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젓가락질은 이렇게 하는 거란다"
"얘야, 젓가락질은 이렇게 하는 거란다"
  • 박지호
  • 승인 2007.12.0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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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아일랜드한인교회가 마련한 한인 입양아 잔치 한마당

   
 
  ▲ '아기 공룡 둘리' 주제가에 맞춰 가장 신나게 춤을 췄던 케빈과 그의 엄마 엘런.  
 
부모는 노란 머리 하얀 얼굴인데, 자녀는 까만 머리 노란 얼굴이다. 12월 1일 뉴욕·뉴저지에 사는 한국인 입양아들이 가족과 함께 ‘Friendship Day 2007'(우정의 날)에 모였다. 롱아일랜드한인교회가 마련한 이번 행사는 한국 아이를 입양한 가족들이 한국 문화와 음식을 나누면서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서툰 젓가락질로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아리랑을 들었다. 엄마의 젓가락질도 서툴긴 매한가지지만, 시범까지 보이면서 아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는 모습도 보였다. 젓가락질은 그럭저럭 흉내 내지만, 김치는 아직 적응이 힘든지 접시에서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 엄마의 젓가락질 시범이 끝난 뒤 열심히 따라하는 아이의 모습.  
 
식사가 끝나고 ‘연’ 만들기 순서도 있었다. 지난번에는 태극기와 팽이를 만들었다. 가오리 연 하나 만드는 데 온 식구가 달라붙었다. 어찌나 심사숙고하는지 사회자의 진행도 아랑곳없었다. 어떤 부모는 아주 빠른 속도로 잘 만들기에 ‘연이 뭐할 때 쓰는 건지 아냐’고 물으니 ‘잘 모른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롱아일랜드한인교회 대학부 청년들이 한복 패션쇼도 했다. 평상시 입는 생활한복부터 임금과 왕세자가 입었던 궁중한복까지 다양하게 소개했다. 롱아일랜드한국학교 어린이들이 꼭두각시 춤을 선보여 참석자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스태권도학원 원생들이 나와서 품세와 격파 시범을 보일 때는 장난만 치던 남자 아이들도 시범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뉴욕리틀오케스트라가 ‘아리랑’을 연주하자, 어떤 부모는 “저 노래가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인 아리랑”이라고 아들에게 일러주기도 했다.

   
 
  ▲ 온 가족이 함께 가오리 연을 만드는 시간도 있었다.  
 
자식이 좋고 즐거우면 부모는 덩달아 행복한 법이다. 케빈의 가족은 올해로 두 번째 참석했다. 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달려왔지만, “케빈이 워낙 좋아하니 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엄마인 엘런 씨가 말했다. 부모 입장에서야 한국말과 문화를 가르쳐주고 싶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백인이 무슨 재주로 가르치겠나. 그래서 이런 자리가 감사할 따름이다.

입양한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만의 고민도 있다. 웬만큼 자라서 입양된 경우는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울기도 한단다. 어릴 때 입양된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친부모를 찾아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낳은 자식처럼 기르던 부모 입장에서는 가슴이 찢어질 일이다.

   
 
  ▲ 이날 한복 패션쇼의 모델은 롱아일랜드한인교회 대학부 청년들이 맡았다.  
 
   
 
  ▲ 남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태권도 시범.  
 
이런 자리를 통해 입양한 아이를 둔 부모들끼리 만나면서, 정보도 공유하고 도움도 얻는다.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입양된 아이들은 한인 1.5세도 2세도 아니다. 미국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미국 사람도 아니다. 얼굴은 동양인인데, 한국말은 못하니 한인 커뮤니티에도 끼기 힘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이,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는 피해의식도 갖게 되는데, 이런 행사를 통해서 한국을 알아가고 고국에 대한 애정도 생기게 된다.

   
 
  ▲ '우정의 날' 행사를 통해 입양한 아이를 둔 부모들끼리 만나면서, 정보도 공유하고 도움도 얻는다. 또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우정의 날은 롱아일랜드한인교회가 13년째 해오고 있다. 롱아일랜드한인교회가 브루클린에서 롱아일랜드로 교회를 옮긴 후 지역사회를 어떻게 섬길까 고민하다가 입양아 초청 잔치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95년에 교회 친교실에서 여선교회가 준비한 한국 음식을 먹으며, 민속춤과 민속놀이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영어예배부(황남덕 목사)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행사를 준비했고, 장소도 플러싱에 있는 한인 식당인 ‘금강산’으로 옮겼다. 덕분에 프로그램과 음식도 푸짐하고 다양해졌다.

2006년에는 교회가 힘들어지면서 행사를 치를 수 없게 되자, 금강산에서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장소만 미국 교회를 빌려 소박하게 치렀다. 올해는 ‘우정의 날’ 행사를 위해 뉴욕리틀오케스트라가 뉴욕 효신장로교회에서 공연을 열었다. 이때 모금한 4,700불 전액을 입양아 초청 잔치를 위해 기부했다. 우정의 날 행사가 처음 열린 95년에는 80명이 참석했고, 13회를 맞는 이번 잔치에는 200명이 넘게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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