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계여, '모터보트'에서 '범선'으로 갈아타라
선교계여, '모터보트'에서 '범선'으로 갈아타라
  • 정민영
  • 승인 2010.03.20 16: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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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선교 시대가 요구하는 성경적 파트너십

21세기 선교계가 직면한 가장 큰 현상은 서구 주도의 일방통행적 선교 시대가 끝나고 다중통행적 선교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교 운동이 더 이상 서구에서 비서구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혹은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진행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복음이 소개된 모든 곳으로부터 복음을 받지 못한 모든 곳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퍼져나가는 글로벌 선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과거 서구 교회가 선교를 주도하던 시대에는 기존 선교 운동에 편승하거나 서구 방식에 적응하면 됐지만, 글로벌 선교 시대는 새로운 선교 전략과 파트너십을 요청하고 있다. 과거의 서구 편향적 파트너십이 비효과적일 뿐 아니라 건강한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세계 선교계는 성경적 원리에 부합하면서도 효율을 극대화할 대안적 파트너십 모델의 모색에 부심하고 있다. 이글이 그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다.
 
먼저 파트너십에 대한 성경적 관점과 관행적 관점을 대비시켜보자. 성경적 파트너십(Kingdom partnership)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적 연합을 근거로 특정 과업을 하나 됨에 종속시키고 매사에 동역을 예외가 아닌 당위로 전제한다.

그러나 과업위주의 '관행적 파트너십(task partnership)'은 비즈니스 모델에 근거하여 하나 됨을 과업에 종속시킨다. 즉 결과가 최고 가치이고 파트너십은 편의 도구이다. 이는 개인과 타인(타 성도), 특정 집단과 타 집단(타 교회)이 분리된 관점에서 나오는 경쟁 구도와 맞물린 개념이다.

   
 
  ▲ 범선은 탁월한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일 수 없는 법이다.  
 
모터보트(powerboat) vs. 노 젓는 배(rowboat)

21세기 들어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의 중심축을 비서구로 옮기심으로 글로벌 선교 시대를 도래하게 하셨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세계 선교계는 여전히 구 패러다임의 관성에 젖어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형성된 구 패러다임은 한마디로 힘과 통제의 틀인데, 불확실성에서 예측 가능성으로, 취약성에서 안정성으로, 자연의 영향을 받는 데서 자연을 다스리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힘의 원천을 통제하고 길들이기 시작했고, 산업혁명이 낳은 관리 체제가 모든 과업의 일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구(또는 선진)세계는 사회와 물질계의 성공 원리를 영적 분야에 확대 적용하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데, 그 결과 하나님나라의 일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단선적 인과론 및 생산라인 기법과 도구를 적용하며 내적 힘과 통제에 근거한 조직구조를 지향하게 되면서 기계적 과정과 결과중심적 틀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풍부한 물질 자원은 이러한 틀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연료가 되었다. 풍부한 자원을 활용한 고비용 모델은 세계 선교의 쟁점을 결정하고 속도를 조정하며 구조와 전략을 정의하는 '모터보트'(powerboat) 패러다임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따라서 제한된 자원을 가진 비서구세계는 기존(모터보트) 틀에 순응하여 의존적이 되거나, 나름대로 저비용-소규모 모델(rowboat)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의존적 선교는 재생산을 저해하고 지속성을 차단하는 모델이다.

한편 노 젓는 배 모델은 산업혁명의 영향을 비켜간 대신 불규칙성과 비효율, 그리고 숙명론이나 자기합리화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단점이 있고, 전략이나 계획을 무시하거나 낮은 질을 용인하고 신비주의적 사고에 빠질 위험이 높은 모델이다.

또한 모터보트가 만드는 강력한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거나 전복하기 쉽고, 끝내 모터보트에 의해 인양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한마디로, 파트너십 협상 테이블에서 대단히 불리한 모델인 셈이다.

권성찬 선교사(성경번역선교회)는 노 젓는 배가 모터보트의 문제를 극복하기보다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모델이라 지적한다.

