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수와 목회학
약장수와 목회학
  • 유성오
  • 승인 2007.08.20 16: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석제일주의'와 '성도먼저주의'라는 목회학의 두 기둥

약장사의 걸걸한 입담을 들으며 둘러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전에 시골 장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였다. 그의 뜨거운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세상에 못 고칠 병은 하나도 없다는 믿음이 서서히 들기도 한다. 뭔가 대단한 쇼를 보여 줄 것처럼 사람들을 살살 꾀며, 호기심에 차서 바라보고 있는 애들을 향해선 '애들은 가라'고 호통까지 친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재간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긴가민가 싶어 의심스레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도 쉽사리 걸음을 옮겨놓지 못하고 혹시 뭔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그러다가 용기 있게 썩 나서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생겨나는데, 이 사람들이 바로 그들의 밥줄이다.

‘출석제일주의’

- 약장수들은 끊임없이 외쳐댄다. 여러분이 이런 기회를 마다하고 가시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여길 떠나는 순간 여러분의 병은 영원히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목사들은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를 열렬히 원한다. 주일성수라는 깃발 아래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절대로 예배에 빠지지 말라고 외친다. 심지어는 주간에 다른 동네에 가서 일을 보더라도, 주일에는 반드시 어떤 수단을 강구해서든 본 교회 예배에 참석할 것을 종용하는 과격한 목사들도 종종 있다. 비싼 교통비 써가면서 몇 시간을 들여서라도, 본 교회 대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왔다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갸륵한 정성의 표현이요 신앙의 정도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몇 번이건 간에 교회에서 거행되는 모든 모임과 예배마다 닥치는 대로 하나라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시달린 영혼들이 교회가 아니고는 도대체 어디서 감히 안식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야말로 하늘에 보물을 쌓고 세상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첩경이라는데 누가 감히 빠지려 하는가. 만일 예배를 한 번이라도 빼먹었다간 (특히나 주일 대예배를)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것이라는 정죄의 칼이 날을 세우고 성도들을 노리고 있는 판인데 말이다. 그래서 교인들 사이에 흔하게 떠도는 신앙적 덕담(?)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거봐, 주일 예배 빼먹고 가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꼭 교회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목사들은 정확한 언급을 회피한다. 어디서든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면 그곳이 곧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처소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적으로 주장한다. 목사가 주관하는 예배당에서의 예배에 참석해야만 한다고. 마치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려야 할 장소를 정해놓기라도 하신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주일에 몇 번이나 교회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정해 놓으셨을까. 한 번? 아님 두 번?…. 그럼 열 번?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정말 그럴까. 어쩌면 '일 년에 한 번만 하라'고 (마음속으로) 정해 놓고 계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너희가 드리는 예물을 기뻐하지 않는다. 나는 공의를 원하다'고 말씀하신 이사야서의 하나님은, 예배당에 찾아오는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외치고 계시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세상 곳곳에서 농사짓는 자로서, 판사로서, 장사하는 자로서, 공무원으로서, 이웃으로서, 부모로서 (하나님의 이름 아래) 공의와 사랑을 펼치는 행위를 시행하기를 더 원하시고 계실 듯하다.

‘성도먼저주의’

-약장수들은 열심히 사람들에게 약을 팔고, 그 약의 효능에 대한 확신을 설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좀처럼 (혹은 절대로) 그 약을 먹지 않는다.

어떤 목사님이 가정생활에 대한 설교를 한참하고 있는데, 그 사모님이 불쑥 강단으로 올라와 앉았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았다. 그런데 강단을 점거하신 사모님이 한사코 강단에서 내려가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 즉, 강단 위에서 이렇게 훌륭하신 양반이 가정에서는 영 딴판이니, 자신은 강단에서 가정생활하고 싶다는 거였다. 

대접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기를 힘쓰라고 외치면서, 자신과 같은 하나님의 종을 함부로 소홀히 대접하면 다친다고 협박(?)한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을 받들어, 성도들은 주일마다 봉사하고, 여름휴가 때면 성경학교나 수련회 기간에 맞춰 교사로서 봉사하느라 쉴 날이 없건만, 자신은 월요일이라 심방도 안 하고 여름휴가는 꼬박꼬박 찾아먹는다.

형제와 다툼이 있으면 우선 화해하고 나서 예물을 드리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절대로 교인들에게 먼저 사과하고 화해를 요청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중심을 보신다고 외치지만, 대개 교회 장로는 돈깨나 있는 사람들을 세우려 한다.

교인들 보고는 국가에 내는 세금 한 푼조차도 떼지 않은 온전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면서, 자신은 자녀 교육비, 각종 공과금, 차량 유지비, 연료비, 도서비, 쌀값, 집세, 접대비 등의 명목으로 지급되는 온갖 수입을 제외한 사례비에서만 십일조를 드린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자신은 교인들의 헌금 액수를 헤아리고 재산 장만하는 데 정신을 판다. 약장수가 지닌 특징은 누구라도 쉽게 설득시킬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입심이다. 잡다한 지식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가 하면, 어떤 때는 사람들의 심리적 허점을 찌르는 명쾌하면서 탁월한 지적과 더불어 쇼맨십을 발휘하여 청중들을 끌어들인다.

진리(약)는 변하지 않으므로 목사의 설교는 늘상 그 얘기가 그 얘기다. 그렇기에 호시탐탐 '믿습니까'를 연발하면서, 분위기 고조시키는 테크닉을 종종 구사한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입심 좋게 떠들어대며 하나님의 말씀을 만병통치약처럼 팔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 약을 먹지 않는다. 온갖 훌륭한 가르침을 베풀면서도 정작 자신이 이를 실천하는 데는 게으르다면, 그는 정말 약장수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한 목회는 입으로 떠벌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여 보여주는 데 있다.

유성오 /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회원

* 이 글은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