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윤과 하용조, 누가 진정 '한국의 칼빈'인가
이종윤과 하용조, 누가 진정 '한국의 칼빈'인가
  • 황규학
  • 승인 2011.09.11 09:3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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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설교가 연구, 평가 기준 모호하고 윤리성 분석 결여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이 주최한 대형교회 목사들의 평가는 10년 동안 꾸준히 해온 행사로, 참여자들이 각 분야의 전문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기준이나 목회자들의 윤리와 삶을 고려치 않고 설교만 평가한 것으로, 과연 정상적인 평가인지 의문이다. 교수들은 대형교회의 목회자와 참석한 교인들 및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칭찬 일변도로 평가할 뿐, 평가하는 기준과 대상이 일관성이 없었으며, 신학적 기준이 모호했다. 교수로서의 예리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평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찬양 일색이었으며, 그러다 보니 그들을 ‘신의 설교’를 한 장본인으로 만든 것이다. 몇가지 문제를 지적해 보자.

교수마다 한국판 칼빈의 후예가 불일치

그것은 서중석 교수와 강사문 교수의 평가에서 잘 나타난다. 서중석 교수는 이종윤 목사를 한국판 칼빈으로 본 반면, 강사문 교수는 하용조 목사를 한국판 칼빈으로 보았다. 서 교수는 지난 번 이종윤 목사에 대해 한국판 칼빈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칼빈이 예언자이듯이 이종윤 목사도 한국의 예언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칼빈이 설교로써 감당한 일을 오늘날 이종윤 목사가 이루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에 의하면, 이종윤 목사는 한국의 종교개혁자이며 예언자였던 것이다. 그 이외에 서 교수는 "그의 설교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칼빈의 설교관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사문 교수는 서 교수와 달리, 이종윤 목사보다 하용조 목사를 한국의 칼빈으로 보았다. 강 교수는 하용조 목사를 칼빈과 동격시하고 있다. 강사문 교수는 하 목사와 칼빈의 공통점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두 사람이 모두 병에 시달렸다는 것이고, 두 번째 공통점은 설교가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공통점은 칼빈과 하 목사가 설교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 공통점으로 칼빈과 하 목사의 설교가 주석적 강해이며 통전적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칼빈과 하 목사는 사회·정치 경제 및 문화 구조의 변화로 하나님나라 구현을 목표로 설교·목회·전도하는 점을 들었다. 칼빈이 제네바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되고 다스림을 받는 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듯, 하 목사도 온 누리가 다 하나님 말씀대로 변화되어 하나님나라가 될 것을 희구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고로 서중석 교수는 이종윤 목사가 칼빈에 가깝고, 강사문 교수는 하용조 목사가 칼빈에 더 가까운 것이다. 두교수 간에도 일치 되지 않아 서로 지지하는 목사가 칼빈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위의 두 신학 교수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칼빈은 개혁을 추구하다 제네바시를 떠나게 되었지만 이종윤 목사는 정치적으로 교회와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며,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신학으로 온 세상을 덮었지만, 하용조 목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 하에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는 스크린 예배로 온 세상을 정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교수마다 신학적 일관성이 없다

특히 하 목사에게 있어서 신학적 부재가 타교단 교수에 의해 지적되었다. 한영태 교수에 의하면, "하 목사의 신학은 자신이 속한 장로교단의 정체성을 잃은 타교단의 신학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 목사는 선택이라는 말을 사용해 장로교의 예정 개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하 목사의 신학의 부재인 것이다.

이어서 한 교수는 "하 목사의 성화관이 장로교회와 성결교회의 성화관이 혼합되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하고, 성령세례를 성결로 보는 점에서는 성결교회와 비슷하다"고 말하며, 예정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신 선택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여 하 목사의 신학에 장로교회의 엄격한 전통적 예정론이 희미하다고 보고 있다.

강사문 교수는 "하용조 목사의 설교를 복음적이고, 기독론적이고, 현실적이면서 사명감을 고취시키며 상호 본문적 성경 이해이며, 삼위일체적이고, 감동적이고 설득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하용조 목사는 칼빈에 비견할 만한 설교가"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에 비견할 만한 설교가라면 예정론을 중시하는 설교가일 텐데, 한 목사는 하 목사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보는 시각이 다른 만큼 신학적 일관성이 없고 모호한 것이다. 이렇게 신학적 부재인 목회자에 대해 민경배 박사는 '최고의 설교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하 목사는 소박한 언어와 부드러운 밀착 접근으로 다가서고 계셔서 그 호소 지수가 압도적인, 한국교회 설교와 목회의 기축(機軸)이다"고 거침없이 표현한다.

윤리적 기준이 없다

우선 설교라는 것은 입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자의 윤리성과 인격, 도덕성이 반영되어야 한다. 조용기 목사는 정년 연장 문제, 김선도, 곽선희 목사는 세습 문제, 이종윤 목사는 정치적 문제로 인한 교회와 교단 탈퇴, 하용조 목사는 최근 한독연과 통합측의 양 교단 다리 걸치기와 비전교회라는 명목으로 '온 세상 스크린 교회 세우기'로 인해 윤리성에 문제가 되고 있다.

칼빈이 컨시스토리를 조직한 것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윤리와 도덕적 문제로 인한 권징 문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종윤 목사와 하용조 목사를 칼빈에 비견하고 한국의 예언자라고 선포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예언자들은 암울한 시대에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다. 과연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시절에 칼빈처럼 개혁신학의 정신을 갖고 개혁을 외친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이 목사는 할렐루야교회를 시작으로 충현교회의 분쟁의 당사자였고, 특별한 명분 없이 교단을 옮겨 서울장로교회로 오기까지 대교회만 목회하는, 즉 양지만 찾는 목회자가 아니었던가?

