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상이 변하지 않는가?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는가?
  • 김기현
  • 승인 2007.08.20 13: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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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닌 ‘나’, ‘세상’ 아닌 ‘교회’가 변화의 출발점

   
 
  ▲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느냐고요? 이렇게 질문을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교회는 변하지 않는가?", "왜 나는 아직도 그대로인가." (최병수의 그림 중에서)  
 
포항에 위치한 한동대 본관 우측에는 지구 모형과 함께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인상적인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참으로 도발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는가?’ 이는 이 땅을 살면서 변혁을 꿈꾸는 그리스도인의 염원을 집약한 말일 겁니다. 그 행간의 의미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변화된 신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기에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정도로 해석될 것입니다.

세상보다 도리어 2% 부족한 교회

이 물음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일깨웁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가 이리도 혼탁하고 패역한 세계가 되었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세상을 돌볼 책임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자기 할 일을 망각하고 있다는 장탄식입니다. 한갓 자기 자신의 지고한 영성을 관리하기 위해서 타락한 세계의 신음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쓴 소리입니다. 마치 간질하며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막 9:18) 산 아래 세상을 방치한 채 산 위의 복락에만 매달려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베드로인 우리를 고발하는 소리입니다.

이 물음이 구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전제를 검토해야 하겠습니다. 이 물음은 그리스도인이 세상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더 나아가 존재론적으로 세상과 다르다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세상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자에게서 세상과 하등 다른 점을 찾기란 지극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지극히 적은 양의 소금 농도로도 바다를 짜게 만드는데, 우리는 우리가 변혁하고자 하는 세상의 순도보다 도리어 2% 부족합니다. 기독교인이 20%를 상회하고, 기독교인 정치인이 국회의석 과반수를 장악해도 예수의 맛과 멋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신자가 불신자들보다 더한 경우도 많습니다.

변화의 대상은 세상이 아닌 바로 나 자신

그렇다면 왜 세상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까닭은 “내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세상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인데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세상 한 가운데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는 세상의 지배 가치관인 성공과 고지, 그러니까 자본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영락없는 맘몬의 노예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교회가 되었으니 세상을 변화시킬 리 만무합니다.

철학의 혁신은 객체에서 주체로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자연 철학자와 달리 우주로부터 인간으로 탐구 주제를 변경한 소크라테스, 객체에서 주체로 인식을 전환한 데카르트와 칸트, 그리고 대상에서 언어로 전회한 비트겐슈타인과 소쉬르 등은 사회 개혁과 교회 갱신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를 고지합니다. 이것이 비단 철학사에만 국한되겠습니까? 온 세상을 헤매다가 마침내 자신에게로 돌아왔을 때에 그제야 자기 안에 늘 계셨던 하나님과 진리를 발견한 어거스틴이나 자신이 우뚝 서 있어야 할 자리가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의 외적인 권위가 아니라 성서와 양심이었음을 외친 루터도 철학과 동일한 경로를 밟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밖’이 아니라 ‘안’입니다. ‘너’가 아니라 ‘나’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이것이 변화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입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만이 해결책입니다.

질문을 바꿔라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한참 어리고 젊었을 때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어서 그것이 부질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나라를 바꾸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어서 그것 역시 부질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바꾸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부질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내 가족들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죽기 전 나는 깨달았다. ‘아 아, 내가 변했더라면!’ 내가 변하면 나를 보고 가족들이 변하고 가족들이 변하면 동네가 변하고 동네가 변하면 나라가 변하고 나라가 변하면 세상이 변했을 것을….” (무명의 수도승)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느냐고요? 이렇게 질문을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교회는 변하지 않는가?”
“왜 나는 아직도 그대로인가”

김기현 목사 / 부산 수정침례교회

* 이 글은 한국 <뉴스앤조이>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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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lisani 2012-04-13 10:13:48
Heck yeah this is ecxalty what I nee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