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을 담은 경제 이야기(6)
예수님의 마음을 담은 경제 이야기(6)
  • 구교형
  • 승인 2008.09.2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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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자유무역의 신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미국과 영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실험은 초기에는 분명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특히 미국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감세의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아 천문학적인 만성적자에 시달리게 됐다. 사진은 '론스타펀드'  
 
Ⅰ. 우리는 지금, 왜 경제를 물어야 하는가?
Ⅱ. 경제의 기본 구조
Ⅲ. 성경을 통해 보는 경제 사상
Ⅳ. 신자유주의가 과연 지속가능한 대안 경제가 될 수 있을까?

1. 국제 자유무역의 신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모든 사상, 이념은 변화하고 발전한다. 좋은 이념과 사상이 시간이 흘러가면서도 그 당대의 상황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한 사회 발전의 촉매제가 되는 반면, 시대 발전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상황을 벗어나게 될 때는 오히려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수구적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사회와 지성을 감동시켰던 자유주의 열풍은 당시 자유와 해방, 사회 진보를 가져온 힘이었다. 중세 이후 계속된 사회적 신분 질서와 종교적 억압은 오랜 기간 유럽 사회와 백성들을 억압하고 질식시키는 족쇄였다. 자유주의는 당시 그러한 사회적, 종교적 귀족들로부터 사회를 해방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 혜택이 돌아가게 만든 진보적 사상이었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신의 섭리나 전통, 질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던 부당한 사회적, 종교적 억압을 거부하고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권리는 침해받지 않는 천부인권과 자유사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로 나타났다. 그러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거의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었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분명히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발전한 자유주의와 그 단짝 같은 자본주의 경제 제도는 많은 사람들을 봉건적 신분 질서, 종교적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기여를 했지만, 그 대부분의 열매는 결국 신흥자본가 계급(브루조아지)에게 돌아갔고, 그 폐해가 갈수록 심해짐에 따라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대안 체제로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실험은 70여년 만에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가 숱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생명력 있게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사회주의의 장점들을 채택해 수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자본주의 사회를 휩쓴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해 도입한 미국의 뉴딜 정책이나 유럽식 복지 국가 모델들은 모두 고전적 자본주의를 벗어버리고, 사회주의적 장점들을 흡수한 결과로 더 발전하게 된 자본주의의 열매라 할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집권한 레이건과 대처 보수 정권은 그러한 수정 자본주의적 성과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사회주의와 극단적 체제 경쟁을 선언하며 과격한 시장 근본주의를 주창하는데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국가 등에 의한 시장 개입 최소화, 사유재산 최대 존중, 공공부문을 포함한 사회 모든 분야의 민영화, 복지국가 개념 축소, 세금 감면을 통한 기업 부양, 전 세계적 무한 경쟁, 자본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이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다. 한 마디로 개인의 영리추구를 최대한 보장하며, 사회적, 국가적 제약을 최대한 없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하면 기업 경영이 활발해지고, 고용은 늘어나고, 투자와 소비가 촉진됨으로써 사회는 무한히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미국과 영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실험은 초기에는 분명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특히 미국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감세의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아 천문학적인 만성적자에 시달리게 되고, 그 부담은 강대국으로서의 힘을 바탕으로 다시 다른 나라들에게 안겨 털어내려 했다. 그 때 이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성장은 무한 경쟁과 시장 근본주의로 인한 빈부격차의 증가, 고용을 낳지 못하는 허망한 성장, 생산적 기업 투자보다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세계적 투기 자본의 횡행 등의 고질병을 낳았다. 이제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낳은 모순과 폐해는 결국 전 지구적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이전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크게 다른 것은 없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도 시장의 자유와 경쟁의 효율성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자본의 초국가적 성격과 전통적 상품 경제보다 금융 및 각종 서비스 산업의 가치를 훨씬 강조한다는 점이다.

우선, 신자유주의에서 자본은 훨씬 국제화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을 단지 다국적 자본, 다국적 기업이 늘었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자본, 어느 기업이라도 우리나라, 또는 우리 국민들에게 실질적 혜택만 주면 그만이지 국적 따위는 따질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국제화된 자본, 국제화된 기업은 얼핏 여러 면에서 더 이상 국적을 따지는 게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 모든 수익이 몰려 들어가는 곳은 결국 하나이며, 국적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의 국제화는 이제 자본이 국가적 한계를 넘어 어느 나라, 어느 시장에든 진출할 수 있게 날개를 달았다는 뜻이지, 국가적 성격이 약화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국제주의의 이름으로 자본과 기업의 강대국 이기주의가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전통적 상품 경제 시장보다 금융, 서비스, 지적 재산권 시장이 훨씬 강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각종 자원 및 상품의 유통이 국내 시장과 국제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금융, 각종 서비스, 지적 재산권 시장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무엇보다 전자의 현물 시장을 후자가 점점 지배해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 말은 이제 겨우 상품 시장을 따라가고 있는 제3세계 국가의 추격을 벗어나 선진 주도 국가의 폭주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국제 무역이 활성화 될수록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에이즈가 사하라 사막 아래쪽의 아프리카 지역의 가정, 공동체, 전체 나라 경제에 미친 끔찍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나라들은 부채의 이자 상환을 위해 미화로 평균 37억 달러를 지불하였는데, 이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해마다 새로 돈을 빌려 누적된 원금보다 더 많은 액수다.…남반구가 져야 하는 엄청난 금융 부담으로 북반구에 있는 나라들과 은행들은 더욱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는데, 그 액수는 무려 그들의 국내 총생산의 약 3%에 달한다."(경제 세계화와 아가페 운동, 세계교회협의회 편, 55쪽)

여전히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제 유가와 식량 가격 폭등은 국제 현물 시장과 식량 수출국의 공급 부족이라기보다는 국제 석유 시장과 곡물 시장을 지배하며 투기를 일삼는 국제 자본의 마수였다는 것은 이제 일반 상식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최근 5년 동안 국제 유가는 무려 5배나 폭등했다. 그런데 "미국 CFTC(선물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현재 가격상승의 약 70%가 투기와 관련 있다고 조사되었다.…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 압둘라 알 바드리는 2008년 6월, 투기 거래가 얼마나 과격하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를 하나 제시하였다. 세계에서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량은 8,700만 배럴인데 시장에서 거래되는 양은 무려 13억 6,000만 배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 수요의 15배가 넘는 양이 거래가 되고 있는 셈이다."(5년간 5배로 뛴 유가...원인은 실수요의 15배가 넘는 투기수요, 이상동 새사연 연구원)

"최근 세계 식량 가격 폭등으로 전 세계 21억 명이 고통 받는 가운데 카길(미국 농식품 업체-편집자 주)은 지난해 23억4천 만 달러의 순익을 냈다.…전 세계 곡물…투기 자본의 규모는 2000년 50억 달러에서 지난해 1750억 달러로 35배 증가했다.…식량 가격 폭등으로 재미를 보는 쪽은 식량과 농업 부문의 교역을 통제하는 다국적 농업 기업들과 원자재 카르텔…"(곡물시장 '투기 괴물' 21억 명 숨통 '쥐락펴락', 한겨레신문, 08년 6월30일 자)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국제 자유 무역의 신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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