힘들다. 이게 현실이다.

= 영화 초반에 주인공이 불법적으로 도박장을 운영하는 모습이 나왔다. 하지만 합법을 가장한 주식 사업은 오히려 더 불법적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자본주의 안에서, 고도화된 시스템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돈과 제도의 노예임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 요즘 대기업은 영화에서처럼 노골적으로 돈을 밝히지 않는다. 휴머니즘을 이야기하고, 인류의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조그만 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사기를 저지른다. 

= 모든 것을 결과를 보고 평가한다. 과정을 묻지 않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직업이 갖는 도덕적 가치를 묻지 않는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용납된다. 그 뒤에 드러나는 부정도 그 힘으로 이길 수 있다. 얼마 전 삼성에 있던 변호사가 내부 비리를 고발했지만, 삼성이라는 결과 때문에 이건희 회장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 크리스천들도 신앙을 결과로 평가한다. 하버드대학에 입학하고, 변호사가 되고, 부자가 되면 교회에서도 성공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신앙의 모델로 삼는다.

= 교회에서도 간증하는 사람은 대개 세상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예수를 열심히 믿으면 저렇게 성공하게 된다. 성공한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신앙인이라는 등식이 은근히 세뇌되는 것이다. 

= 교회도 마찬가지다. 규모와 시스템이라는 결과를 보고 찬사를 보내지만 정작 내부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본질이 도구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전도를 위해 관계를 도구화하는 경우다. 또 일단 대형 교회니까, 수천 명이 모이니까 모든 것이 용납되고 합리화되는 것 현상도 왜곡된 성공 논리에 지배 받는 교회의 단면이다.

= 자신이 속한 조직이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잘못되었다면, 즉 몸담고 있는 구조가 불의할 때는 그만둘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면 부조리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수단을 찾아서 돕는 것도 방법이다. 내부 조직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일지 몰라도, 잘못되어 있는 구조를 회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배신자라고 할 수 없다. 

= 그런 말에 용기를 내서 내부 고발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례를 보면 양심선언을 한 사람은 직장을 잃고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 크리스천들이 그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무식하게 보이고 아둔해보일지 모르지만 정면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그렇게 구조적인 악에 대항하다가 피해를 당하는 사람을 교회가 인정하고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 신앙과 영화 세미나 일정
9월 17일 <물라데> '상호 존중과 섬김의 성 개념'
9월 24일 <이터널 션샤인> '인간관계의 기초로서의 공동 기억'
10월 1일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가족의 형성과 유지의 기초'
10월 8일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 '신자유주의 사회의 법칙'
10월 15일 <클릭> '노동과 쉼의 조화'
10월 22일 <오퍼나지-비밀의 계단> '소외자가 없는 사회'
10월 29일 <크로싱> '인간 생존의 권리'

시간 :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장소 : 남가주밀알선교단 사무실 (7212 Orangethorpe Ave. Buena Park, CA 90621)
연락처 : 949-981-7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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