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주 '이민단속법'에 미국 사회 '부글부글'
애리조나 주 '이민단속법'에 미국 사회 '부글부글'
  • 함현일
  • 승인 2010.05.24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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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겉으론 전국적인 반대 물결…속으론 상당수 찬성

애리조나에서 미국 사회를 겨냥한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반이민법 통과로 시작된 이번 태풍의 강도는 허리케인과 맞먹는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뿌리가 약한 히스패닉 계와 아시안 계의 불안감이 크다. 자칫 이번 태풍으로 미국 내 기반 자체를 잃을까하는 우려다. 시민권이나 합법 이민자는 문제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신분증 검사를 요구받는다면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이민단속법으로 꼽히는 애리조나 ‘SB 1070’의 내용과 한인 사회 반응 등을 살펴본다. 

▲ 의료보험 개혁으로 둘로 나뉘었던 미국이 이번 법안으로 다시 한 번 둘로 쪼개졌다.
주경찰 불시 검문…신분증 제시 못하면 체포

20년 전이다. 당시 애리조나 주 주지사였던 에반 메칸이 마틴 루터 킹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거부했다. 미국 전역에서 돌이 날아왔다. 미국 50개 주에서 킹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키지 않는 주는 애리조나와 뉴햄프셔뿐이었다. 당시 애리조나로 예정돼 있던 슈퍼볼 개최 장소가 캘리포니아로 바뀔 정도로 돌 세례의 상처는 깊었다. 결국 2년 뒤 애리조나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20년 전의 상처를 금세 잊었을까. 다시 한 번 애리조나에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고 있다. 바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이민단속법을 통과시킨 탓이다. 이민 사회의 한켠을 차지하는 한인사회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자칫 이민단속법의 불똥이 한인들 앞마당으로 튀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처럼 애리조나의 승복으로 이번 사건이 종결될 수 있을까. 혹여 다른 주로 확산돼 이민 사회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전 세계가 애리조나를 주목하고 있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주범은 'SB 1070'(Arizona Senate Bill 1070)이다. 지난달 23일 공화당원인 애리조나 주 잰 브루어 주지사가 이 법에 사인하면서 오는 7월 28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됐다. 내용은 간단하다. 연방정부 밖에 손을 못 쓰던 불법 체류자 검거에 주정부가 발 벗고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 경찰에게 불법 체류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불시 검문할 수 있게 했다. 유효한 신분증을 제시하지 못하면 바로 체포된다. 미국 언론에서 떠들듯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이민단속법이다. 

법안 내용…“주경찰 상시 단속권 부여”

애리조나의 새 이민법은 주 경찰이 언제든지 불법 이민자를 검문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신분증을 제출하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체포된다. 처음 단속에 걸린 불법 이민자는 100불의 벌금과 재판 비용을 내야 한다. 또 20일간 철창 신세를 져야 한다. 연속해서 체포된 사람은 30일간 구금된다. 이민자들은 4가지 유형의 신분증 중 하나를 경찰에게 제시해야 한다. 유효한 신분증은 애리조나 주 운전면허증, 애리조나 주 신분증, 부족 등록 카드나 신분증, 연방이나 주, 혹은 다른 지방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 등이다.

불체자를 고용하는 것도 범죄로 규정했다. 또 거주지나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했다. 불법 이민을 부추기는 밀입국 브로커들을 잠재우기 위한 규정이다. 위반자에게는 불법 체류자 한 명당 적어도 1,000불 이상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런 내용은 법안 원안보다 다소 약화된 것이다. 애리조나 주가 이번 법안에 대한 전국적인 반대에 부딪쳐 논란이 되는 내용을 약간 수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30일 브루어 주지사는 이 같은 내용의 수정안이 담긴 '하우스 빌 2162'에 서명했다. 이 법에 따르면 검사는 인종이나 얼굴색, 민족에 기반한 조사를 할 수 없다. 또 경찰은 ‘법적인 제지, 구류, 체포’에 의해서만 이민 상태를 조사할 수 있다. 벌금도 최소 500불에서 최대 100불로 낮추고 감금 기간도 6개월에서 20일로 낮췄다.

▲ 이민단속법의 핵심은 연방정부 밖에 손을 못 쓰던 불법 체류자 검거에 주정부가 발 벗고 나서겠다는 것이다.
전국적인 반대 물결…애리조나 경제 보이콧 선언 잇따라

의료보험 개혁으로 둘로 나뉘었던 미국이 이번 법안으로 다시 한 번 둘로 쪼개졌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큰 반면, 찬성하는 쪽은 반발을 우려해 미지근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몇 몇 주와 도시들은 벌써 애리조나 주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다.

지난달 29일 이민자들이 많은 LA시는 애리조나 주에 대한 경제 보이콧을 선언했다.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장인 다렐 스타인버그는 주지사에게 애리조나와의 사업관계 단절을 요구했다.

