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영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 이응도
  • 승인 2007.11.0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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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자녀 생각 알아야…이민사회의 자녀교육(2)

저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보수적인 장로교의 목회자셨던 아버지께서는 늘 아버지의 기준에 맞는 생각과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저와 형제들은 그런 아버지가 늘 어렵기만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나이가 들면서도 아버지가 옳다는 것과 아버지의 뜻과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점점 아버지와 멀어지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답답할 때는 아버지께서 대화를 요구하실 때였습니다. 다 이해해줄 테니까 내 생각을 말해보라는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저의 닫힌 마음과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의사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학습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리고 부족한 제 생각은 늘 아버지에 의해 지적되고 교정되기 일쑤였고,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기라도 할라치면 변하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먼저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해해줄 테니까 말해보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일단 저의 생각을 들어보고 틀린 것을 교정해줄 테니까 솔직하게 고백하라는 말과 같은 말로 들렸습니다. 기억하건대 중학교 이후 대학을 다니기까지 부자간의 정겨운 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대화에 있어서 아주 높은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의 아버지께서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옳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고 인정받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른 가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녀 교육에 어려움이 있을 때 때로는 부모를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자녀를 설득하실 수도 있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에게는 아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대화가 가능함을 발견합니다. 많은 부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 또한 자녀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난주부터 자녀들과 부모간의 의사소통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상담소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제기하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언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처럼 영어를 시원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혹은 자녀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자녀와 여러분 사이에 가로 막힌 그 높은 장벽은 영어라는 이름의 벽입니까?

혹시 자녀와의 대화가 단절된 분이 있으시다면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혹시 영어를 자녀만큼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혹은 여러분의 자녀가 한국어를 여러분만큼 잘 사용할 수 있다면 과연 자녀와 여러분은 마음과 마음을 통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아니면 혹시 그 유창한 한국말이나 영어로 더 크게 다투고 대립하지는 않을까요? 혹시 유창한 영어나 한국어로 여러분의 자녀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명령하려 하지는 않았나요? 혹시 내 자녀는 그런 여러분의 태도에 대해 분명한 저항감과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을까요?

상담소를 찾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대화가 단절될 때 그것이 다름 아닌 언어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자녀에 대한 태도, 대화하는 습관,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행동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정작 자녀의 마음이 부모에 대해 닫힌 것은 부모가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자녀들의 변화하는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인데, 혹은 부모세대의 여러 가지 편견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인데, 혹은 자신들과 부모 세대의 뚜렷한 차이를 발견했기 때문인데, 부모들은 "내가 영어를 조금만 잘 한다면…" "내가 진작에 저 녀석에게 한국말을 유창하게 가르쳐야 했는데…" 하고 중얼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대화는 언어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언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어린 자녀들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에 바르고 건강한 삶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의 정리되고 준비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높이를 자녀에게 맞추고 자녀보다 조금 높고 넓은 생각으로 대화를 시작해 보십시오.

자녀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하고 싶은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십시오. 자녀들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생각을 다 펼쳐 놓은 뒤 때가 되면 부모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부모의 평가와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가정상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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