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봉 도끼 살인 사건과 박찬주 갑질
고재봉 도끼 살인 사건과 박찬주 갑질
  • 송현상
  • 승인 2017.08.0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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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봉도 당번병이었다.

박찬주 대장 부부의 공관병 혹사 사건을 보면서 생각나는 사건이 있으니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어온 '고재봉 일가족 도끼 살인 사건'이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웬만큼 나이가 든 사람이 아니라면 잘 알 수 없는 사건이다.

때는 1963년 강원도 인제의 한 군부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강원도 인제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로 유명한 강원도의 오지로서 혹한과 대설로 인해 군인들은 손이나 발에 늘 동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시로 행해지는 부대 내 구타 등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한의 험난한 시기를 보내야만 하는 곳이다. 63년도면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으로 보아 하루 세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시기였다.

당시 상병이던 고재봉은 대대장 박중령의 당번병으로서 그의 집에서 장작도 패고 물도 긷는 등 머슴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박중령의 집에는 가정부도 있었는데 고재봉은 가정부에게도 인심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물을 마시러 부엌에 들어간 고재봉은 신문지에 싸인 한 근 가량의 고기를 발견하는데 그 고기가 욕심이 났던 모양, 그것을 몰래 가지고 나오다 가정부의 눈에 잡히고 만다. 그 전에도 배가 고파 가정부가 먹으려고 두었던 누룽지를 먹어버려 미운 털이 박혀 있던 와중에 도둑질까지 들켰으니 가정부가 화가 났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 대대장에게 얘기하겠다고 하니 다급해진 고재봉은 도끼로 가정부를 위협하며 고자질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정부는 박중령에게 모든 것을 고해바쳤고 이번 일 뿐 아니라 그 전에 없어졌던 물건도 고재봉의 짓일 거라고 하여 그 말을 듣고 대노한 박중령은 고재봉을 헌병대에 넘겨 고재봉은 육군교도소에 보내지고 만다. 굶주림에 눈이 멀었던가 고기 한 근에 대한 탐심으로 고재봉은 장장 7개월의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육군교도소가 어떤 곳인가. 매일 반복되는 기합과 구타 등으로 인간으로서 차마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겪어야 하는 곳이다. 고기를 훔친 죄야 잘못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에 대한 벌이 너무나 가혹했던 것이다.

고재봉은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박중령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교도소 생활을 버텨낸다. 7 개월의 형기를 마친 고재봉은 귀대 하자마자 기회를 엿보다 날을 잡아 도끼를 가지고 새벽에 대대장의 집에 침입하여 대대장 부부와 아이들 셋 그리고 가정부까지 도합 6 명을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한다. 그런데 고재봉이 복수하려고 했던 박중령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 상태였고 살해당한 대대장은 새로 부임한 이득주 중령이었던 것, 복수에 눈이 멀어 제대로 사리분별도 할 수 없는 광란의 상태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던 것이다.

이득주 중령으로서는 실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큰아들은 큰아버지 댁에 가 있어서 참변을 면했으나 온 가족을 하루 아침에 그토록 비참하게 잃은 그 아이의 상처는 얼마나 컸을 것인가. 고재봉은 한 달 여를 도망다니다 결국 붙잡히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그 때 고재봉의 나이 27 세였다.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에게도 무시 당할 만큼 당시 박중령이 당번병 고재봉을 대하는 태도는 자기의 부하가 아닌 노예이거나 아무렇게나 써먹어도 될 소모품 정도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번병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 낯선 곳에서 고생하는 사병을 자기 자식이나 동생인 양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면 과연 그런 비극이 일어났을까? 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박중령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군생활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중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직책의 상관을 모시던 공관병이 박찬주 대장 부부를 고발한 것은 고재봉이 죽기를 각오하고 복수를 결행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번 일이 박찬주 대장 부부와 공관병 사이에서 일어난 일회성의 해프닝일 뿐인 것인가?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이렇다는 것이다. 박찬주 같이 도저히 인간의 양심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없는 인간들만이 그런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부하를 자기 식구처럼 돌보며 정직하고 정의로운 군인들은 결코 대장이나 사령관이 될 수 없는 시스템 아래에서 방산비리가 그토록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또 군인사회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수백만의 청년들이 실업자가 되고 학생들이 날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는데도 끊임 없이 자본의 노예가 되기를 부추기며 대부분의 사람들을 개돼지나 레밍으로 밖에 살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도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 스스로 으스대는 잘난 귀족들께서는 제 2, 제 3의 고재봉이 나타나 눈이 뒤집혀 너죽고 나죽자고 덤벼들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거라 생각들 하시는가.

한 사람을 신성한 인권을 지닌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참변을 야기한 박중령이나 한 집안의 귀한 아들을 자기의 노예인 양 가혹하게 부리다 커다란 망신을 당한 박찬주 내외의 경우에서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교훈을 놓쳐서는 안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누구나 그 속에 있는 야수나 악마가 고개를 쳐들고 인간도 못돼면서 스스로 고귀한 인간인 줄 아는 자들의 뒷통수를 노릴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기 보다 자기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자들을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박찬주 부부, 당신들은 그래서 나쁜 것이다. 우월한 지위나 권력 그리고 금력으로 갑질하는 이 땅의 모든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은 내 말을 허투로 듣지 말기 바란다.

* 송현상님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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