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샤머니즘
우리 안의 샤머니즘
  • 남상곤
  • 승인 2011.04.25 12:0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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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잘다니는교회'(4) 예배와 굿판의 차이는?

세계 제일의 영적인 민족
 
우리나라는 영적인 민족입니다. 어떤 종교든지 우리나라를 거쳐 가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토속신앙인 샤머니즘도 그렇고, 불교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로는 대승불교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유교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로는 유교의 본산인 중국을 넘어 유교를 전승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남아있으며, 가장 늦게 들어온 기독교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부흥과 발전을 이룩해내어 현재는 가장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 중에 하나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즐비합니다. 어떤 종교든지 우리나라를 거치면 가장 최고가 되는 것을 보면, 우리민족은 참으로 영적인 민족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 입시 때만 되면
 
우리나라의 영성이 확인되는 순간은 주로 겨울철입니다. 해마다 대학 입시 때만 되면 교회나 절이나 특별한 행사가 벌어집니다. 입시 100일 기도회 같은 것이지요. 이때만큼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던지 거의 동일한 기도를 합니다. 집사님은 십자가 앞에서, 보살님은 불상 앞에서, 이도 저도 아닌 분들은 당산나무나 보름달을 바라보며 “우리 아들, 우리 딸, 대학 합격시켜주십시오.” 이 기도 외에 다른 기도가 있겠습니까? 대학입시 정원은 정해져 있기에 합격자의 수도 정해져 있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하나님보다 세면, 불상 앞에서 기도했던 부모들의 자녀들이 대학합격을 더 많이 할까요? 서울에 A 교회보다 부산의 B교회가 더 새벽기도를 많이 하면, 부산의 B 교회 자녀들이 더 많이 합격할까요? 서울의 대형교회인 C 교회에서는 서울대를 지원한 학생만 수 백 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 학생들의 부모들이 각각 기도하면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더 오래 기도하고 더 많이 헌금하면 들어주실까요?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많이 맞고 적게 틀린 학생이 합격하고, 적게 맞고 많이 틀린 학생이 떨어집니다. 기도가 모자라거나 헌금이 부족해서 떨어지고, 새벽기도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해서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명문대 합격한 것과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비빔밥과 샤머니즘
 
"우리나라의 문화를 유심히 살펴보면 종교적 문화가 혼합이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훈구 교수는 이를 두고 한국의 ‘비빔밥’이라고 비유했습니다. '한국 사상의 밑바닥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토속신앙(土俗信仰) 곧 무속 신앙(巫俗信仰)이 있다. 그 위에 천여 년에 걸친 불교 사상이 얹혀있고 또 그 위에는 오백 년의 유교사상이 얹혀있다. 그리고 지금은 기독교와 서구의 사상들이 표면을 덮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동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마저 곁들어 있어 한국은 동서고금의 모든 지혜가 갈무리 된 곳간과도 같다. 즉 비빔밥이다.'" (<한국 전통 종교와 한국 교회> 이훈구 저, 글로리아).
 
그런데 많은 종교학자들은 외래 종교가 우리나라로 들어올 때 마다 늘 이 토속 신앙인 샤머니즘이 새로 들어오는 종교에 의해 밀려났다기 보다는 샤머니즘과 혼합되어 융화되는 성격을 가진다고 지적합니다. 즉 불교도 한국에 들어와서 무속 신앙과 섞여 한국만의 고유의 불교가 되었고, 유교와 기독교 역시 각각 전승되었지만 무속 신앙을 개혁했다기 보다는 무속 신앙 안에서 자연스레 융화가 되어 독특한 한국의 유교, 한국의 기독교를 만들어 냈다고 보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이란?
 
샤머니즘(무속 신앙) 이란 쉽게 이야기해서 오직 샤먼(무당)만이 선과 악을 주관하며 영적 의식을 수행함을 믿는 샤먼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 체계입니다. 샤먼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로 신과 사람들 사이의 대리자의 역할을 합니다. 샤먼은 이상 심리나 공포의 상태로 분위기를 몰입시켜 초자연적 신령계와 접신하여 그 정보를 전달하고, 길흉을 점치고, 악령을 제거하고 귀신을 불러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의 초자연적 신령계는 인격체가 아닙니다. 샤먼을 통해 나타나는 그 초자연적 신령계는 주로 협박과 공포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샤먼은 그 신령계를 달래고 빌어서 신령계로부터 복을 받고 병을 치료받습니다. 거기에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현세의 물질적인 복을 강조합니다. 샤먼을 통해 물질을 바침으로써 초자연적인 신령계를 달래고 어르는 것이지요.