샌프란시스코도 애리조나 주 기업과의 사업 관계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콜로라도 덴버교육구는 업무와 관련해 애리조나 여행을 금지했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는 위헌 소송 제기도 검토되고 있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애리조나 주의 이민단속법이 남용 또는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며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제소 가능성도 그중 하나”라고 밝혔다.

민간 단체들의 반발 움직임도 거세다. 미국이민변호사협회는 잰 브루어 주지사가 이민단속법에 서명하자마자 올 가을 애리조나에서 예정된 회의를 취소했다. 전미가톨릭주교회(USCCB)도 “이 법이 이민 사회를 유리시키는 결과를 낳아 애리조나 주뿐만 아니라 미 전역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5월 1일에는 전국 70여 개 도시에서 애리조나 이민단속법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LA에서만 경찰 추산 5만여 명이 모였다. 달라스에서도 2만여 명이 모여 애리조나 이민법에 반대하는 행진을 펼쳤다.

오바마 정부도 주정부 법안을 거세게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리조나의 이민 관련법은 치안에 중요한 경찰과 공동체간의 신뢰는 물론 미국 국민으로서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공정성에 대한 기본 인식을 침해하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인 속내는 찬성

하지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반응과 미국인들의 속내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이번 법안에 찬성하는 의견이 우세하게 나오고 있다. 최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가 미국 성인 1,01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애리조나 이민법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의 51%가 이 법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반대는 39%였다.

‘앵거스 글로벌 모니터’의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도 71%가 찬성의 뜻을 밝혔다. ‘조그비 인터랙티브’의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 중 79%가 “불법 체류자가 미국 시민과 같은 권리 및 기본적 자유를 누리는 데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달라스 거주 한 이민 2세 청년도 “우리가 낸 세금으로 불법 체류자까지 혜택을 받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심정적으로 애리조나 이민법에 찬성한다는 뜻을 비쳤다.

하지만 반대나 찬성 모두 동의하는 내용이 하나 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이 연방정부 측에 있다는 것이다. 연방정부의 미지근한 이민 정책이 이번 화를 불러일으킨 주범이라는 의견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연방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주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을 야기할 수 있다. 애리조나의 최근 움직임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애리조나를 비판하면서도 연방정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의 이민법 개혁 작업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 애리조나 주 반이민법 통과로 전국적인 반대 물결이 일었고, 애리조나 주에 대한 보이콧 선언 잇따르고 있다.
반이민법 확산 움직임…텍사스도 동참

더 큰 문제는 텍사스를 포함한 다른 주로 이 법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애리조나와 같이 멕시코와 국경이 접해있는 텍사스의 경우 법안 제정 가능성이 더 크다. 또 애리조나 불법 체류자가 텍사스로 몰려 일반 텍사스 시민들의 여론이 찬성으로 돌아서면 강경 이민단속법 추진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벌써 오는 1월 회기에 애리조나와 비슷한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공화당 의원들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 데비 리들 하원의원은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1월 애리조나 이민법 같은 강력한 이민단속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연방 정부가 이민 단속을 제대로 했으면 애리조나 주가 그런 법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며 “텍사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유타 주의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스티븐 샌드스트롬도 솔트레이크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유타 주는 불법 체류자에게 운전면허증 취득을 허용하고 대학진학 시 주거주자 학비 혜택을 줘 마치 불체자를 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유타 주도 애리조나와 같은 입법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애리조나 이민법이 발효되면 애리조나로부터 불법체류자들이 대거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며 “예방적 차원에서도 이 같은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인 사회 반응…“인권 침해 요소 너무 크다”

달라스 지역 한인들의 관심도 뜨겁다. 대체적으로 인권 침해 요소가 너무 커 폐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달라스한인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오승용 씨는 “앞으로 애리조나 이민자들이 겪을 불시검문을 한국 사람들은 앞서 70~80년대에 겪었다. 미국이 시대를 거슬러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주 경찰의 조사가 멕시칸이나 아시아인에게 집중될 텐데 이는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얼빙에서 자동차정비점을 운영하는 정태조 씨는 “기본적으로 범법자가 아닌 사람을 무작위로 조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번 법안이 애리조나 주 내 소수 민족과 유색인종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라스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김종태 씨도 “언제든지 신분증을 조사해 구류할 수 있다는 것은 인권침해 요소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북텍사스 한인회 안영호 회장은 “불법 체류자 관리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만약 텍사스가 비슷한 법을 들고 나온다면 한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살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찬성은 아니지만 애리조나 주의 입장이 이해간다는 의견도 있다.

김원영 변호사는 “이번 법이 나온 배경에는 오랜 기간 불법 이민자들로 인해 고생해 온 애리조나 주의 특수성이 있다. 애리조나는 멕시코 국경에 접해 있어 불법 체류자 범죄에 쉽게 노출돼 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럽 등의 나라들도 경찰에게 이런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마냥 돌멩이를 던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위헌 소지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범죄자로 취급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구속하려면 현행범이거나 구속영장이 있어야 하는데, 신분증이 없다고 구속하는 것은 위헌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함현일 / <코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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