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교회
한 지붕 두 교회
  • 박지호
  • 승인 2007.12.22 0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세 사역' 위한 1세 헌신 돋보이는 뉴저지 찬양교회

뉴저지 서머셋에 있는 찬양교회(Praise Presbyterian Church)는 겉에서 보면 한 교횐데, 속을 들여다보면 두 교회다. 담임목사도 둘이고, 당회도 둘이다. 하지만 찬양교회라는 이름은 동일하다. 다만 한국어 회중(Korea Congregation)과 영어 회중(English Congregation)으로 구분할 뿐이다. 한 지붕 두 교회인 셈이다. 찬양교회 영어 회중(이하 EC)이 한국어 회중(이하 KC)에서 공식적으로 독립한 것은 2003년 9월이다. 찬양교회가 1989년에 시작됐으니, 14년 만이다. EC가 자체적으로 공동의회를 열어 장로를 세우고 당회를 구성했다. KC는 English Ministry 담당 사역자를 공식 파송해 담임목사로 세웠다. 이후 행정적인 것은 물론 재정까지 완전히 별개로 운영된다.

그렇다고 독립이 곧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선교는 KC와 EC가 협력한다는 큰 틀에서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만 공존하는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인 모델을 지향한다. 얼마 전에는 KC의 선교 담당 장로가 EC 예배 시간에 참석해서 선교의 전략과 방법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고, EC 교인들은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돕고 있다. 또 리더십 그룹은 일 년에 한두 차례 만나면서 교제를 나누고, 교인들끼리는 골프나 축구를 같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지금은 EC가 많이 성장해서 영어 회중이 200명 넘게 출석한다. 처음엔 거의 100%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학생이 30% 직장인이 70%다. 사역의 중심이 학생 사역에서 가정 사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대학 입학을 전후해 교회를 떠났거나 미국 대형 교회에 흡수되었던 2세들이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리면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제 중년이 된 2세부터 그들이 낳은 3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받아줄 수 있는 독립적인 사역 공동체를 찾아온 것이다.

   
 
  ▲ 찬양교회 EC가 다양한 연령층을 받아줄 수 있는 독립적인 사역 공동체로 준비되면서, 교회를 떠났던 2세들이 가정을 꾸리고 다시 교회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KC의 전폭적인 지원과 신뢰 주효

EC가 하루아침에, 저절로 독립한 것은 아니다. 제 발로 일어서고 걷게 된 데는 KC의 전폭적인 신뢰와 도움이 컸다. EC가 공식적으로 독립한 것은 2003년이지만, 실제적인 자립은 훨씬 이전부터 이루어졌다. 영어 예배가 처음 시작된 93년부터 장로들을 비롯한 찬양교회 핵심 리더들은 EC가 자발적으로 교회를 꾸려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이후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EC가 독립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도록 만들어갔다. 아주 적은 액수지만 EC에서 나오는 헌금을 KC가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쓰도록 했다. 그 외 모자란 부분은 KC가 모두 지원했다. 담당 사역자 사례부터 운영비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해당된다. 교회 살림을 꾸려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EC 리더들이 직접 1년 사역 계획을 짜고, 예산을 편성하고, 그에 따라 집행하도록 시무장로들이 훈련시켰다. 그리고 KC가 지원한 재정 사용에 대해서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EC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헌금이 늘어갔다. 그래서 찬양교회 EC는 독립하기 2년 전인 2001년께부터 재정적으로는 완전히 자립이 가능해졌다. 재정적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행정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독립하기 시작했다. 또 대학가 근처에서 개척한 교회이기 때문에 대학교 선교단체에서 리더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영적인 리더십을 잡고 교회를 이끌면서 더욱 견고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 허봉기 목사는 “내버려두면 잘하고, 잘하니까 내버려두는 거"라며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견해를 내놨다.  
 