인격체가 아니기에… 필요할 때만 샤먼을 불러 물질을 바칩니다. 쉽게 말하면 알라딘의 램프의 지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뭐가 아쉽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지니를 불러 “금 나와라 뚝딱!”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는 기독교와 결정적인 차이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는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아울러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고 우리를 벌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래의 내용은 저의 생각이나 견해라기보다는 박노찬 씨의 <샤머니즘과 한국 기독교>의 내용을 제가 요약한 내용입니다.  되새겨 볼만한 내용이라 생각해서 나누어봅니다.
 
한국에서의 샤머니즘의 영향을 살펴보면 쉽게 단군신화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신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단군은 재정일치 즉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통합적인 샤먼 즉 무당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단군뿐만이 아니라 주몽신화, 박혁거세 신화 등, 초기 부족국가들의 신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제정일치의 사회의 지도자인 샤먼(무당)이 다스렸던 사회였습니다. 거기에 쉽게 들어본 적이 있는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는 어머님들의 이야기들은 모든 물체에 정령이 존재한다고 믿는 자연숭배 또는 정령숭배의 원시종교로 애니미즘을 포함합니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이렇게 무속 신앙을 토대로 발전되어온 나라이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과 문화 심지어 우리가 믿는 기독교 안에도 이러한 샤머니즘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목사를 샤먼으로, 예배를 굿판으로 빗대어 쉽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바른 말씀을 전하거나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목사보다는 어떤 영적이고 신적인 권위를 통해 복과 화를 주관하는 샤먼과 같은 역할을 하는 목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지나치게 영적 권위를 내세우며 성경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가감 없이 선포하고 그에 따르지 않을 경우 화가 있을 것을 경고합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기독교에서는 목사를 지나치게 신격화하여 대우하고 그것을 목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예배가 굿판과도 비슷하게 신학이나 회개가 없는 기복 신앙만을 강조합니다. 굿판에서 무당이 작두를 타고 초자연적인 영과 접신하는 것과 비슷하게 기독교에서는 예배를 통해 성도들은 참관자가 되어 샤먼인 목사가 집례 하는 공연으로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교회일수록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됩니다.

샤먼은 자신의 말을 따르면 복을 받고 자신을 뜻에 위배되면 화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예배 출석의 이유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마치 지난주에 우리 집에 불이 난 것이 지난주 교회를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헌금도 좀 더 많은 축복을 받기위해 내게 됩니다. 심방의 경우도 미국이나 유럽의 교회가 심방이라는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만 유달리 발달된 것이나 자동차를 새로 샀다고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는 등의 행동은 다른 기독교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기독교문화의 형태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예들이 기독교 안에 남아있는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 내려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샤머니즘으로 인한 피해는 신앙이 개인주의화 되고 삶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예배의 형식을 잘 갖추어 어떤 웅장함이 깃들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 예배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목사의 축복기도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 하나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축복 받고 죽은 후 천국가면 그만이다’라는 개인주의가 발달하게 되며, 결정적으로 복음을 듣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전혀 변화되지 않게 됩니다. 예배가 끝나면 내면의 변화 없이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굿판에서 굿이 끝나고 돌아가는 구경꾼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 안의 샤머니즘
 
헌금이 부족하고, 봉사가 부족하고, 새벽 기도에 나오지 않고, 기도가 부족하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망하시거나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 신령계도 램프 안의 지니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시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이 나의 생각과 뜻을 너무나 잘 이해하시듯이,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잘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몰아가시거나 협박하지 않으십니다. 탕자에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좀 못나도 괜찮습니다. 재주가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양아들을 삼아주셨고, 후사로 삼아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자기 아들을 못 박히시게 하면서까지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주시고 사랑합니다. 거기에 어떠한 조건도 없습니다.

그저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릅니다. 한국 교회 안에 뿌리 깊이 남아있는 샤머니즘의 전통은 이것을 위협합니다. 복을 받기위해 자꾸 무엇을 더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헌금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새벽 기도에 나와 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몸이 부서지도록 봉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것, 바로 이것이 복입니다. 복을 달라는 기도는 우리 기독교에서는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범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푸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9절)
 
