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미국 기독교인들과의 만남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인들과의 만남
  • 강희정
  • 승인 2007.12.3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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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13 - '다른'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나?

   
 
  ▲ 미국인들과 함께하는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성경 지식은 물론, 미국 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 등을 배울 수 있다. 이 모임에서 의료 지원하고 있던 아프리카 채드에서 온 부부를 초대해서 그들의 간증을 듣던 때의 모습이다.  
 
지난 9월부터 미국인 여성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을 아껴주던 미국인 중년 부부가 있었는데, 여자 분이 나를 그 모임으로 초대했다. 말을 타 본 적이 없던 우리 가족들을 위해 한여름 땡볕에서 부부가 몇 시간 동안 말잡이가 되어주기까지 했던 매우 친절한 사람들이다. 우리 가족이 그 집에서 두 번이나 저녁 식사 대접을 받기까지 하여 우리 집에 한 번 초대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대화 중에서 내 처지가 외롭다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  모임은 나이가 대체로 50~60대에 이르는 여섯 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원래 같은 교회 소속으로 오랫동안 함께 성경공부를 해 오던 사람들이었으나, 교회 목회자의 자질 문제로 인해 최근 몇 사람들이 새로운 교회를 찾아 나갔어도 그 모임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들 순수한 분들이어서 자신들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피부색 다르고 말 서투르고 생각도 자신들과도 많이 다르기까지 한 '이방인'인 나를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더 긴장한 듯 보였다. 아마도 그 사람들에게는 외국인이나 진배없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 교제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듯하다. 이들이 내게 처음 한 질문은 미국에 와서 문화적 충격을 받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적 격차 또는 문화적 차이가 클 것이라는 믿음을 이들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성경 지식을 더해가는 것도 있었지만, 미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여성들의 생각을 알게 되고 미국인들의 생활 속의 문화들을 배워나가는 데 의미가 더 컸다. 성경공부하던 중 공부 내용과 무관하게 샛길로 빠질 때 이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이들의 정치적 입장이 어떠한지 또는 대통령 선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게되었다.

이들과 음식을 나누고 기독교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내게는 생소한 미국 사람들의 생활 문화 등을 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이들의 보수적인 여성관이다. 내게는 너무도 보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관에 대해 이들은 당연시하는데 놀라웠다. 이곳은 여성해방운동이나 여성의 사회 진출 등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미국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 때가 많았다.  

이 모임에서 선택한 성경공부 교재는 존 맥아더(John Macarthur)의 <12명의 비범한 여성들>(Twelve Extraordinary Women)이다. 그는 이전에 <12명의 평범한 남성들>(Twelve Ordinary Men)이라는 책을 쓴 데 이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 책에서 존 맥아더는 12명의 예수의 제자들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 존 맥아더의 <12명의 비범한 여성들>.  
 
존 맥아더가 뽑은 12명의 여성들은 하와, 사라, 라합, 한나, 룻, 안나, 마리아, 사마리아 여인, 마리아와 마르다, 막달라 마리아, 루디아 등이다. 첫눈에도 드보라나 에스더 등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존 맥아더가 12명을 뽑은 근거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공헌이 큰 여성들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책에서 처음으로 다루어진 주제는 남성의 '머리됨'(Headship)이었다. 존 맥아더는 남성의 머리됨을 강조하면서 남녀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는 평등주의자들을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다음으로 남녀 사이의 신체적인 차이점에 따라 남녀 사이에 기능 상의 분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논란의 주제가 되었다. 즉, 여성들은 모성과 육아를 최우선의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이런 관점이 여성들의 사회 생활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며 여성을 억압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사람들은 그것이 여성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어린아이를 어린이집(Daycare center)에 맡기는 것을 자녀를 방치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육아활동을 다 마치는 때까지 사회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 모임을 통해서 '목회자들의 성경 교사'라고 하는 존 맥아더의 관점을 먼저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그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내 생각도 나누며 서로 올바른 관점을 세워나가도록 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이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많이 다르고 서로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느끼는 때가 있다.

가치관과 의식의 엄청난 차이를 느낄 때 이제 나는 '침묵'하는 쪽을 선택한다. 침묵은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내 나름의 방식이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각자가 가진 삶의 경험이 다양한 만큼 여러 가지 형태의 믿음과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결과이다.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주장하여 생길 수 있는 긴장을 피하며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상대에게 거짓이 없는 '진정성'이 있다면 가치관이나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서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자세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서로 교차점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끝까지 평행선을 달린다고 해도 함께하는 시간이 의미가 없지는 않으리라.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그들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았다. 그 중 한 사람은 크리스마스 인사말 외에 내가 성경공부 시간에 나누는 이야기들을 즐겨 듣고 있으며, 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말을 적어 보냈다. 영어가 서투른 나로부터 배우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나를 격려하기 위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들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만큼, 그들도 전에 접하지 못했던 시각이나 새로운 사실들을 내게서 전해듣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자위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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