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기대(期待)
하나님에 대한 기대(期待)
  • 허경조
  • 승인 2014.10.2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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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기대(期待)

   
▲ 허경조 ⓒ  <뉴스 M>

위키백과에 보면 기대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 기대(期待)는 어떠한 일이 있기를 바라거나, 어떠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 감정이다. 기대가 깨지면 실망에 빠지게 된다."

이민자로서 우리 모두는 각자 삶의 현장에서 흘러가버린 시간 만큼이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고 ,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에 억눌린 스트레스로 인해 얼굴이 굳어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그 굳어진 얼굴만큼이나 굳어진 마음으로 인해 좋은 친구를 한사람 사귀기 힘들다고 흔히 말한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조국을 등지고 이곳 미주에 둥지를 툰직후로 부터 이미 언어와 생활 관습의 차이로 인해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고 육체적인 단순 노동에 시달린 몸과 마음으로 이미 마음의 여유를 상실하게 된다. 그로인해 이해하기 보다 이해받기를 원하고 사랑과 관심을 주기보다는 사랑과 관심을 받기 원하는 상태가 되버려 상대에 대한 기대가 앞서고 , 그 기대가 깨질때 실망과 불평으로 이어지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교회내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며 그로인해 성도간의 만남과 교제에서 이런 기대가 선행될때 , 그리고 그 기대가 깨어질때마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불평이 그리고 더욱 편협해진 마음과 더욱 두텁고 높아지는 마음의 벽을 느끼게 된다.

성도간의 기대외에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이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가 깨졌다고 느낄때에 생기는 실망의 영향이 우리의 믿음의 근간을 흔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말씀이 있으니

"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 마 19;27 ) "

병고침 , 사업 성공 , 자식의 일류대 합격 , 명예(장로 권사되기) ,배우자에 대한 문제 등등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행동으로 나타나 새벽기도, 일천번제, 십일조,모든 예배 참석 , 모든 교회 봉사 , 그외 상당한 교회일에 열심을 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열심후에 우리의 기대가 깨지는 경우이다.

내가 교회일에 열일을 제치고 우선이었는데(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병이 안났고 , 사업이 실패하고 ,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불합격이 되고 , 장로 권사 투표에 안되고 , 배우자가 계속 문제를 일으킬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

상기의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을 들어보자.

"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마 19;30 ) "

세상적인 방법은 먼저 된 자가 먼저 되야하며 그럴때 합리적이고 질서가 잡히게 된다. 흔히 말하는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질때 그래서 나중 된자가 먼저 진급이 된다면 그 조직은 이미 질서가 흔들리게 된다.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이답(30절)은 세상적인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하나님의 방법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비유를 나타내시니 마태복음 20장이 그것이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아는 이 비유를 다시 한번 들여다 보자.

1절 ,2절 ;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3절,4절 ;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히 주리라하니

5절 ;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절 ,7절 ; 제 십일시에도 나가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이들이 포도원에 들어간 시간과 대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19장 30절의 대답이 저절로 이해가 되니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들어간 품군들은 한데나리온의 하루 품삯을 주인과 약속한바 데나리온은 무게가 3.8g인 로마의 동전으로서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 삼시에 들어간 자들과 육시와 구시에 들어간 자들은 한 데나리온이라는 정확한 액수 대신에 상당히 주리라라는 약속을 하였다. 십일시에 들어간 자들에게는 아예 품삯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품삯을 지급하는 순서였으니

"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푼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8-10절)"

세상적인 계산 방법에 익숙한 먼저 온자들은 당연히 주인을 원망하며 불평하게 되나 이때의 집주인의 대답을 가슴에 안자.

"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것을 가지고 내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3,15절)"

뉴욕시의 플러싱 노던블루바드에 보면 유니온 스트릿을 기점으로 이제는 베이사이드 근방까지 아침 일찍부터 스페니쉬 일용 노동자들의 모습을 도로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간혹 이들의 근방에 차를 접근할 시에는 적게는 두,세명이 많게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하루 노동의 기회를 잡으려고 저마다 아우성이다. 간혹 가다 오후에 이 근방을 지나노라면 늦게까지도 도로변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기대에찬 눈동자를 마주 보게 되며 그럴때마다 그들의 기대에 아련한 아픔을 느낀다.

누군가 그들에게 일자리를 줄때 아침 일찍 선택된 사람과 오후 늦게 선택된 사람과의 일자리에 대한 기쁨은 그 정도가 분명 다를것이다.

몇십년 신앙생활을 해 온 분들( 아침 일찍 선택된 품꾼) 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 있으니 하나님(포도원 주인)과의 관계를 한 데나리온의 약속(계약)으로 마음속으로 은연중 기대하는 모습이며 또한 많은 경우 목회자들이 설교나 목회를 통해 이런 마음을 먹도록 영향을 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번영신학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설교나 주보에 게재된 십일조, 감사헌금 명단을 통해 , 사순절 새벽기도 출석부를 벽에 부착하여 출석자들의 마음을 북돋우어 한 데나리온의 품삯 -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_을 계속 고집하게 만드는 그것이다.

그러한 마음 - 하나님과의 관계가 한 데나리온의 계약을 상기시키는 마음_ 으로 신앙 생활을 할 경우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는만큼 , 오래 믿음 생활을 한 만큼 우리의 마음은 집 주인(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고 얼굴에 기쁨이 사라지고 굳은 얼굴을 하기가 대부분이다.

교회에서 성도들의 열심과 충성 봉사를 유도하기 위해 이런 목회를 목회자들이 계속 할 경우 저들의 실망과 불평이 심화될 것이며 그래서 신천지, 구원파를 비롯 신사도파의 그럴듯한 구호에 쉽게 넘어감을 볼 수 있다. 단언컨대 이런 목회 모습이 지속되는한 , 한국과 미국의 집값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우리의 은행 잔고가 비어지고 우리의 마음이 약해질수록 기성 교회에서 이들 신사도파를 비롯한 이단으로의 교인들의 이동은 심화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함이란 무엇인가 ?

하나님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

우리의 마음이 아침 일찍 선택된 품꾼의 한 데나리온 이라는 계약의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제십일시에 선택된 품꾼으로서 포도원에 들여 보내준 것만으로도 감격과 기쁨으로 신앙 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조건부적인 계약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은혜의 관계로 살아 가며 그래서 더블딮이 아니라 트리플딮의 불경기에서도 하늘의 평강을 잃지않고 살아갈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 믿음 변치않고 오늘도 한발자국 한발자국 천성을 향해 가기를 원한다.

"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 "

허경조 장로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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