복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될 때,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성숙한 신앙으로 이어지고, 비로소 우리는 내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 이웃과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제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게 아닙니다. 같이 잘 다니는 교회, 더불어 잘 사는 세상에 대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이제는 내가 예수님을 따라 지고 가야 할 십자가, 고난을 받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쫓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가복음 9장 12절)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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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한국 교회 안에 뿌리 깊은 샤머니즘은 누구를 탓 할 필요가 없는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한국 교회의 문제입니다. 물론 샤머니즘의 영향이 2백년의 한국 기독교 역사에 흘러온 것을 두고 어떻게 칼로 물을 베어내듯 그것을 잘라내어 척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것을 쉽게 분리할 수도, 또 분리해서 쉽게 없앨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샤머니즘으로 인한 문제는 결국 우리가 말씀 위에 올바로 섰을 때 하나씩 자연스럽게 껍질이 벗겨지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을 제대로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덮어놓고 믿지 말고, 열어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생각하고 묵상해서 하나님은 누구시며,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시며,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또 그래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소그룹으로 모여 말씀을 보고 나누고 말씀 앞에 자신의 삶이 드러나는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겪어야 합니다. 말씀이 검이 되어 우리가 그 말씀 앞에 꿰뚫어지고 갈라질 때, 우리는 복음이 아닌 것은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 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또 한편으로는 비록 그 전통이 샤머니즘이라고 할지라도 한국 교회의 좋은 전통으로 남아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샤머니즘의 내용을 잘 분별해서 수용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새벽 기도와 심방과 같은 전통은 이제 한국 기독교 문화의 커다란 줄기와도 같은 부분입니다.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내려 왔다라기 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의 새로운 면을 한국식으로 수용해서 그 내용을 더 풍성히 했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새벽에 정한수를 떠놓고 자손들의 복을 비는 것은 비록 가장 대표적인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의 전형이지만,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이러한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 샤머니즘을 기독교적으로 바꾸어보고자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던 것을 고려하여 한국 교회만의 특징인 새벽 기도가 탄생되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한국적인 기독교의 문화를 만들어낸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무당을 부르는 것이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이것도 역시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보고자 교회에서는 대심방 등의 이름으로 목사가 성도들의 집을 찾아가 목사가 목자와 아비의 마음으로 성도들의 삶을 먼저 찾아가 기도하고 위로하게 되는 아름다운 한국 교회의 한 전통이 되었습니다.
 
물론 새벽 기도나 심방이 샤머니즘의 뿌리가 아니라 기독교 고유의 전통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한인 교회에서는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아 그 본질과 형식이 많이 뒤틀려진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새벽 기도에 출석하여 복을 달라고만 기도하고 새벽 기도에 참석했으니 나의 믿음을 보였다고 생각하거나, 새벽 기도의 출석여부로 성도의 신앙을 평가하는 일들, 성도들의 집을 골고루 심방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해야 할 목회자가 특정 성도의 집에만 지나친 심방으로 지나친 물질적인 요구를 암암리에 요구하는 것들은 샤머니즘에 영향을 받은 새벽기도와 심방의 폐해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나 교회의 리더인 목사가 성도의 가정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다만 이것이 샤머니즘에 영향을 받아 그 본래의 아름다운 뜻을 잃어버리고 변형되고 뒤틀려진 모습은 아닌지 유의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남상곤 씨는?

'함께잘다니는교회' 시리즈는 남상곤 님이 한때 몸담았던 지역 교회에서 연재했던 평범한 신앙 일기다. 목회자의 자녀이기도 한 그의 교회 사랑은 각별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교회의 '바깥 사람'이 아닌 '안 사람'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개독교'라 불려도 교회만이 세상을 바꾸는 희망임을 늘 믿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 글들로 결국 교회를 떠나야 했단다. 교회 안의 평범한 성도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쓴 글이지만 태클도 환영합니다.

참고 문헌 

<샤머니즘과 한국 기독교> 박노찬 (http://1tim612.net/others/shamanism.htm )
<한국 전통 종교와 한국 교회> 이훈구 저,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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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1-05-05 03:58:18
하지만, 큰 일들을 만날 때 이 모든 것들이 기도 또는 믿음과는 상관없다는 결론을 수능날 교문과 각 회당에 모여 기도하는 운파를 보고 내리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습니다.

애독자 2011-05-04 23:44:51
샤머니즘이 인격신과 무관하다는 주장은 좀 생소하네요.무당들이 모시는 신들이 각각 이름도 있고, 그 형상을 나타낸 그림이나 예술품들도 남아있는데...

세계를 알자 2011-04-30 10:30:13
secular화 되어가는 한국과 기독교...바로 기자가 보는 샤마니즘입니다. 본인이 얼마나 외국을 알고 실재 외국기독교와 문화를 알기에 한국에만 있는 풍습이라고 하는지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저는 외국에서 외국인을 놓고 사역하는 사람입니다. 미국과 다른 대륙도 한국못지 않게 만만치 않습니다. 미신보다는 인간속에 잠제되어있는 영적의 관심을 바로 세계인이 갖는 공통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