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돈 되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 양국주
  • 승인 2007.12.0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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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종교인들은 정부에 내는 세금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퇴직 후에 받게 될 사회보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목회자 부인이라 할지라도 별도의 직업을 갖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은퇴 후 부부가 제각기 정부로부터 사회보장금이나 은퇴 연금을 받게 된다. 교단이나 은퇴 구좌로부터 받게 될 연금과 정부로부터 받는 연금을 합하면 자그마치 매달 5,000~7,000불에 이르는 생활 보조비를 받게 된다. 은퇴 후에 받게 될 연금을 일종의 투자로 생각한다면 매달 내는 세금이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니다.  
                
요즈음 한국 목회자들의 납세 문제가 논란을 넘어서 대선의 쟁점마저 되어가고 있다. 불가의 스님이나 천주교의 신부들도 입장은 같은데, 유난히 기독교 성직자들이 뺨을 맞는 것은 고의성이 지나친 부분도 많다. 이대로 두면 차기 정부에서 종교계는 집중 포화를 맞을 위기감마저 든다. 굳이 잘잘못을 따진다고 해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이는 교회의 위기가 어제 오늘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은 교회의 책임이다. 납세가 국민의 의무라는 주장이 성직자에게는 상식 없는 소리일지 모르나 사회적 시선이 두려우니 세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 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처럼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납세로 주어지는 온갖 혜택에서 종교인들을 제외하면 될 것을 불필요한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다.

40년 전만 해도 각급 교회는 목회자의 식생활을 돕기 위해 긍휼미라는 이름의 성미를 거두었다. 최저 생활에도 못 미치는 성직자가 많았던 탓이다. 지금은 교회 형편이 나아지다 보니 목회자도 세금을 납부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장로교 통합 측 교단은 400억에 가까운 자금으로 교역자 은퇴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통합 측 교단 같은 은퇴 프로그램이 없는 교단의 목회자 입장에서는 형평성의 원칙에도 안 맞는 일이다. 그만큼 문제를 풀어갈 기준이 한국 교회에 없다는 말이다. 

기준이 없는 한국 교회                                    

지난해 종단 내 학교가 많았던 장로교 통합 측 교단을 중심으로 사학법 개정을 위해 목사들이 머리를 밀고 순교도 불사하려는 듯 비장한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적었던 다른 교단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하였다. 기독교의 저항에 눌려 정부가 타협을 하고 말았지만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다.
                                             
아프간 인질 협상을 주도했던 국정원이 한인 선교사들을 자진 철수시키고 다시는 선교사를 내보내지 않겠다며 테러 집단에게 굴복했을 때 정작 한국 교회는 입을 다물었다. 복음 전파가 기독교 고유의 존립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정부의 결정에 이렇다 할 반론조차 펴보지 못했다.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머리를 밀었지만 당장 아프간 선교가 교회의 이익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선교는 우선권의 문제가 아닌가? 이는 한국 교회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갖기에 충분한 구실을 준다. 복음이 교회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사학법 개정과 아프간 선교사 철수 문제는 교회의 존재 이유도 된다. 그런데 두 사건에 임하는 교회의 태도는 놀라우리만큼 이율배반적이다.

뼈를 깎는 자정 노력 필요                                 

최근 편입학 관련 부정 수수 의혹이 불거졌던 연세대학교는 실은 한국 교회가 민족사에 내어 놓을 만한 자부심이다. 총장 부인의 개인 비리로 끝나기를 바라지만 연세대의 비리 이상으로 교회는 자신의 부정에 지나치게 관대해졌다. 마찬가지로 실정법을 위반했던 대형 감리교회의 목회자나 교인들의 헌금 수백억 원을 자녀에게 편법으로 증여한 지도자는 여전히 영적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정당성 없는 교회의 세습과 지도자의 비리, 끊임 없이 불거져 나오는 스캔들로 한국 교회는 바람 잘 날이 없다. 교회의 타락과 치유할 자정 기능을 상실한 것이 기독교 비극의 원인이다.
                                                             
사학법 개정에 목 맬 일이 아니라 도덕 불감증에 걸린 기독교 학교나 비리 교회를 일벌백계의 원칙에 따라 문을 닫게 하더라도 사회의 도덕적 기준보다 기독교가 훨씬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사회 전체에 만연된 부조리에 비해 교회 부조리는 오히려 작은 규모일지도 모른다.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교회의 스캔들조차 언론은 침소봉대하려는 경향마저 있다. 교회에 대한 기대가 큰 탓도 있고 실망에 대한 반작용도 많다. 어쩌면 ‘교회, 너마저도 부패할 수 있는가?’라는 절규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교단들은 사학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문제 사학들에 대한 엄격한 감사를 통하여 과감한 외과적 시술을 먼저 감행해야 한다. 사학법 개정에 대부분의 교회나 성도의 지지가 없었던 것은 종교 사학이 교권의 그늘 아래 안주하거나 기생하면서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어 왔던 실망감과 개혁의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고쳐야 할 시스템

미국에는 연방 재무부를 통해 비영리단체 면세 혜택을 얻은 기관의 숫자가 자그마치 75만 개에 이르고 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비즈니스와 마피아 조직까지도 NGO 형태로 등록되어 있다. 면세 혜택이 주어진 비영리기구는 엄격한 잣대의 윤리 기준에 따라 재정 감사를 받게 된다.             

비정부· 비영리기구라 해서 성직자나 고용원에 대한 근로소득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정관상의 합목적적 고유 사업 영역에 대해서만 면세 혜택이 주어진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교회가 불법적으로 집행하는 예산이나 회중의 동의 없는 목회자의 독단이 개입할 소지가 있는 예산 집행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예산을 잘못 집행하면 형사적 책임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도 전국의 사찰과 교회 등을 종교 법인화하여 본래의 비영리 활동과 관련한 신용 평가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 교회 인증 제도를 두어 교단이 개입하기 이전에 교회의 건전성이 회계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 교리에 관한 문제는 교단이 관장하되 교회의 예산 집행과 관련된 비용은 국세청이나 별도의 엄격한 회계제도를 통해 검증 받을 수 있을 때 교회의 사회적 비난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재정경제부에서 성직자의 납세 제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발표하였다. 양식 있는 성직자가 세금을 자진 납부하려 해도 납부할 만한 국가적 시스템이 없는 것이 우리 사회 현실인 셈이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을 일방적으로 세금을 떼어먹는 죄인 다루듯 도둑놈으로 내모는 사회 풍조도 결코 올바른 것은 아니다. 
         
교회도 엄연히 사회 속에서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기관이다. 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돈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다. 물질이 더러운 게 아니라 물질을 사용하는 이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 아니던가? 돈 있는 곳에 마음 있는 게 아니라 돈 되는 곳에 마음 빼앗긴 성직자들을 감시할 기능도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세상에서 활개 치며 살아갈 자유도 얻어야 한다.

양국주 / 열방을섬기는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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