"노를 젓는 것 역시 힘의 크기만 다를 뿐 모터보트가 가졌던 문제들은 축소하여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노 젓는 배는 배 전체를 한 사람이 움직이는 개인 사역으로 변하여 (모터보트도 한 사람의 의존도가 높았지만 이는 어떤 조직에서 한 사람의 리더에게 힘을 몰렸다) 현장마다 개인의 사역 혹은 그 도를 넘을 경우 개인의 왕국을 세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고비용의 구조라는 표면적 문제를 저비용으로 바꾸었을 뿐 그 문제의 뿌리인 통제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저비용이면서 통제권이 내부 혹은 한 개인에게 남아 있는 모델에서는 그 결과물이 아주 미미할 뿐 아니라 동일한 시행착오를 많은 곳에서 여전히 하고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별로 훈련도 없이 개인의 판단에 따라 현장이 좌우되는 열악한 사역이 반복될 수 있다.

이 노 젓는 배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힘의 근원이 내부에 있다는 점이 모터보트와 닮아 있기 때문에 지향점이 결국 더 큰 내부 힘을 가지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노 젓는 배에 조그마한 모터를 달고자 노력하며 점점 모터보트로 변해간다는 사실이다. 미래가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서구 모델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경우 서구 모델의 단점을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비서구 모델은 불확실성에 대한 적응력이 높고 구조 및 체제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예를 들면, 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의 하이테크 전투기가 러시아의 로우테크 전투기보다 적응력이 떨어졌는데, 전자는 풀이나 자갈이나 파편이 없이 매끈하게 포장된 활주로에서만 이착륙이 가능한 반면 후자는 모든 상태의 활주로에 이착륙이 가능했다. 비서구 모델은 전략과 시간 계획이 취약한 반면,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높고 제한된 자원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크다.

성령의 바람을 따라서 – 범선 패러다임

   
 
  ▲ 범선은 다양한 사람들의 팀워크를 요구하지만, 모터보트는 항해사 마음이다.  
 
마크 갈리(Mark Galli)는 매사를 수평적으로 분석하는 시각의 문제를 지적한다. 종종 우리는 사람의 실패에 초점을 맞춘 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논의함으로써 수직적 차원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진보적 교회가 종교적 무늬를 띤 사회봉사 단체로 전락한 것이 그 대표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세계 평화는 인간적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자 약속인 샬롬을 받음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대외적 활동보다 교회의 믿음과 순종이 새로워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회와 선교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역을 수직적 활동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우리의 이름을 내는”(창 11:4) 수평적 활동인 경우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언급하지만 실제로 매사를 기적이 아닌 당연지사로 여기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 힘으로 우리 일을 우리 방식으로 해치우는 데 익숙하며, 모든 문제는 우리하기에 달렸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는 실제로 더 이상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다. 결국 현대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문제는 우리 자신인 셈인데, 현 상태로 더 많은 일을 더 열심히 하기보다 현대판 우상 숭배를 멈추는 게 급선무이다.
 
범선 패러다임은 수평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직적 관점에서 올바른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당면 문제를 수평적 차원으로만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을 무시하고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해결하려는 오류이다. 다소 역설적인 듯하지만, 수평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직적 접근을 해야 한다. 즉,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가 즉각적으로 취해야 할 대책이 무엇인지 모색하기 전에 그러한 상황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는 자세가 더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범선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전제 위에 세워진 틀이다.

• 하나님은 환경을 통제하는 유일한 분이시다.
• 하나님이 때와 기한을 결정하신다.
• 사역을 진행할 능력은 성령께서 주신다.
• 우리는 성령의 움직임과 인도를 기다린다.
• 우리는 결과보다 순종과 충성에 초점을 맞춘다.
• 우리는 성령의 바람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자질을 개발한다.
• 방법과 전략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범선 패러다임에서 힘의 원천은 내부(엔진과 연료)에 있지 않고 외부(바람)에 있다. 따라서 자체적 통제력을 갖지 않고 성령의 인도에 의존적이다. 범선은 모터보트 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다른 기술과 능력을 요구하는데, 바람의 세기와 방향, 파도의 크기와 유형, 기후 변화의 추이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윗 왕이 즉위할 때 각 지파가 수많은 용사들을 내었지만 유독 잇사갈 자손은 “시대를 읽는” 소수정예 지도자를 낸 것(대상 2:32)같이, 글로벌 선교시대를 여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선교 패러다임을 일궈내야 할 시대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을 감지하는 것은 주관적 신비주의와 구분돼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파악한다는 명목 하에 특정인의 주관적 생각을 하나님의 뜻인 양 주장하는 관행은 공동체 중심의 범선 패러다임과 상반될 뿐 아니라, 사람의 오류를 신의 뜻으로 덮어씌우는 회교적 발상(“인시알라”)이다. 주관적 느낌으로 바람의 방향을 결정하려는 것은 성령의 바람마저 내부 동력으로 바꾸어 마음대로 조작하려는 또 다른 의미의 모터보트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성령과 우리'가 공감하면서 주요 사안을 결정한 초대 교회의 성령 의존적, 해석공동체적 패러다임을 회복하고 실천적 모델을 개발하는 시도가 글로벌 선교 시대에 시급히 요청되는 과제라 하겠다.