찬양교회의 EC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서 2세들을 키우겠다는 KC의 의지와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허봉기 목사는 교회 리더십이 “거의 시중 수준으로 배려했다”고 표현했다. 허 목사가 찬양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릴 땐데 EC가 12시에 먼저 예배를 드리도록 배려하고, KC가 2시에 드렸다. 12시가 2시보다 여러 모로 편리할뿐더러, 한여름에 에어컨 시설도 없는 교회에서 훨씬 더운 2시에 예배드리기로 결정한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절기 예배의 경우는 더욱 예배 시간에 민감하다. 하지만 이번 송구영신 예배 같은 경우도 EC가 밤 11시에 드리기로 했다. 작년에는 KC가 11시에 드렸기 때문이다. 부활절 예배도 그런 식으로 번갈아가면서 조정한다. 1세 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 영어 회중이 사용하는 식이 아니라 KC와 EC가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소통하면서 의사를 결정한다.

최근에는 KC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교인 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두 교회가 한 지붕 아래 머무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게 됐다. 그래서 EC가 새로운 예배 공간을 찾고 있다. 적당한 장소가 마련되면 지붕도 다른 두 교회로 나뉘게 된다.  

   
 
  ▲ EC 담임목사인 데이빗 최 목사는 "영어 회중의 성공적인 자립을 위해서 1세 교회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버려두면 잘하고, 잘하니까 내버려두죠”

EC가 독립해 성공적으로 자립한 것에 대해서 허봉기 목사는 “한 일도 없다”며 몸을 낮췄다. 그나마 잘한 게 있다면 그냥 내버려둔 것이라며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견해를 내놨다. 허 목사가 99년에 부임했을 때 처음 영어 회중에게 한 인사말이 “나는 도우러 왔지 방해하러 온 것이 아니다”는 말이었다. 허 목사는 “내버려두면 잘하고, 잘하니까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1세 교회에서 2세 영어 회중을 독립시킨 한인 교회가 없지 않지만,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례가 많은 것에 대해서 허 목사는 “독립의 시기를 잘못 잡은 게 아닐까 싶다”고 진단했다.

“독립해서 성공한 교회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혼자 다 책임지면서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쉽지 않다. 자립할 능력이 없는데 독립시킨다고 능사가 아니다. 그런 예는 허다하다. 1세와 2세가 공존하면서 점진적인 독립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을 막는 길이다.” 

초기부터 영어 회중의 자립을 구상하며 지원했던 배진건 장로는 당회원(장로)들의 패러다임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EC를 독립시키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우린 2세들을 애초부터 선교의 대상으로 봤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품에 껴안고 있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어 회중도 계속 자라고 자녀도 생기면서 세대도 다양해지는데 언제까지 1세 교회의 관리 아래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 찬양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있는 EC 교인들.  
 
“1세 교회의 의지와 태도가 가장 중요”

EC 담임목사인 데이빗 최 목사는 “KC의 태도와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질적인 모든 파워는 1세 교회가 쥐고 있기 때문에 1세 교회가 의지를 갖고 돕지 않으면 혼자서 자립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동시에 2세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인정하고 신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목사는 “대부분의 1세 목회자들이 2세들을 지원하기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너무 통제하려고 들고 한국적 방식을 요구할 때가 있다. 그러면 오히려 영어 회중의 건강한 성장을 가로막게 된다”고 말했다.

영어 회중이 시작할 때부터 리더로 섬겨온 EC의 김형진 장로는 “KC 장로님들이 이런 비전(독립)을 가지고 이끌어 준 것이 가장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엔 독립에 대한 비전이나 의지도 없었다. 오히려 1세 장로님들이 그런 비전(독립)을 이야기할 때마다 듣기 싫었다. 자립하려니 막막하고 무서웠다고 할까, 어렸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당회 1세들이 그런 비전을 가졌던 것이 가장 고맙다. 우리가 원치도 않았는데 멀리 내다보고 우리를 이끌어준 것이 감사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