그들이 암울한 시절에, 한국사회와 교단이 바뀔 만큼 칼빈과 루터처럼 개혁을 했단 말인가? 개혁자이며 예언자라고 하는 것은 개혁신학과 개혁신앙에 입각한 개혁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과 루터처럼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혁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설교는 입이 아니라 삶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수들이 일방적으로 칭찬과 찬양만 하다 보니 신학적 기준과 일관성, 논리성, 윤리성을 간과한 것이다. 평가를 해서 예리하게 지적해야 할 논리적인 상황에서 칭찬 일변도로 흐르는 감정적인 상황으로 대처하고, 서로 기준과 일관성이 없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특정인을 칼빈과 동일시하고, 신학적 기준의 상실로 교수마다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여 목회자의 신학성이 결여된 모습이 나타났고, 목회자의 삶과 윤리적 기준의 증발로 절름발이 평가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서울의 대형교회 목사만을 상대로 평가함으로 인해 물량주의나 숫자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애써 꿰맞추다 보니 성서 전통에서 벗어난 꼴이 되고 말았다. 성서가 주장하는 예언자상은 개혁을 외치다 핍박받고 버림받으며, 순교하고, 도시의 대교회 출신이 아니라 아모스처럼 뽕나무 치다가 예언자로 부름 받은 변두리의 목회자인 것이다.

하용조 목사만이 가장 훌륭한 평가자인 셈

"나는 △예언자적 선포가 부족하고 △약자를 위한 설교가 빈약하며 △화해를 이루는 설교가 필요합니다. 대중을 위한 설교를 했는데, 약자와 소자, 농촌 목회자를 생각하면서 설교해야 합니다. 세계가 분쟁 중입니다. 설교자의 얼굴에는 화해자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있어야 하며, 승리의 선포 뒤에 고뇌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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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2011-09-19 12:09:20
도대체 이 기사에서 말하려는게 뭔가?

학자라는 이름도 아까운 한국의 근본주의 신학자들이 떠든 말 장난 같은 소리 가지고 뭐를 배우라고 이런 기사를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설교 많이 하면 칼빈이라고? 성경대로 설교하면 칼빈이라고?

그래서 하용조가 칼빈이라고?

고인의 무덤에 흙이 아직 마르지 않았으니 심한 말은 지금은 할 때가 아닌 것 같고 칼빈에 대해서 그 무지함과 그가 휘두른 종교적 폭력성에 대하여 글을 쓰자면 학위 논문이 여러 개가 나오고도 남을 터인즉 긴 이야기는 말고 한가지만 말하자.

루터는 야고보서를 쓰레기 서신이라고 말하면서 뱍난로에 던져 불사르라고 했다.

그리고 칼빈은 계시록을 엉망진창으로 해석하다가 초반부 이후에 상징적 문장이 나타나기 시작하니까 주해를 멈추고는 계시록을 신약에서 빼버리려고 했다.

자기가 만든 교리에 반한다고 자신의 친구를 사형을 구형하고 어린 자녀에게 세례를 거부한다고 하는 아이의 엄마에게 상상도 못할 형벌을 가했다.

루터는 신앙을 위해서는 이성의 눈알을 빼어버리라고 했다.

칼빈은 예정론을 말하며 자신의 선택을 은혜로 돌리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신을 유기자이자 무책임하고 포악한 존재로 만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맹인 중의 맹인이 바로 칼빈이다.

장로교? 웃기지 마라.

예수가 이런 식의 종교적 편 가르기를 좋아할 것 같으냐?

칼빈이든 알미니안이든 지들 생각 가지고 예수의 복음을 산산조각낸 자들이고 이들이야말로 이단이고 사이비다.

한국의 자칭 신학자님들,

공부 좀 제대로 하시지요. 교수라고 박사라고 명함에는 쓰여있겠지만 박사라고 그리고 교수라고 모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한국의 신학이라는 것이 어떤 수준인지는 유럽과 미 동부의 신학교 교수들의 강의만 들어보면 쉽게 드러난다구요.

예언자 2011-09-19 10:48:30
칼빈도 예언자 이었다면 어떻게 되나요?
미동부 이대위 위원장이신 이 종명 박사님
설명좀 해 주시지요!
이단 전문가들 주장으로는 성경이 완성된후 예언과 계시가 끊겼다고들 주장 하시던데,,,
칼빈이 예언자 이었다면 감병사들 이론으로 볼때 병아리가 아니고
오리라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이단의 이론인 칼빈이즘을 따르는
장로교는 전부 이단 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군요/
이대위 위원장이신 이 종명 박사님의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칼빈 왈***
이단이면 한 도시 전부를 쓰러도 된다는 명언.
그를 추종하는 장로교단의 이단 감별사들의 하는 행태를 보면
정신적 학살을 자행하는 현대판 칼빈들 입니다.

Man 2011-09-19 08:53:31
하하하,

칼빈이라.....

칼빈 닮았다고 하면 칭찬이라고 생각하니까 누가 칼빈을 더 닮았나 비교하나 본데...

칼빈 닮았다는 건 칭찬이 아니라 욕이요, 욕!

역사적 평가가 진실과는 정반대로 내려진 몇 안되는 인간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 칼빈이라는 자인데...

허허...

담담 2011-09-12 11:56:13
칼빈님 자체가 본이 될만한 분이신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advice 2011-09-12 10:32:32
이종윤목사는 잘 모르니 뭐라 할 수 없구요, 언급된 다른 분이 한국의 칼빈은 아닙니다. 따로 있습니다. 언급된 기사처럼 "아모스처럼 뽕나무 치다가 예언자로 부름 받은 변두리의 목회자가" 따로 있습니다. 그들은 잘 안 보입니다. 잘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