'범선은 탁월한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일 수 없는 법'

유력한 사람(항해사)이 자기 마음대로 배를 끌고 가는 모터보트와 달리 범선은 다양한 사람들의 팀워크를 요구한다. 강한 사람이 전횡적으로 끌고 갈 수 없고, 약한 사람에게도 독특한 역할과 공헌의 기회가 주어진다. 앤드류 월즈(Andrew Walls)는 교회 역사상 괄목할만한 복음의 진보는 유력한 중심부가 아니라 연약한 주변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자주 언급한다. 모터보트 패러다임에 익숙한 사람의 눈에 범선은 굼뜨고 비효율적인 패러다임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속도와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성령의 인도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존하며 상호의존적 공동체를 형성하여 겸허하게 동역하게 되는 유익이 있는 것이다.

범선 패러다임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어차피 결과는 하나님께 있고, 우리의 책임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과정에 충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3:6).  따라서 비즈니스 세계에서 통용되는 '결과 중심 경영'(RBM)보다 '과정 중심 경영'(PBM)이 선교계에 요구되는 셈이다. 우리가 때와 기한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행 1:7-8), 우리는 건강한 선교공동체 및 관계 형성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앎의 확실성'에서 '믿음의 불확실성'으로

토드 폴터(Todd Poulter, Wycliffe International)는 최근 EMQ에 기고한 글에서 리전트대학(Regent College)의 릭 와츠(Rikk Watts)를 인용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앎의 확실성"(율법과 선지자를 해석하는 유대교 지도자와 율법사의 접근)으로부터 "신뢰와 믿음의 불확실성"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신다고 말한다. 후자는 예수님과 친밀하고 역동적인 관계(요한복음 15장)를 계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도록 요구하는데, 이는 규정을 손질하고 실천을 규범화하며 첨단 기술을 포함한 ‘성공적’ 선교전략을 강화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우선순위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존하고 사람의 능력의 한계와 계획의 불안정성을 인정하는 것은 믿음의 초보요 본질에 해당된다. 하나님의 선교(Mission Dei)를 우리가 확정할 수 있는 한계 안에 가두려 하기보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을 뛰어넘는 그분의 인도에 기대려는 것(잠 16:9)이 새로운 시도로 여겨지는 세태가 오히려 문제다. 서구도 비서구도 사람의 힘과 의지로 매사를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모터보트 패러다임에 너무 오래 젖어있었다.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성령의 바람을 따라 범선을 항해하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 결코 쉬운 해답은 없지만, 현안과 연관된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 실마리를 풀기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권성찬 선교사가 던진 아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질은 대화의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경험과 통찰력, 다양성, 그리고 진행방식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범선을 항해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제대로 감당할 준비된 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자 독특하고 창의적인 역할을 감당하면서 등거리 대화와 협력을 일궈낸다면 당면현안의 해답은 그리 먼 데 있는 게 아닐 것이다.

-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모터보트와 가까운가, 아니면 범선과 가까운가?
- 어떤 면에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운행하시는가?
- 당신은 어떤 패러다임에 속해서 일을 하고 있는가?
- 2·3세계 선교는 모두 범선 패러다임인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 서구 선교는 모두 모터보트 패러다임인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 모터보트 조직이 바람을 따르는 방식에 적응할 수 있는가? 아니면 범선으로 바꾸어야 하는가?

정민영 / 국제 위클리프 선임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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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boo 2010-09-23 23:40:08
선교에 관한 올바른 방향을 질문하고 답해 가는 과정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